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대구희망원 강제수용 피해자에 “강제 입소 아니다” 왜곡 주장

희망원 피해자 첫 국가배상청구소송 변론기일 열려 피고 대한민국 “스스로 입소했을 가능성 커” 국가기관인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 부정하는 국가 원고 변호인 “대단히 부적절하고 모욕적인 처사” 탈시설운동 활동가 “트라우마 일으키는 2차 가해”

2025-05-23     김소영 기자

대구시립희망원(아래 희망원) 불법 단속 및 강제수용 피해생존자인 전봉수 씨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의 변론기일이 22일 오전 10시 30분 대구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이는 희망원 강제수용 피해생존자 중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첫 소송의 첫 변론 절차였다.

이날 재판장에서 피고 대한민국 측 변호인인 박경환 법무법인 지름길 변호사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전면 부정했다. 전봉수 씨의 강제수용 피해에 “상당한 의문이 있다”며 “자유의사에 따라 입소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왜곡 주장했다.

- 진화위, 희망원 등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진실규명 결정… 국가에 보상 권고

지난해 9월 6일, 진화위는 희망원을 비롯한 전국 4개소의 시설[희망원·서울시립갱생원·충남 천성원(성지원, 양지원)·경기 성혜원]에서 불법적 단속 및 강제수용, 감금·폭행·강제노역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발표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했다.

진화위는 국가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공식 사과와 실질적 피해 회복 조치 △시설수용 인권침해 재발방지책 마련 △지속적 피해자 지원 대책 마련 등을 권고했다. 이외에도 피해자들의 개별 구제신청 없이도 적절한 보상 및 재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그럼에도 국가는 집단수용시설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체계를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지난해 12월 10일, 전봉수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해 12월 10일 열린 대구지방법원 앞 국가배상청구소송 제기 기자회견 현장. 사진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 충남 천안 살던 전봉수 씨, 대구로 납치돼 24년 강제 수용

지적장애인인 전봉수 씨는 1964년 8월 13일, 충청남도 아산시 온양동에서 태어났다. 전 씨는 1998년 11월 17일 천안역에서 놀던 중 스님으로 보이는 신원미상의 한 남성이 국밥을 사준다는 말에 따라갔다가 쇠창살이 있는 봉고차에 강제로 태워져 납치됐다. 그 길로 대구에 있는 희망원에 수용됐다.

당시 전 씨는 다른 형제들의 이름과 살고 있는 동네를 알고 있었지만 이를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다. 전 씨의 신상기록카드를 살펴보면 입소 의뢰처가 ‘대구시장’이라고 적혀 있다. 집단수용시설 운영이 가능하게 했던 사회구조를 국가와 지자체가 묵인하고 방치했을 뿐만 아니라, 강제수용 과정에도 책임이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다.

전 씨는 2022년 7월 5일까지, 총 2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희망원에 강제수용되어 생활했다. 약 7~8명이 한 방에서 생활했고, 주로 종이가방 만드는 일을 했다. 도망을 가다 붙잡히면 2~3일간 독방에서 갇혀 생활하는 벌을 받았다.

눈앞에서 같이 생활하던 사람이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는 등 비참한 고통을 당해야만 했다. 진화위는 24년 동안 감금·폭행·강제노역에 시달린 전 씨의 사례를 진실규명 결정하며 집단수용시설 인권침해 사례로 공식 인정했다.

- 피고 대한민국 측 “스스로 입소했을 가능성 커” 진화위 결정 전면 부정

그런데 국가가 국가기관인 진화위의 결정을 전면 부정하는 행태를 보였다. 첫 변론기일에 나선 피고 대한민국 측은 “‘강제수용을 당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시 전 씨의 나이는 40세였다. 강제로 차량에 태워질 정도로 약한 어린이도 아니고, 공무원도 아닌 스님이 강제로 원고를 태워 납치할 이유가 없다”며 “전 씨가 자유의사에 따라 희망원에 입소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전봉수 씨의 변호인인 강수영 법무법인 맑은뜻 변호사는 대한민국 측의 주장을 전면 반박했다. 강 변호사는 “인터넷도 없는 시절에 ‘아무 연고도 없는 대구의 희망원을 스스로 알아보고 희망해서 갔다’는 것은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지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없는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전 씨는 희망원에 강제수용되기 전에 충남 양지원에도 입소한 적이 있다. 전 씨의 누나가 전 씨를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1993년 3월, 그를 양지원에 입소시켰다. 이후 양지원 인권침해에 대한 언론보도가 잇따르자 1998년 7월, 전 씨를 퇴소시켰다.

대한민국 측은 전 씨의 누나가 진화위 조사에서 “(양지원에서) 본인은 맞지는 않았대요”라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전 씨가 양지원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바 없이 수용시설에 대한 ‘나쁘지 않은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스스로 입소했을 개연성이 더욱 높아 보인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전 씨 누나 진술의 앞뒤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원하는 의도대로 내용을 ‘취사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측이 근거로 내세운 부분의 전체 진술을 보면 전 씨의 누나는 “너(전봉수 씨)도 거기(양지원)서 맞고 지냈냐고 제가 물어보니까, 본인은 맞지는 않았대요. 사실 봉수가 누가 시키는 일을 잘하거든요. 그런데 자기가 다른 사람들 맞고 너무 심하게 맞은 사람은 죽기도 하고 그러면 산에다 묻는다 이런 이야기도 하더라고요”라고 했다.

탈시설운동단체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의 이정하 활동가는 “피해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진술만 일부 발췌해서 확대해석한 것은 너무나 문제적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증언”이라며 “당사자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이야기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직접 맞지 않았다고 해서, 죽지 않았다고 해서 인권침해가 아닌 것이 절대 아니다. 죽는 상황, 심지어 암매장되는 상황을 장기간 지켜본 것인데 그것으로도 극한의 공포를 느낀다. 이 또한 극심한 인권침해”라고 강하게 말했다.

- “얼마든지 외출할 수 있었다” 피해당사자 진술 왜곡까지

대한민국 측은 전 씨가 진화위 조사 당시 “외출권 끊고 나가서 술을 마시고 오는 사람들이 있죠”라고 진술한 것을 근거로 “전 씨는 얼마든지 외출할 수 있었고 자유로이 술을 마시고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불어 “전 씨가 퇴소를 원했다면 외출하여 얼마든지 경찰이나 가족들에게 알릴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이에 이 활동가는 “강제수용시설에서 외출이 가능한 사람들이 일부 있었다. 시설의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을 골라 심부름이나 특정한 ‘임무’를 시키기 위해 외출을 허락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조차도 어디 갈지 선택할 수 없었다”며 “희망원은 감금성이 높았던 시설이다. 특히 장애가 있는 사람은 더 외출이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강수영 변호사도 “이 사건의 본질은 피해자를 강제로 입소시켜 24년씩이나 집단수용생활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지, 잠깐 술을 마시고 올 수 있다고 해서 ‘자유롭다’고 판단하는 것은 논리 비약”이라고 반박했다.

전 씨는 2017년 2월, 희망원에서 도망쳐 천안에 사는 형의 집을 찾아갔으나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고 다음 날 희망원에 자진 복귀한 적이 있다.

이를 두고 대한민국 측은 “고향을 찾은 2017년부터 손해배상청구의 소멸시효기간인 3년이 지난 때 소송을 제기한 것이므로 시효가 소멸됐”으며 “스스로 희망원에 입소했으므로 그 자체로도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는 “20년 이상 가족들과 관계가 끊어지다 보니 가족을 만날 수 없었고 집도 없었다. 노숙을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이 희망원으로 돌아온 것인데 이러한 사실관계와 맥락을 무시하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진화위 진실규명 결정이 있는 경우, 결정 시점부터 소멸시효가 시작된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다”며 대한민국 측의 소멸시효에 관한 주장에도 반박했다.

또한 “피해생존자 당사자인 전봉수 씨가 출석한 자리에서 피해를 부정하고 왜곡하는 주장을 하는 것은 상당히 문제가 있다. 전 씨뿐만 아니라 진화위의 진실규명 결정을 완전히 모독하는 것”이라고 강하게 규탄했다.

이정하 활동가도 “집단수용시설 문제는 시설 특성과 과거사를 감안해서 접근해야 하는데 대한민국 측은 전혀 그렇지 않고 현재 시점으로만 집단시설 강제수용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고 지적하며 “대한민국 측의 발언 자체가 2차, 3차 가해다. 시설수용 피해생존자에게 트라우마를 발현하는 왜곡된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12월 10일, 전봉수 씨가 소장을 들고 있다. 사진 대구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 “24년 내 청춘이 아깝다. 그래서 소송을 제기한다”

지난해 12월 10일 열린 소송 제기 기자회견에서 전봉수 씨는 “희망원에선 아무도 내 가족을 찾아주지 않았다. 나를 독방에 가두고 나오지 못하게 문을 잠갔다. 나는 많이 맞았고 죽는 사람도 많이 봤다”고 전했다.

그는 “지금은 20여 년 만에 가족을 만나 너무 좋다. 희망원에서 보낸 내 청춘이 아깝다. 그래서 소송을 제기한다. 진실을 밝혀달라”고 이야기했다.

전 씨의 다음 변론기일은 대구지방법원에서 7월 24일 오후 3시로 예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