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지능인, 제도권 밖에 놓인 삶… “생애주기 지원 위한 입법 시급”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 공청회 열어 현장·학계·정치권 “제정 시급” 한목소리 당사자 부모 “사회구성원으로 인정 원해” 보건복지부 “입법 필요성 동의하지만…”
“우리는 세상에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제발 우리를 세상에 없는 사람으로 취급하지 말아주세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증명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오전 10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경계선지능인 지원 관련 법안에 대한 공청회’에서 경계선지능인 자녀를 둔 부모의 호소가 이어졌다. 공청회는 발의된 7개 법안에 대해 관련 단체와 학계 등의 의견과 제언을 듣는 자리였다. 진술인으로 참석한 현장 전문가와 학계 연구자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법 제정의 시급성에 한목소리를 냈다.
이날 참석자들은 교육, 진로, 고용, 자립 등 생애 전반에 걸쳐 어려움에 직면하는 ‘경계선지능인’(느린학습자)에게 생애주기를 고려한 종합적 지원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계선지능인 부모 “우리를 세상에 없는 사람 취급 말라”
‘경계선지능인’은 지적장애[지능지수(IQ) 70 이하]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평균 지능에 도달하지 못하는 인지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일반적으로 지능지수가 71 이상 84 이하인 사람을 말한다. 경계선지능인은 지능지수 단 한 점 차이로 장애등록조차 할 수 없는 현실에 놓여 있다.
국내엔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정확한 통계나 실태조사조차 부재하다. 지능지수 정규분포도를 근거로 전체 인구의 약 13.59%가 경계선지능인인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이처럼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경계선지능인을 지원하는 국가적 체계 마련을 위해 총 7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안상훈·김희정 국민의힘 의원, 허영·권칠승·서영석·강선우·서미화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법안들이다.
법안들은 경계선지능인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이들에 대한 지원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체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로 발의됐다.
느린학습자를 양육하고 있는 부모라고 자신을 소개한 송연숙 사단법인 느린학습자시민회 이사장은 법안의 방향성에 대해 “학령기 이후 성인기·중장년기로 갈수록 경계지능인에 대한 지원이 단절돼 고용 실패, 사회적 고립, 빈곤, 보호자 부담 등 사회적 비용이 증가하고 있다”며 “생애주기에 따른 제도적 지원 마련과 보건복지부뿐만 아니라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의 중앙부처의 역할을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송 이사장은 경계선지능인이 처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례를 소개했다. 경계지능인 고2 자녀를 둔 한 부모는 아이를 특성화고에 진학시켰지만, 당사자 특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특수교사의 부적절한 지원 속에서 경계선지능인의 특성을 이용한 학교폭력에 1년 반째 그대로 노출돼 있다고 호소했다. 이러한 교육환경에서 일반교육과 특수교육 사이의 ‘핑퐁게임’에 시달려왔고, 초등학교 이후 장애등록을 세 차례 시도했지만 모두 실패했다고 한다.
그는 뒤이어 진행된 질의응답 시간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존재와 지원 필요성을 인정받는 것”이라며 “경계선지능인의 삶은 지능지수만으로 판단할 수 없고, 사회성이나 가족 여부 등 개인의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충분한 지원 없이 성인이 되면 취업도, 사회적 관계도 맺기 어려워 결국 사회의 주변을 떠돌게 된다. 법안이 꼭 통과돼 사회구성원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자립 지원 및 권리 보장 강화’를 목적으로 한 입법 필요
배은경 호남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발의된 법안들에 대해 검토 진술하며 “‘경계선지능인의 자립 지원 및 권리 보장 강화’를 목적으로 한 입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배 교수는 “김희정·서영석·강선우·서미화 의원안에는 ‘가정이 경계선지능인의 성장에 대한 1차적 책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가족의 책임을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이해와 지원체계가 매우 부족하고, 관련 인프라와 경험도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부모와 가족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는 것으로 보여져 삭제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2020년 이후, 경계선지능아동을 비롯한 정서행동장애의 비율 증가와 고위기, 고취약성 문제가 아동복지시설을 비롯한 가정 외 보호 현장에서 계속 논의가 되고 있다”며 “경계선지능인 조기진단의 실시 및 지원에 있어 아동복지시설 거주 아동, 가정위탁아동 등 가정 외 보호 아동·청소년을 우선적·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것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보건복지부 “입법 필요성 동의하지만, 검토할 부분 있어”
진술인들이 발표를 모두 마치고 보건복지위원회 위원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됐다.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은 입법 필요성을 강조하며 손호준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에게 “복지부에서는 법 제정에 찬성하는 것인지” 질의했다. 손 국장은 “그렇다. 경계선지능인에 대한 생애주기별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한다”면서도 “법안에 여러 가지 검토할 부분들이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진술인들 모두 범부처가 협조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교육부나 고용노동부 등의 부처와 협의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복지부가 그런 의지가 있는 것인가”라고 질문했다.
손 국장은 “다부처가 협력이 필요한 사안인 것에는 공감을 하고 있다”면서도 “주된 욕구가 교육과 취업이라 교육부와 고용노동부로도 사업이 가고 있고, 국무조정실에서 여러 부처의 일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영석 의원은 “그러다 보니 떠넘기기 식으로 되고 ‘핑퐁 게임’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보건복지부가 중심 부처가 돼야 이 문제를 끌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