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인권 정책 100일, 차별금지법이 시금석이다 / 장혜영
[이재명 정부 100일, 마이너들의 목소리 ⑤]
[편집자 주] 이재명 대통령이 당선되고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00일이다. 이재명 정부의 공식 명칭은 ‘국민주권 정부’다. 새 정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뜻이다.
비마이너는 이재명 정부 100일을 맞아 장애, 성소수자, 여성, 빈곤 차별에 반대하는 마이너들에게 직접 물었다.
“이재명 정부 100일, 당신은 주권자로 권리를 보장받고 있습니까?”
소수자 논의에 유독 인색한 이재명 정부를 향한 마이너들의 목소리. 비마이너가 모아봤다.
- 인권을 지키는 대통령의 면모를 보여준 이재명 정부의 100일
12.3 내란을 수습하고 치러진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한 ‘국민주권정부’ 이재명 정부의 100일이 숨 가쁘게 지났다. 그 가운데 긍정적으로 기억할 만한 장면이 몇 가지 있다.
지난 7월 24일, 이재명 대통령은 전남 나주의 한 공장에서 이주노동자를 지게차에 결박해 조롱하는 영상을 언급하며 “차별과 폭력은 매우 중대한 범죄이고 인권을 침해하는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며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8월 12일에는 “후진적 산재 공화국을 뜯어고치겠다”며 “위험의 외주화, 위험한 작업은 하청에 주거나 외주를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 “목숨보다 돈을 귀하게 여기는 잘못된 풍토가 근본적 원인”이라고 일갈했다.
9월 9일에는 서울 명동 주한중국대사관 인근에서 발생한 ‘반중’ 집회를 언급했다. ‘모욕적 행위에 대해서 집회 주최자들에게 경고하고 있다는 행정안전부 장관에게 “경고 정도로는 안 될 것 같다”, “이게 무슨 표현의 자유냐. 깽판이지”라며 해결 방안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세 가지 모두 고용이나 계약 형태, 혹은 국적이나 인종 등을 이유로 한 부당한 차별과 위험으로부터 시민의 인권을 지키고자 하는 대통령의 면모를 볼 수 있다. 이에 더해 무척 반가운 사건은 이재명 정부가 여성인권 보호에 오랫동안 앞장선 변호사이자 국가인권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차별금지법 제정에 분명한 찬성 입장을 가진 원민경 변호사를 여성가족부 장관으로 지명하고 임명한 것이다.
- 평등권 실현을 위한 차별금지법 제정은 ‘나중에’
그러나 다른 장면도 있다. 이재명 정부의 2인자 김민석 국무총리는 총리로 지명된 직후인 지난 6월 1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차별금지법 논의가 진전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받자 “차별금지법을 본인의 인권과 관련해 절박하게 요구하는 목소리가 하나 있고, 자신의 개인적 또는 종교적 신념에 기초해서 차별금지법을 비판할 때 자신이 처벌받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절박한 반대의 목소리가 있다”며 “이 두 가지 본질적인, 헌법적 목소리에 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모두 알다시피 차별금지법에는 처벌 조항이 없다. 현존하는 차별을 통해 실제로 인권을 침해당하는 시민의 절박한 법 제정 요구와 허위사실에 기반한 과장된 불안을 등치시켜 후자를 ‘본질적이고 헌법적인 목소리’로 치켜세우는 문제적 발언이었다.
2023년에 기독교계 단체를 방문해 “동성애는 모든 인간이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라는 성소수자 혐오 발언을 한 것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입장 변화는 표명되지 않았다.
국무총리 인사청문회에서도 누구도 차별금지법에 대해 묻지 않았다. 김민석 국무총리 임명안을 재가하던 7월 3일에 열린 취임 30일 기자회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 도출에 노력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일에는 경중 선후가 있다. 저는 무겁고 우선적인, 급한 일부터 하자는 입장”이라며 사실상 ‘나중에’라는 답변을 반복했다.
7월 29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대표 선거 TV토론에서 정청래 당시 후보는 차별금지법에 관한 질문에 “종교 관계에 있어서 강력한 저항이 있다”, “이 법은 시간을 두고 설득하면서 가야 할 부분이지 갑작스럽게 일방적으로 처리하기엔 현실적으로, 정치적으로 어렵다”고 답했다.
대통령과 국무총리, 여당 대표 모두가 정부 출범 직후에 평등권 실현을 위해 오랫동안 요구되어온 제도적 기반인 차별금지법 제정을 또 한 번 노골적으로 외면한 셈이다. 9월 16일에 확정된 이재명 정부의 123대 국정과제 8번은 ‘모두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되는 인권 선진국’이지만 그 세부 과제에 차별금지법 제정은 없다.
누군가는 이 상반된 장면들 가운데 부정적인 장면만을 모아 이재명 정부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주장한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분명 지난 100일간 노동자와 이주민의 인권문제에 관해 진일보한 행보를 보여주었다.
다른 누군가는 오로지 긍정적인 장면만을 모아 이재명 정부가 정말로 ‘모두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되는 인권 선진국’을 만들 것이니 그저 믿고 기다리면 다 알아서 해줄 거라고 주장한다. 이 역시 동의하지 않는다.
이재명 정부가 말하는 ‘모두의 존엄과 권리’에 성소수자와 여성의 권리가 포함된다고 믿기에는 응원봉 광장을 지킨 성소수자 시민보다 내란 세력의 몸통이 된 극우 개신교 세력의 눈치를 더 많이 보는 대통령과 총리, 여당 대표의 ‘나중에’ 기조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 시스템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시스템 전체가 나서야
이재명 정부 100일간의 인권 정책을 평가하기 위해 지금 가져야 할 적절한 태도는 상반된 장면이 뒤섞인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한 정부 안에 존재하는 인권 문제에 대한 양극화된 태도는 이재명 정부 100일간의 인권 정책과 행보에 가장 결여된 것이 바로 일관성임을 알려준다.
한편 긍정적 장면은 대부분 국정운영의 시스템 개선보다는 특정 사건이나 의제에 관한 대통령 개인의 행보와 메시지를 통한 퍼포먼스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의 퍼포먼스는 반짝 관심을 모으거나 분위기를 환기할 수는 있어도 정책의 지속 가능성을 보장하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는 시스템의 변화다. 생명보다 이윤을, 평등보다 특권을 중시하며 고속 성장해 온 이 사회의 시스템에 인권의 영점을 설정하는 일은 대통령의 개인기만으로 할 수 없다. 시스템적 변화를 천명하고 그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비롯해 유력 정치인은 물론 정부와 여당 등의 시스템이 함께 나서서 노력해야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스템적 변화에는 시스템적 저항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돌파하기 위해 시스템 전체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나주의 이주노동자 차별 문제의 해결책에 관해 “각 부처가 소수자, 사회적 약자, 외국인 노동자 같은 우리 사회의 소외된 영역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인권 침해 행위 실태를 최대한 파악하고 다시는 재발하지 않게 하는 현실적인 방안이 무엇인지 보고해달라”고 주문했다.
따로 수고할 필요 없다. 여기에는 20년 전부터 분명한 답이 나와 있다. “차별은 사회적 통합을 해치는 주요 요인의 하나이며, 특히 차별 피해자의 다수가 그 사회의 약자인 경우가 많은 바, 차별금지법 제정은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보호 및 국민 인권의 전반적인 향상을 도모하고, 더 나아가 사회통합 과제의 해결을 지향함.”
2006년,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공약하고 당선된 노무현 정부의 국가인권위원회가 3년간의 폭넓은 연구와 의견수렴을 거쳐 ‘차별금지법’ 안을 정부에 입법 권고하며 밝힌 차별금지법 제정의 의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법 제정의 기대 효과로 “불합리한 차별 관행이나 제도, 정책 등을 적극적으로 시정하기 위한 실효성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사회적 약자, 소수자의 삶의 질 향상, 개인적 기본권 보호 강화, 인권 친화적 문화 조성 등의 바탕이 될 수 있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정확히 이재명 대통령이 각료들에게 주문한 해결책이 목표하는 바와 같다.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적 해결책을 활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 인권 선진국의 시금석, 차별금지법
이재명 정부의 초대 성평등가족부 장관이 될 원민경 현 여성가족부 장관은 차별금지법의 필요성과 함께 토론의 장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러한 견해는 반가운 것이지만, 부처의 기능 강화를 감안하더라도 정부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과 총리, 여당 대표가 정반대의 입장을 가진 상황에서 원 장관이 얼마만큼의 운신의 폭이 가능한지 의구심이 들지만, 어차피 안 될 거라는 냉소를 흘리기보다 훌륭한 인사의 기용을 정부의 인권 정책에 일관성과 원칙을 부여하는 계기로 삼을 것을 촉구하고자 한다.
일관성 없는 갈팡질팡 인권 정책으로는 흔들리는 민주주의의 기반을 제대로 바로잡을 수 없다. 극우 내란 세력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차별받고 편견에 시달리는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이 훼손된 틈바구니를 노리며 힘을 확장해 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소수자와 장애인과 페미니스트의 인권을 훼손하며 그렇게 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권 보장에 관련된 온갖 사안을 멈춰 세우고 우리 사회 전반의 인권과 민주주의의 뿌리를 좀먹어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국민주권정부’ 100일, ‘모두의 존엄과 권리가 보장되는 인권 선진국’으로 나아가는지를 판단하는 시금석은 그러므로 차별금지법이다.
필자 소개
장혜영. 정의당 전 국회의원. 현 정의당 마포구위원회 지역위원장 겸 비영리단체 망원정x 대표. 탈시설 발달장애인 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2018)과 책 〈어른이 되면〉으로 만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