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직접 만나달라”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인들의 외침

전국 각지서 대통령실로 모인 피해생존인들 대구 시립희망원, 대전 성지원, 목포 동명원 부산 영화숙·재생원, 칠성원, 형제복지원 등 “국가의 사과와 피해배상, 간절히 바란다”

2025-08-20     김소영 기자
기자회견에 참석한 방영숙 씨(가운데)가 한 손으로 주먹을 쥐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다른 한 손엔 “이재명정부는 모든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인에 대해 사과하라!”고 적힌 종이 피켓이 들려있다. 사진 김소영

“우리 억울한 걸 풀어달라는 거지. 사과도 받고 싶고, 나는 거기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에 따르면 현재 부산의 집단수용시설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인임을 밝힌 여성은 세 명뿐이다. 방영숙 씨(70세)는 그중 한 명이다.

부산시 중구 영주동에 살던 방 씨는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영화숙에 끌려갔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일고여덟 살 무렵이었다.

방 씨는 영화숙 식당에서 밀가루 반죽과 설거지를 하고, 창고에서는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포장지에 넣는 등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추운 날씨에도 밖에서 빨래를 하고 물을 길어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손에 걸린 동상은 아직도 부어 있는 채 남아 있다.

어린 나이에 강제로 대여섯 살 아이들을 돌보게 하기도 하고, 지도장에게 야구방망이와 군화발로 두들겨 맞았다. 한 번은 영화숙에서 탈출했다가 하루 만에 붙잡혀, 옷이 모두 벗겨진 채 남자 방 바로 옆에서 밤을 보내야 했다. 방 씨의 영화숙 동료는 지도장에 강제로 임신을 당했다. 그러나 아이는 끝내 사망했고, 방 씨와 동료들은 아이를 직접 묻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그는 9년 가까이 영화숙에 수용됐다.

19일 오전 9시 40분, 대구에 사는 방 씨가 서울행 KTX에 올랐다. 오후 2시,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리는 ‘이재명정부 집단수용시설 사과 및 피해생존인 지원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19일 오후 2시,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이재명정부 집단수용시설 사과 및 피해생존인 지원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모든’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인들에 사과하라”

목포, 부산 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피해생존인 20여 명이 기자회견에 함께 했다.

이날 자리에 참석하기로 한 목포 동명원 피해생존인 문호현 씨가 급하게 병원에 입원하게 되어 또 다른 피해생존인인 박영선 씨가 그의 발언을 대독했다.

동명원은 1972년 ‘부랑아’보호시설로 시작해 2012년 ‘노숙인’보호시설로 전환됐으며, 현재는 ‘노숙인’재활시설로 운영되고 있다.

박 씨는 “동명원은 2022년에서야 알려졌다. 감금·폭행·성폭행·강제피임·강제노역들이 있었고, 강제노역 때문에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업체에 아동을 20명씩 보내고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을 시키고, 사람도 죽어간 곳이 동명원”이라며 “1980년대에는 18살 미만 아이들이 90여 명까지도 수용되어 있었지만, 지금 생존인으로 진실규명을 받은 사람은 4명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14살이던 1991년, 금호포리머 공장 직조기 앞에서 일하다가 330V(볼트) 고압 전류에 감전돼 기계 속에 빨려 들어갔다 기적적으로 살았다. 하지만 당일 퇴원하고 다음 날에도 12시간 교대 근무에 투입되어 할당량을 채워야 했다. 나처럼 일하다, 또는 맞다가 많은 아이들이 동명원 농장에 암매장됐다”며 문 씨의 증언을 전했다.

박 씨는 “지금도 시설에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동명원에 대한 진실규명이 되지 않았다. 정부는 동명원 문제를 외면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했다.

목포 동명원 피해생존인 박영선 씨가 문호현 씨의 발언을 대독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는 “이재명정부가 선감학원, 형제복지원에 대한 사과를 언급했을 때 ‘나머지 집단수용시설은 대한민국에 있었던 시설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며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정부가 꼭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재발 방지 약속을 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 “사과와 배·보상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 필요해”

실제로 7월 30일 SBS 보도를 통해 이재명정부가 정부 차원에서 선감학원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이어 지난 5일에는 법무부가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피해생존자들이 제기한 국가배상소송에서 국가가 제기했던 상소를 취하하고 앞으로도 상소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했다. (관련 기사: 정부, 형제복지원·선감학원 상소 안 한다… 피해생존자들 “책임 끝난 것 아냐”)

권태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변호사는 “국가의 입장 발표를 환영한다”면서도 “여전히 법원을 통한 피해회복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회복 내용 자체도 불충분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대통령에게 직접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후속 조치에 대한 적극적인 입장을 내달라고 이야기하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 변호사는 “오늘 이 자리에 모인 피해생존인들의 외침은 단순한 개인의 고통을 호소하는 이야기가 아닌 법치와 인권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국민의 정당한 요구이며 간절한 요청이다. 집단수용시설 문제는 정부 전체의 조직적인 행위로 발생한 만큼, 그 책임은 현 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에게 있다. 국가가 마땅히 다해야 할 책무와 의무가 있다는 점을 깊이 살펴봐 달라”고 말했다.

권태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과거사청산위원회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그의 손에는 “이재명정부는 신속하게 진화위를 설치하고 피해배보상 절차를 마련하라!”고 적힌 종이 피켓이 들려있다. 사진 김소영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인지원단인 김재형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문화교양학과 교수는 “이재명정부가 약속한 3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는 2기 진화위 종료 직후 빠르게 출범되어야 하며, 필요하다면 ‘부랑인’수용시설에 대한 전수조사도 필요하다. 피해생존인들은 사회적으로 배제되어 있거나 여전히 시설에 있기 때문에 국가가 먼저 조사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피해를 발현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김 교수는 “사과와 배·보상 체계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며 “법무부가 항소를 지양하겠다 발표했지만, 피해생존인들에게 국가가 바로 사과하고 소송 없이 배상금을 지급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석주 영화숙·재생원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와 한종선 형제복지원피해생존자(실종자·유가족)모임 대표가 대통령실 공공갈등조정비서관실에 서한을 제출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대통령실 공공갈등조정비서관실에 대한민국 모든 집단수용시설 피해생존인에게 공식 사과하고 지속가능한 진상규명 및 지원 계획을 즉각 발표할 것을 요구하는 서한을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