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장애인 간병 살해 권고 밝힌 의사, 대만 장애계 “생명권 침해”
비류잉 중산의과대학 교수 “장애인 단식 임종 도왔다” 대만 재판부, 다른 존속살해 사건에 대통령 특사 건의 돌봄 살인 정당화될 수 없어…국가지원 체계 마련되어야
지난 19일 대만 타이중 중산의과대학에서 근무하는 비류잉 의학교수가 장애인 부모에게 장애인 당사자에 대한 간병 살해를 권고하고 조력했다고 밝혀 대만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비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장애 자녀에게 식사량을 점점 줄이는 방식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 부모를 도운 사례가 있다며 “부모가 자식을 놓아주는 일은, 자식이 스스로를 놓아주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라고 이번 사건을 감정적으로 변호했다.
사망한 장애인은 35세로 22년 전 뇌염을 판정받은 이후 시각, 언어, 배변 등의 장애를 가지고 있는 중복장애인으로 부모의 지원을 통해서만 식사가 가능했다.
대만 장애계 “명백한 살인이자 생명권 침해”
대만은 현행법 상 안락사가 금지되어 있다. 다만 단식을 통해 스스로 죽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특별히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위와 같은 사례는 당사자의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하기 어렵고, 부모의 의지로 진행된 사건임에도 대만 당국의 경찰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대만장애학회는 21일 16개의 인권단체들과 성명을 발표했다. 대만장애학회는 “국가와 검찰 체계의 침묵은 장애인의 생명권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라고 비판하며 이 사건을 “자살을 방조하거나 교사하는 형법 제275조와 행위 능력이 없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인 형법 제271조 살인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대만 공영방송 PTS(公共電視)에 따르면 석충량 대만 위생복리부 장관은 “이른바 ‘단식에 의한 선종(善終)’이라는 방식은, 현재로서는 우리 통상적인 호스피스·완화의료 체계 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또한 학회는 “생명에 대한 자기결정은 당사자 본인이 해야 하며 가족, 의사, 사회가 대신 결정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당사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없는데도 타인이 대신 ‘죽고 싶어 한다’고 말해버리는 상황은 자기결정권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일”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비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장애 자녀가 “저를 하늘나라에 보내주세요, 제가 천사가 될 수 있게요”라고 말했을 것이라며, 부모의 행위를 독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장애인에 대한 존속살해에 관대한 대만 사회, 성찰해야
한편 지난 13일에는 80대 어머니가 50대 장애 자녀를 질식시켜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대만 재판부가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함과 동시에 총통에게 사면을 직접 건의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만장애인권리보장협회(Taiwan Association Disability Right, 아래 TADR)에 따르면 대만 사회의 여론은 “그녀는 이미 충분히 불쌍하다”며 사면을 건의한 재판부에 동조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TADR은 성명을 통해 “돌봄 제공자의 비극만을 바라보고, 살해된 사람의 존재를 보지 못할 때 장애인의 생명권은 깎아 내려진다”라며 “돌봄이 너무 힘들다는 이유가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장애인의 생존권은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돌봄 체계의 구멍과 사회적 지원의 빈곤으로 중증장애인의 돌봄을 맡은 이들이 고립 속에서 숨이 막히게 되고 그 결과 돌봄 살인의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며 “이를 해결하는 방식은 특별사면이 아니라 돌봄 제공자가 사회에 의해 지지되고, 돌봄을 받는 장애인이 계속 살아갈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일”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국가는 돌봄 관계에서 인권 침해를 예방하고 돌봄을 받는 사람들의 생명권과 인격적 존엄성이 침해되지 않도록 적극적인 보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며 “장기요양 시스템과 가족 지원 대책을 강화하는 것 외에도, 이러한 비극의 재발을 막기 위해 정신건강 서비스, 휴식 돌봄, 그리고 휴식 프로그램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 선 비류잉 교수는 오는 29일 한국의료윤리학회가 개최하는 국제포럼에 초청받아 단식 임종 전반에 관한 발표를 직접 진행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장애인의 생명권을 강조하고 있는 TADR역시 한국장애포럼이 12월 1일 개최하는 국제장애인권포럼에 연사로 참여해, 장애인 생명권 보장을 위한 국제적 연대를 호소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