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아동보호소 피해생존자, 국가·서울시 상대 국가배상청구소송 제기

납치되듯 끌려간 아동 12만 명 피해생존자 9명 “국가는 배상하라” 지난 4월, 진화위 진실규명… 서울시 사과 권고 서울시, 사과문 한 장 달랑 등기발송 피해생존자 “오세훈이 직접 사과하라”

2025-10-23     하민지 기자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강제로 수용됐다가 인권침해를 겪은 피해생존자 9명과 그의 가족 1명이 국가와 서울시를 상대로 국가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2023년 12월, 피해생존자 1명이 소송을 제기해 서울시와 법무부가 총 1천만 원을 위자료로 지급한 이후 피해생존자들이 집단적으로 제기하는 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피해생존자를 대리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공익인권변론센터(아래 민변)는 23일 오전 10시 30분, 서울시 서초구 민변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본 소송을 통해 개별 피해자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은 물론, 국가 공권력에 의한 위헌·위법한 불법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피고(대한민국, 서울시)의 책임을 명명백백히 밝히고자 한다”고 전했다.

기자회견 현장. 왼쪽부터 이동준 변호사, 신수경 변호사, 권태윤 변호사, 한일영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진실규명추진회 회장.

- 납치되듯 끌려갔다…12만 아동 강제수용한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서울시는 1958년, 이승만 정부의 부랑아 정책에 따라 서울시립아동보호소를 설립해 1975년까지 운영했다. 설립 당시 부랑아 정책은 일제강점기 조선감화령과 조선소년령을 답습해 수립됐다. 복장이 남루하거나 행동이 불량하단 이유로 많은 아동이 부랑아 수용시설에 강제수용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화위)가 입수한 ‘서울시립아동보호소 부랑아·수용아 접수대장’에 기록된 아동은 약 12만 명에 달한다.

이렇게 강제수용된 사람 중 한 명이 송준영 씨다. 송 씨는 정확히 몇 살 때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끌려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서너 살쯤인 걸로 추정하는데 이것도 정확하진 않다. 송 씨가 정확히 기억하는 건 끌려가던 순간이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는데 까만 모자를 쓰고 곤봉을 든 사람이 와서 송 씨를 차에 태웠고, 그 길로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수용됐다고 한다.

한일영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진실규명추진회 회장 또한 송 씨처럼 납치되듯 수용됐다. 한 회장은 1971년, 방학을 맞아 서울시 할아버지 댁으로 가던 중 경찰에 붙잡혔다. 경기도 가평국민학교 학생이라 밝혔지만 경찰은 못 믿겠다며 그를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강제로 입소시켰다. 한 회장은 “여기서부터 내 삶이 다 꼬여버렸다”고 말했다.

- 집에 보내준다더니 타 시설 전원…전국 수용시설 공급책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갇혀 있던 한 회장은 어느 날 ‘고향으로 보내줄 테니 경기도에 부모·형제 있는 사람은 손 들어라’라는 말을 들었다. 집에 보내주는 줄 알고 손을 들었더니 누군가 배에 타라고 했다. 내린 곳은 집이 아니라 선감학원이었다. 선감학원 또한 부랑아 수용소다. 한 회장은 “고향 보내주는 걸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선 ‘고향배차’라고 했다. 보호소는 고향배차를 통해 아동을 전국 각지 수용시설로 보내는 공급책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다.

대전시립아동보호소에 강제수용됐던 이문규 씨도 고향배차로 대전시로 온 원생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씨는 “어렸을 땐 몰랐는데 다 커서 수용시설 문제로 대전시립아동보호소 원생 동기와 선후배를 다시 만나니까, 자신들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대전으로 옮겨졌던 거라고 얘기하더라. 서울시립아동보호소로 가는 버스가 꽉 차면 애들을 여기저기 보냈다고 들었다”라고 증언했다.

서울시립아동보호소의 모습. 사진 진화위

- 성폭력, 가혹행위, 노동착취, 배고픔…끝도 없는 인권침해

지난 4월, 진화위는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진화위가 밝힌 조사결과에 따르면 당시 입소한 아동은 대부분 7세~13세 사이였다. 이들은 보호소에서 성폭력, 가혹행위, 노동착취를 당했다. 시설 정원은 1,000명이었지만 보호소는 최대 2,328명까지 수용했다. 이에 급식이 부족해 아동은 매미나 쥐를 잡아먹는 등 굶주림에 시달렸다.

또한 피해생존자가 증언한 ‘고향배차’처럼 아동 본인과 연고자의 동의 없이 자의적으로 다른 시설로 전원시켰다. 전원 후에는 해당 아동의 기록을 전원 시설에 송부하지 않아 아동의 인적사항이 사라지고 연고가 단절됐다. 송 씨의 경우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 있다가 오류애육원으로 전원됐는데, 송 씨의 호적은 여기서 만들어진 걸로 추정된다. 당시 오류애육원 원장이 송 씨였고, 애육원 동기 대부분이 송 씨였기 때문이다.

서울시립아동보호소 피해자 지원 대리인단의 부단장인 신수경 변호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서울시립아동보호소 사건은 아동복리법, 경찰관직무집행법 등 국내법령뿐만 아니라 세계인권선언과 아동권리협약 등 국제기준까지 위반한 위헌·위법한 일”이라며 “특히 아동인권의 관점에서 절대적으로 금지되는 학대, 처벌, 강제수용 등이 벌어져 행위의 위법성이 중대하다”고 설명했다.

- 피해생존자 “서울시는 우리 앞에서 직접 사과하라”

진화위는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서울시에 공식사과와 피해자에 대한 후속조사를 권고했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났지만 서울시는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사과한 적 없다. 대신 피해자에게 사과문을 등기로 보냈다. 송 씨는 주변에 있던 종이를 쥐고 펄럭거리면서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사과를 하라고 했는데 이런 종이 한 장짜리 등기를 보내더라. 이게 무슨 사과인가. 이런 사과는 원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 회장은 “우리가 원하는 건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날을 잡아서 강당 같은 데 피해자를 모으고 그 앞에서 정식으로 기자회견 해서 ‘서울시의 잘못된 행정으로 인해 피해자가 발생했다. 사과한다’라고 하는 거다. 그래야 진정성 있는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성토했다.

접수대장에 기록된 12만 명 중 진화위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피해생존자는 19명이다. 이 중 9명이 대한민국과 서울시를 향해, 수용기간 1년당 1억 2천만 원의 위자료와 이에 대한 법정이자를 지급하라고 청구했다. 한 회장은 “이번 소송은 우리 피해생존자가 ‘불쌍하다’며 위로금 조로 몇 푼 쥐여 준다는 식이어선 안 된다. 사법부는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우리 피해생존자에게 제대로 된 배·보상이 이뤄지도록 판결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