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꿈”: 거인의 어깨 위에서 바라보는 탈시설의 풍경 / 최태현

[칼럼] 최태현의 장애와 경계적 사유

2025-01-15     최태현

2024년 10월 24일 서울 마포에 위치한 학지사 건물에서는 의미있는 북토크가 열렸다. 도로시 그리피스 등 학자들이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발달장애인 탈시설 역사를 중심으로 탈시설의 성과와 전략을 분석한 편저서인 「어려운 꿈」이 그 주인공이었다. 「어려운 꿈」(부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의 시설 수용 끝내기)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3개의 장애인 거주시설을 폐쇄하면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 941명이 2004년에서 2009년까지 지역사회로 이전하는 과정이 담겨있는 책이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주최한 이 행사에는 공역자 중 한 명인 전현일 국제발달장애인협회장이 참석하여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대표와 함께 책의 주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2024년 10월 24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이 주최한 『어려운 꿈』 번역출판 기념 북콘서트가 열렸다. 전현일 국제발달장애인협회장과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가 책의 주요 메시지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있다.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한국의 탈시설 운동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들은 한 가지 아쉬움을 토로한다. 탈시설 운동이 규범적 주장에 치우쳐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인간다운 삶, 심지어 탈시설이라는 큰 방향에는 동의한다 해도 이들은 탈시설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외국의 사례에 대한 연구들은 무얼 말하고 있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에 대해 좀더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기대한다. 탈시설 운동 진영으로서는 충족시켜야 할 기대라고 할 수 있다. 2024년 서울시 탈시설 지원조례가 제정 2년 만에 주민조례청구에 의해 폐지된 사례에서 보듯이 탈시설 정책을 둘러싼 논쟁은 이미 상당히 이데올로기화했다. 그런 시점에서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뒷받침할 정보가 과연 가능한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엄밀한 조사방법에 기반한 과학적 연구 결과에 대한 지식은 긴요하다.

『어려운 꿈: 중증ㆍ중복 발달장애인의 시설 수용 끝내기』 (Dorothy Griffiths 외. 2016. A Difficult Dream: Ending Institutionalization for Persons with Intellectual Disabilities with Complex Needs. NADD Press. 전현일.남병준 공역. 2024. 서울: 학지사). 사진출처 알라딘

이번에 번역된 책 「어려운 꿈」은 바로 그런 요청에 부응하는 책이다. 3부로 나뉜 책의 제1부는 탈시설의 역사와 그 효과에 대한 학술적 발견들을 종합적으로 요약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제2부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의 탈시설 정책 진행 과정과 그 결과를 자세히 묘사했다. 제3부에서는 앞서의 교훈들을 바탕으로 탈시설 전략들을 일종의 가이드라인 형태로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독자들은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부담을 갖기보다는 원하는 부분에 집중해서 읽으면 된다. 탈시설이 과연 탈시설 장애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켰는지 과학적 탐구 결과가 궁금하다면 제1부를, 탈시설 정책의 전범으로 꼽히는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탈시설 정책을 지속해나갈 수 있었는지 궁금하다면 제2부를, 탈시설 정책은 앞으로 어떻게 추진하고 탈시설한 장애인들은 어떻게 지원하면 좋을지 현실적 조언을 구한다면 제3부를 중심으로 읽으면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학술서다. 문체나 흐름이 일반 독자들에게 그리 친절하지는 않다. 숲이 아닌 나무만 보면 탈시설에 대한 긍정적 정보만 제공하고 있지 않다. 철저히 학자의 입장에서 탈시설의 효과에 대한 과학적 발견들을 담담하게 기술한다. 탈시설의 효과는 반드시 일관되지 않으며, 맥락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아직 연구의 방법이 정교하지 않거나 충분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전체적인 결론에서는 탈시설의 전반적인 긍정적 효과가 탈시설 정책을 추진하기에 충분할 만큼 발견되어 왔음을 분명히 한다. 시설이 더 낫기에 탈시설의 효과가 잘 포착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탈시설한 환경이 시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경우 탈시설의 효과가 포착되지 않는 것임을 밝힌다. 오히려 이렇게 서로 다른 결과들을 보여주면서 큰 흐름을 강조하다 보니 책은 설득력을 더한다. 아울러 긍정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실천적 전략들을 과거의 (아쉬운) 경험으로부터 끌어낸다는 점에서도 도움이 된다.

이 책은 누구에게 유용할까. 북토크 중에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을지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공역자인 전현일 회장과 대담자인 윤종술 대표는 부모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탈시설에 대해 막연한 우려를 품고 있는 부모들이 탈시설의 과정과 효과에 대해 알고 오해를 풀 필요가 있다는 취지였다. 이에 더하여 물론 학자들, 정책담당자들, 그리고 활동가들도 이 책을 통해 도움을 얻을 수 있다.

송효정 피플퍼스트서울센터 사무국장이 질문하고 있다.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피플퍼스트서울센터의 송효정 활동가가 이 질문에 대해 장애인 당사자들이 읽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장면이었다. 탈시설은 당사자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화이자 정책인데, 탈시설 담론은 당사자의 자기결정보다는 정책담당자들과 부모들, 시설 운영자들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탈시설의 과정과 효과에 대한 정보가 불충분한 것은 둘째치고라도, 존재하는 정보마저도 당사자보다는 그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서 주로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이 환기되는 순간이었다.

이 지적에는 여러 의미가 있다. 하나는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의 핵심에 시혜가 아니라 정보가 있다는 점이다. 따뜻한 선의와 대안의 제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제공되어야 한다. 발달장애인이 과연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나오겠지만, 그 판단가능성을 처음부터 차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책이 던지는 교훈이기도 하다. 탈시설은 개인의 필요를 우선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절대적인 성패 요인이라는 것이다.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딘지 탐색하고, 거기까지 어떻게든 나아가야 한다.

다른 하나는 어느새 탈시설 운동이 당사자를 중심에 두는 인식을 하는 지점에까지 나아왔다는 점이다. 공역자인 전현일 회장과 대담자인 윤종술 대표가 이 책을 부모들에게 권하고 싶다고 할 때 그들은 부모로서 동료 부모들에게 말을 거는, “부모 세대”가 중심인 탈시설 운동의 시대를 상징하고 있었다. 탈시설 발달장애인 조력자로서 송효정 활동가의 발언은 어느덧 탈시설한 당사자들이 함께 모여 역량을 기르고 스스로 탈시설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다음 시대를 상징하고 있었다.

둘 다 옳았다. 이 책은 부모도, 장애인 당사자도 읽어야 한다. 아마도 모두 함께 읽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은 ‘어려운 꿈’이다. “왜” 어려운 꿈인지는 이 책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긴 시간을 지나왔고, 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며, 시대에 따라 정치적 반대에 따른 정책의 반동과 재원 부족에 직면하기도 했다. 탈시설한 이들의 삶이 얼마나 나아지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는 여전히 시설에 많은 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여기서 질문을 바꾸어 본다. 이 꿈은 “누구에게” 어려운 꿈인가? 그 꿈은 과연 누가 꾼 꿈이었을까?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탈시설은 얼마나 어려운 꿈일까?

탈시설 운동가들의 눈에 비친 세계의 중심에는 장애인 당사자들이 있었을까? 그랬다. 탈시설 운동은 관념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시설에 갇혀, 사슬에 묶여, 인간성을 인정받지 못한 장애인 거주인들을 활동가들이 ‘목도’한 데서 시작되었다. 탈시설 운동이 과학적인 정책평가보다는 규범적 주장에 이끌려 전개되는 것처럼 보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출발선 자체가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는 공기업을 현재처럼 둘지 민영화할지, 대통령제를 할지 내각제를 할지처럼 출발선도 나쁘지 않지만 더 나은 개선책을 찾기 위해 과학적 지식을 요하는 정책과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어쩌면 우리는 ‘어려운 꿈’이 아니라 장애인 당사자의 입장에서 ‘절실한 꿈’이라고 제목을 붙여야 했을지도 모른다. 사실 이 문장조차 짐작일 뿐이다.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탈시설은 과연 어떤 꿈일까. 그 꿈을 중심으로 탈시설을 둘러싼 복잡한 이데올로기적·실천전략적 담론들을 정리한다면 가장 중요한 이슈로는 무엇이 남을까.

“거인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말이 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거인의 어깨와도 같다. 현재 한국에서 전개되고 있는 탈시설 운동에 이론적 기반과 역사적 경험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이 책 역시 중증·중복 발달장애인이라는 시설·탈시설 당사자들의 어깨 위에 있다. 이들이 거인이다.1) 이제 우리가 할 일은 그 어깨 위에서 다음 시대를 내다보는 일일 것이다. 그 어깨에 올라가 보시기를 권한다. 그러면 다음 질문들이 떠오른다.

북콘서트에 참여한 발달장애인 당사자, 부모, 활동가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중증 중복 발달장애인 시설수용 종식’ 종이 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1) 이 부분의 통찰을 공유해 주신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이정하 활동가에게 감사드린다.

 

필자 소개

최태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가르치며 연구하고 있다. 『유언을 만난 세계』의 한 사람으로 조금이나마 응답해보고 싶어 경계를 더듬으며 글을 쓴다. 2725senato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