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밉상, 너 싫어”… ‘무죄’ 판결 뒤에 남겨진 목소리 / 윤상원
‘용인 특수교사 사건’ 2심 판결에 대한 비판적 성찰
지난 5월 13일, 사회적 이목이 쏠렸던 ‘용인 특수교사 아동학대 관련 사건’ 항소심에서 해당 교사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즉시 ‘환영’ 논평을 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의 핵심은 녹음 파일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짚어야 한다. 다시 말해, 법원은 교사의 발언이 학대인지 아닌지를 판단한 것이 아니라, 단지 증거가 법적 효력을 갖지 못한다고 본 것이다.
법원의 판결문이 한 아이의 상처받은 마음에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한 사람의 특수교사이자 아동학대 연구자로서, 이 사건이 우리 교육계에 던지는 무거운 의미를 국제적인 아동 인권의 기준을 통해 성찰하고자 한다.
국제 기준이 말하는 ‘정서적 학대’
국제 사회는 오래전부터 아동을 모든 형태의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기준을 발전시켜왔다. 이 기준들은 법원의 형사처벌 여부와는 다른 차원에서 아동의 권리를 조망한다. 먼저 세계보건기구(WHO)는 아동학대를 ‘책임, 신뢰, 힘의 관계에서 아동의 건강, 생존, 발달 또는 존엄성에 실제적 또는 잠재적 해를 가하는 모든 형태의 정서적 가혹행위’ 등으로 정의하며, 특히 ‘정서적 학대’를 ‘언어적 공격, 모욕, 위협, 고립, 거부 등 아동의 자존감과 정서 발달에 해를 끼치는 행위’로 구체화한다.
이러한 포괄적 정의에 더해, 대한민국도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UNCRC)은 아동 인권의 대헌장으로 불린다. 협약 제19조는 모든 형태의 신체적·정신적 폭력과 학대로부터 아동을 보호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을 국가의 의무로 명시한다. 또한 제3조는 모든 결정에 있어 ‘아동 최우선의 원칙’을 고려할 것을 강조한다.
나아가 미국의 아동학대 예방 및 치료에 관한 법(CAPTA)이나 미국아동학대전문가협회(APSAC)의 지침 등 해외의 주요 기준들은, 법적 유죄 판결과 별개로 아동의 심리적 기능에 해를 끼치는 ‘돌봄 제공자의 행동 패턴’ 자체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 즉, 단일 행위의 범죄 성립 여부를 넘어, 아동이 처한 환경과 관계 속에서 반복되는 언어적 공격이 ‘잠재적 해악’을 끼친다면 이는 학대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교사의 발언, 국제 기준에 비추어보다
이러한 국제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교사가 ‘장애라 명명된 아동’에게 한 발언들은 심각한 문제를 드러낸다. “진짜 밉상이네, 도대체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거야” 혹은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와 같은 말은 아동의 인격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모욕이자 경멸에 해당할 수 있다.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싫어, 너 싫다고, 나도 너 싫어, 정말 싫어”라는 노골적인 혐오 표현은 아동에게 정서적 거부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며,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다. 나아가 “야, 니(네)가 왜 여기 있는 줄 알아? …친구들한테 가고 싶어? 못가 못 간다고”라는 발언은 아동을 공동체로부터 고립시키고 배제하는 명백한 위협이다.
이 발언들은 유엔아동권리협약 제19조가 명시한 ‘정신적 폭력’으로부터 아동을 보호해야 한다는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될 소지가 크다. 특히 ‘장애라 명명된 아동’의 특성을 ‘고약한 버릇’으로 치부하고 혐오를 드러낸 것은, 그 자체로 아동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명백한 차별 행위이다.
진보 교육 단체의 ‘환영’ 논평, 무엇이 문제인가
진보적 가치를 표방하며 사회적 약자와 연대해 온 전교조가 왜 이토록 명백한 국제 인권 기준을 외면하고, 아동의 목소리보다 조직의 입장을 먼저 내세웠을까. 교권 보호는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교권은 아동의 인권을 침해할 권리가 아니다.
전교조의 ‘환영’ 논평은 법원의 판결 이면에 있는 아동의 인권 문제를 간과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는 ‘우리 편’의 법적 승리만을 중시하고, 가장 취약한 존재인 아동의 고통을 부차적인 문제로 여기는 ‘선택적 연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성급한 환영의 목소리보다, 아동의 상처에 깊이 공감하며 성찰하는 신중한 침묵이 더 진실된 ‘교육적 연대’의 표현일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 전체에 묻고 있다. 법의 잣대만으로 아이들의 상처를 모두 헤아릴 수 있는가. ‘교권’이라는 이름 아래 ‘아동의 존엄성’이 잊혀져도 되는가. 법원의 판결이 한 아이의 상처를 지울 수는 없다. 그 상처를 보듬고 어떤 아이도 교실에서 거부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의 숙제다.
필자 소개
윤상원. 대한민국의 시각장애라 명명된 ‘특수’ 교사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교 특별요구교육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모든 인간은 약점으로서 손상을 가지고 있으며, 인류 혹은 개인 발달의 역사는 이 손상에 대한 부단한 사회적 보완의 결과라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손상을 발달의 계기가 아닌 장애로 만드는 문화 역사적 현실에 맞서 아이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저항하고자 한다. 책 《누구를 위해 특수교육은 존재하는가 - 평등한 분리 교육은 없다》(교육공동체벗, 2023)를 쓰고, 《특수에서 보편으로: 통합교육에 대한 급진적 제안서》(교육공동체 벗, 2025)를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