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의 주인은 나! 발달장애인의 몸에 무관심한 사회를 바꾸자 / 김다인
[편집자 주] 지난 9월 25, 26일, 12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가 열렸습니다. 피플퍼스트대회는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여러 차례의 준비 워크숍을 거쳐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내용을 마련하는 행사입니다. 이번 대회에서 발표된 세 가지 슬로건에 대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발언문을 게재합니다.
① 발달장애인도 독립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 / 정현우 충북피플퍼스트 활동가
② 발달장애인의 힘으로 피플퍼스트를 전국에 만들자. / 이성희 경기피플퍼스트 활동가
③ 내 몸의 주인은 나! 발달장애인의 몸에 무관심한 사회를 바꾸자. / 김다인 부천피플퍼스트 활동가
안녕하세요. 저는 경기피플퍼스트 부천 부위원장 김다인입니다. 저는 “발달장애인의 몸에 무관심한 사회를 바꾸자”라는 주제를 이야기하러 나왔습니다.
한국피플퍼스트대회를 준비하면서 우리의 몸과 건강에 관해 동료들의 경험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 이야기일 수 있는 상황이 많아서 공감되었습니다.
한국의 건강검진 제도는 만 20세 이상 성인에게 정기적인 건강검진을 제공한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고혈압, 당뇨, 암 같은 큰 질환을 초기에 발견할 수 있다고 정부에서는 자랑을 하는데요. 그런데 워크숍에 참여한 발달장애인 중에는 건강검진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습니다. 내가 정기적으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서, 건강검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혼자서는 병원에 가기 어려워서, 애써서 병원에 찾아갔는데 문진표가 어렵고, 의료진이 설명을 잘해주지 않아서. 누구나 이메일 주소가 있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이메일 주소를 요구하는 병원, 장애 정도가 심하거나 폭력성이 있다며 검진을 받아줄 수 없다는 병원까지. 도대체 어떤 문제부터 해결해달라고 말해야 하는지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한국의 건강검진 제도는 만 20세 이상 모든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왜 문진표는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져 있을까요? 그 모든 국민에서 발달장애인은 애초에 빠져 있는 건 아닌가요? 우리는 이 사회에서 ‘생각할 능력’이 없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그저 ‘몸’만 가진 존재처럼 대우받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사회가 우리의 진짜 몸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에게 병원은 멀고 어려운 곳으로 느껴집니다.
병원이 무서운 건 비장애인도 마찬가지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아파서 치료받는 일이 누구에게나 편한 일은 아닐 테니까요. 하지만 발달장애인들이 느끼는 어려움은 모두가 공통으로 느끼는 그런 어려움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의사가 병을 진단하려면 우선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발달장애인은 의사에게 증상을 잘 이야기하는 게 어렵습니다. 단지 우리가 이야기를 잘 못하기 때문일까요?
저는 의료진들이 발달장애인에게 이해할 수 있는 의료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적절한 정보라는 건, 적절한 설명을, 적절한 방식으로 해주는 것입니다.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발달장애인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진료 방법 등에 대해 발달장애인들의 이야기를 직접 진지하게 들어본 적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피플퍼스트 워크숍에 참여한 어떤 동료는 병원에 혼자 가는 게 어려워서 백신 맞을 때 아버지랑 같이 갔습니다. 그런데 귀에다 체온계를 집어넣는 게 무서워서 열 체크를 못해 백신을 맞지 못했습니다. 비장애인이 보기에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우리에겐 엄청나게 무서운 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귀 대신 이마에서 조금 떨어진 상태로 열을 재는 체온계도 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그걸 알았다면 백신을 맞을 수 있었을 겁니다. 병원에서는 왜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거나 알려주지 않았을까요? ‘저런 것도 무서워하다니, 답답하고 곤란하다’고 생각하고 끝내도 되는 일이었을까요?
발달장애인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저는 모르는 곳에 가는 게 무섭습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렵습니다. 해보지 않은 치료법은 아플까 봐 시도하기 전에 이미 걱정부터 돼요. 비슷한 진료를 받아본 경험이 없으면 두려움이 더 커집니다. 그럴 때 의사 선생님이 친절하면 마음이 놓여요.
작년에 저는 지게차에 부딪혀서 왼쪽 다리를 다친 적이 있습니다. 다친 다리는 아프고, 너무 놀라 머릿속이 오락가락했어요. 119에 신고해 구급차가 왔습니다. 구급대원이 저에게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어요. 신분증으로 제가 발달장애인인 걸 알고 구급대원들이 병원에 가는 내내 제가 궁금해할 것들을 미리 친절하게 알려주었어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제가 불편한 데는 없는지, 병원에는 언제 도착하는지 같은 정보를 적절히 주니까 낯설고 무서운 상황에서도 빠르게 안심이 됐어요. 집에도 바로 연락이 돼서 엄마가 병원으로 찾아왔고, 저는 다리를 잘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발달장애인의 건강할 권리에 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의료진이 친절해야 어디가 아픈지 말할 수 있고, 제가 궁금한 걸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말이 어려워도 아픈 데를 손이나 온몸으로 표현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받는 치료가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간단히라도 설명해 주시면 두려움이 훨씬 덜 할 거예요.
한 동료는 동네에 단골 병원이 있는데, 그 병원의 의사 선생님은 동료가 어디가 아픈지 목소리만 내줘도 동료의 상태를 눈치채고 진료해 주신다고 합니다. 동료는 그 병원이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고 말합니다.
워크숍에 참여한 발달장애인 중에 알약을 잘 못 삼키는 사람이 있는데, 보통 약국에서는 물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알약으로 지어준다고 해요. 그래서 약을 먹을 때 늘 힘들었는데, 단골 약국에 가면 귀찮아하지 않고 가루약으로 주신다고 해요. 그러면 먹기에 불편함이 덜하답니다. 저는 몸이 아플 때, 가벼운 증상일 때는 혼자 병원에 가지만, 많이 아플 때는 혼자서 가기 어렵습니다. 지금은 어떤 병원에 가야 하는지 부모님께 물어보고 있어요. 그런데 저 혼자 있을 땐 어느 병원으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세상 사람들 중에는 가족이 없는 사람도 많고, 가족이 있다고 해서 가족들이 모든 걸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우리를 돌봐주는 건 우리 사회여야 합니다. 지역마다 발달장애인을 잘 아는 단골 의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인의 건강할 권리, 그리고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인정하고 고민하는 사회로 변화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합니다.
그동안 발달장애인인 우리는 우리의 몸이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궁금한 게 많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포기해 버린 질문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인은 정신과 약물을 처방받는 비율이 높다고도 들었는데, 왜 그런지 궁금합니다. 어떤 동료는 발달장애인은 수명이 짧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그게 진짜인지,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지, 나는 오래 살 수 있는지 걱정을 합니다.
우리는 그런 모든 궁금증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가장 잘 알아야 하는 사람은 우리 자신입니다. 발달장애인도 의료정보에 충분히 접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요즘 매일 3시간씩 일해서 7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습니다. 병원비가 쌀 때도 있지만, 비쌀 때도 있어요. 그럴 때 제 월급으로는 병원비가 부담이 됩니다. 의료비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발달장애인도 월급을 제대로 받는 일자리가 많이 생겨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우리에게 쉬운 의료정보가 제공되지 않았던 것은, 우리를 온전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너무나 기본적인 이 말을 이제야 외치게 되었습니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다!”
우리 사회는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번 크게 말합니다.
발달장애인의 몸은 발달장애인의 것이다!
우리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고, 이해하기 쉬운 의료정보를 제공하라!
이상 부천 피플퍼스트 김다인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12회 한국피플퍼스트대회 세 번째 주제발표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