전장연은 왜 ‘굳이’ 루브르박물관에서 “STOP 오세훈”을 외쳤을까 / 김소영

[전장연, 유럽에 가다: 파리 특사단 이야기 ⑧] 전장연, 유럽행을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머나먼 유럽으로의 투쟁… 쉽지 않은 ‘결단’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겠다’는 ‘절실함’ ‘당연한 권리’를 위해 ‘굳이’ 싸워야만 했다

2024-12-31     김소영 기자

[편집자 주] 지난 8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을 파견했다. 40여 명의 장애인·비장애인으로 구성된 특사단은 8월 17일부터 8월 31일까지 노르웨이 오슬로, 독일 베를린, 프랑스 파리를 순회하며 한국의 장애인권리 약탈 현실을 알렸다.

특사단은 유럽 3개국에서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다이인(die-in) 행동 등 총 24회의 직접행동과 투쟁, 20개의 장애인권 관련 기관·단체 방문 및 면담, 2번의 장애인인권영화제를 진행했다.

특사단은 왜 유럽까지 가야 했을까. 어떤 목표를 갖고, 어떤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유럽에 간 것일까. 그곳에서 무슨 경험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돌아왔을까. 특사단의 여정을 생생히 듣고 기록하고자 다양한 특사단원의 이야기를 8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 세상”을 위한 노르웨이의 장애인 교육 / 조희은
②-1 노르웨이·독일·프랑스에서 확인한 ‘자립생활’ 이념의 중요성 ① / 이정한
②-2 노르웨이·독일·프랑스에서 확인한 ‘자립생활’ 이념의 중요성 ② / 이정한
③ 나는 파리 특사단의 활동지원사 / 정윤지
④ 우리의 하루하루는 끝없는 투쟁의 연속이었다 / 박상호
⑤ 장애인권리약탈자 오세훈, 서울 올림픽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 이규식
⑥ 당신들의 투쟁이 곧 우리의 투쟁입니다 / 손어진
⑦ 모두가 이동할 수 있는 세상, 장애인의 이동을 ‘배려’가 아닌 ‘권리’로 / 이재민
⑧ 전장연은 왜 ‘굳이’ 루브르박물관에서 “STOP 오세훈”을 외쳤을까 / 김소영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이 루브르박물관에서 기습 ‘다이인 행동’을 벌이고 있다. 사진 김소영

“오세훈 퇴진을 파리 가서 이야기하면 뭐하냐. 미친놈들이네.”
“왜 남의 나라까지 가서... 얼굴이 뜨겁다.”
“나라 망신. 도움을 주려 해도 하는 짓이 볼썽사납다.”
“교통약자 이 지랄 떨더니 나보다 해외 더 잘 나가네.”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의 루브르박물관 ‘다이인(die-in) 행동’(공공장소나 거리에서 죽은 듯 누워있는 행동으로 전 세계에서 반전, 인권, 인종차별, 기후위기 등을 시민에게 알리기 위한 시위방식)을 보도한 기사와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그들의 말마따나 전장연은 왜 ‘굳이’ 유럽에까지 가서 “STOP 오세훈”을 외쳤을까.

- ‘오세훈’이 ‘장애인’들한테 뭘 어쨌길래?

오세훈은 2022년 7월 1일 서울시장에 재취임했다. 오 시장은 시정 최우선 가치로 ‘약자와의 동행’을 내세웠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오 시장의 ‘약자와의 동행’을 ‘장애인권리 약탈’이라 말한다.

서울시 홈페이지. 왼편에는 웃고 있는 오세훈 시장의 사진이 있다. 하단에는 “약자와 함께하는 동행특별시”, “‘약자와의 동행’은 제가 정치를 하는 이유입니다” 등의 문구가 쓰여 있다.

전장연은 2021년 12월 6일부터 장애인권리 쟁취를 위한 출근길 지하철 선전전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3년여간 740일이 넘는 시간 동안, 평일 아침 8시가 되면 하루도 빠짐없이 서울 혜화역 지하철 승강장에 나섰다. 그리고 매일 같이 승강장에서 끌려 나왔다. 서울교통공사의 강제 퇴거와 불법 연행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 보안관들은 전동휠체어까지 직접 조종하여 휠체어 이용 장애인 활동가들을 들어 내보내기까지 한다. 오 시장은 서울교통공사를 통해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 행동에 대해 9억 9십만 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전장연의 직접행동이 서울 시민에게 ‘불편’을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오 시장은 중증장애인들의 일자리를 약탈하기도 했다. 장애계의 오랜 투쟁으로 2020년 서울시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쟁취했다.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자본주의적 생산성, 능력주의에 바탕을 둔 경쟁노동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능력이 가장 낮다고 치부되는 최중증장애인을 우선 고용하는 일자리이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을 시민사회에 알림으로써 협약의 실질화를 위한 노동을 수행해 왔다. 권익옹호활동, 문화예술활동, 장애인식개선강사 활동을 통해 ‘권리를 생산’하며 ‘세상을 바꾸는 노동’을 해온 것이다. 그런데 서울시의 사업 폐지로 올해 1월 1일,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장애인 노동자 400명과 전담인력 55명이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해고됐다.

자립생활·탈시설 권리는 어떠한가. 서울시의회는 지난 6월 25일,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지원에 관한 조례(아래 탈시설지원조례)’를 폐지했다. 탈시설지원조례는 탈시설 장애인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였다.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탈시설지원조례 폐지는 퇴행적 조치”라며 서울시를 규탄하는 성명서를 이례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탈시설지원조례 폐지가 행정부의 의지였다”는 것이 드러났다. 기재일 서울시 장애인거주팀장이 천주교계가 탈시설 반대 입장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해 한 발언이다. 이렇게 오세훈 시장은 장애인의 삶을 다각도로 억압하고 있다. 장애인의 ‘생존권’ 자체를 ‘약탈’하고 있는 것이다.

- 전장연, 오세훈의 ‘장애인권리 약탈’ 알리러 유럽에 가다

장애인들은 오세훈 시장의 장애인권리 약탈 행태 이전부터 오랜 시간 투쟁을 이어왔다. 2001년, 오이도역 참사를 계기로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국회로, 청와대로 향했고 삭발과 단식도 마다하지 않았다. 장애인에게 차별적인 지하철과 버스를 막아세우고, 농성과 점거, 한강 다리를 6시간 기어서 건너는 투쟁까지 감행했다.

그럼에도 세상은 여전히 장애인을 배제하고 있다. 변화의 조짐이 보일 때마다 정책은 퇴행하고, 관심은 점차 식어갔다. 이런 반복 속에서 장애인들은 더 절박해졌고, 국내를 넘어 국제사회에 손을 내밀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됐다.

전장연은 한국의 만연한 특히, 오세훈 시장의 ‘장애인권리 약탈’ 행태를 전 세계에 알리러 유럽에 가기로 한다. 특사단은 14박 15일간 매일 이른 아침 노르웨이, 독일, 프랑스의 지하철 바닥을 기며 “STOP 오세훈”을 외쳤다. 거리 곳곳에 ‘권리스티커’도 붙였다. 유럽의 지하철 승강장에서, 광장에서, 독일 T4 위령비에서 다이인 행동을 했다. 각국의 한국대사관 앞에서 농성도 했다. 20개의 장애인권리 옹호 단체 및 기관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을 만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이야기하고 연대를 호소했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독일 베를린 지하철에서 포체투지를 하며 한국의 장애인권리 약탈 행태에 대한 베를린 시민의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나는 그런 특사단의 투쟁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기록했다. 특사단의 모든 여정에 함께하며 장애인권리 약탈 현실이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동할 때마다 장애인들의 휠체어가 비행기에 실릴 수 있을지 없을지 항공사와 씨름해야 했던 순간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 장애인 활동가들은 더 멀리 떨어진 역으로 가 지하철을 타야 했던 상황들, 시설폐쇄법이 제정된 노르웨이에서도 여전히 소규모 장애인거주시설이 운영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 모든 순간, 왜 특사단의 투쟁이 필요한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 루브르박물관에서 외친 “STOP 오세훈”의 의미

특사단은 프랑스 루브르박물관에서도 다이인 행동을 벌였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휠체어에서 내려와 박물관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들은 자신의 몸과 휠체어를 쇠사슬로 휘감았다. 특사단원 10명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그림 앞에서 “STOP 오세훈”(오세훈은 장애인권리 약탈을 멈춰라), “New Citizenship”(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사회로), “Against Ableism(비장애중심주의 철폐)”을 외쳤다.

그들의 지체 없는 움직임과 단호한 목소리, 결연한 표정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겠다는 의지’와 ‘간절함’이 느껴졌다. 14박 15일 동안 유럽에 나가 단순한 여행이 아닌 투쟁을 한다는 것은 큰 용기와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기꺼이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장애인권리 약탈 현실을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해보겠다는 마음과 다짐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타국에서, 그것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명소인 루브르박물관에서 직접행동을 벌인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다. 누군가의 비웃음을 살 일도, 동정을 받을 일도, ‘나라 망신시킨다’며 손가락질받을 일도 결코 아니다.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이 루브르박물관에서 기습 ‘다이인 행동’을 벌이고 있다. 많은 관람객들이 특사단의 다이인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 김소영

특사단의 유럽 투쟁은 실제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르몽드·AFP 통신, 영국의 로이터 통신, 일본의 교도통신 등 주요 외신에서도 이들의 투쟁을 취재하고 보도했다. 한편으로는 서울시가 특사단원인 이형숙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의 급여 출처를 추궁하며 압박에 나서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당연한 권리’를 위해 ‘굳이’ 싸워야만 했다

전장연의 투쟁엔 늘 꼬리표처럼 ‘굳이’가 따라붙는다. 왜 ‘굳이’ 유럽까지 가서? 왜 ‘굳이’ 지하철역에서? 왜 ‘굳이’ 출근 시간에? 왜 ‘굳이’ 바닥을 기어서?

왜 전장연의 투쟁에만 ‘굳이’가 붙어야 할까. 비장애인은 ‘당연히’ 유럽으로 떠날 수 있고, ‘당연히’ 지하철역에 가고, ‘당연히’ 출근 시간에 나설 수 있다. 전장연의 투쟁은 그 모든 ‘당연한 것’을 장애인에게도 ‘당연히’ 만들기 위한 투쟁이다.

이번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은 2만 3천여 명의 후원과 지지로 유럽으로 떠날 수 있었다. 특사단의 투쟁을 위한 모금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전장연이 가장 잘하는 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해 주세요.”

지난 12·3 내란사태 이후 시민단체, 농민, 여성, 성소수자 그리고 장애인들에게 연대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24일, 안국역에서 진행된 ‘10차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 다이인 행동’에는 300여 명의 시민이 함께했다. 지하철 투쟁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많은 시민들이 모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전장연이 쌓아온, 매일이 투쟁이었던 역사 덕분에 세상은 변해왔고, 변해가는 중이다.

지난 24일, 안국역에서 진행된 ‘10차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 다이인 행동’ 현장. 300여 명의 시민이 함께하고 있다. 시민들은 “반민주 반헌법 장애인권리약탈자 윤석열을 탄핵하라!”, “중증장애인도 노동하자!”등의 문구가 쓰여있는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사진 전장연 제공
지난 24일, 안국역에서 진행된 ‘10차 출근길 지하철 승강장 다이인 행동’ 현장. 300여 명의 시민이 함께하고 있다. 시민들은 “장애인권리약탈자 윤석열 탄핵! 오세훈 OUT”, “탈시설 크리스마스, 시설은 아니다!” 등의 문구가 쓰여있는 종이 피켓을 들고 승강장에 누워있다. 사진 전장연 제공

전장연의 유럽 투쟁은 단순히 ‘굳이’ 해야만 했던 일이 아니었다. 장애인의 권리가 배제되지 않고, 모두가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투쟁이었다. 장애인권리 쟁취를 위한 전장연의 여정은 끝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는 지금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세상을 움직이고 변화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