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성소수자 등 “차별·혐오 선동하는 안창호 인권위원장 사퇴하라”
장애·빈곤·성소수자·이주민·청소년·노동자·종교계 등 설립 24년 맞은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 열어 시민사회계 “인권위를 혐오와 차별로부터 지켜낼 것”
25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설립 24주년을 맞았다. 그러나 인권위 앞은 축하와 응원 대신 규탄의 목소리로 가득했다. 이날 오전 10시, 장애인·성소수자·이주민·청소년·노동자·종교계 등이 기자회견을 열고 안창호 인권위원장을 “인권위 24년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위원장”이라 규정하며 사퇴를 촉구했다.
“인권위, 사실상 장애인 인권 방기 중… 그 중심엔 안창호 있어”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인권위는 ‘장애차별시정기구’라 장애인들은 인권위에 진정을 많이 한다. 그런데 최근 인권위는 계속 안건 처리를 지연시키고만 있다. 지연은 ‘사실상 장애인 인권 방기’”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시설에 사는 장애인들이 총체적으로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 그런데 인권위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며 “최근 이준석이 장애인 혐오 발언을 했는데도 인권위는 가만히 있다. 인권위가 제 역할을 못 하게 가로막고 있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안창호다. 안창호는 자리에서 물러나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실제로 안창호 위원장은 지난 10월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을 방문했다. 장애인 공동생활가정은 소규모 거주시설로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인거주시설로 분류된다.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는 10월 29일 성명을 발표하며 “공동생활가정은 겉보기엔 ‘집’처럼 보이지만 그저 작은 ‘시설’일 뿐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작은 시설 정도면 좋은 집이라고 장애인을 계속 살게 한다”며 “안창호 위원장은 공동생활가정에 가서 정작 장애인의 이야기는 듣지 않았다. 공동생활가정에서 어렵게 자립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공동생활가정에서도 탈시설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켜야 할 진짜 인권은 ‘탈시설 권리’”라고 강조했다.
안창호 위원장의 장애인 차별은 이에 그치지 않았다. 지난 5일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 그는 노동자·이주민 관련 보고는 언급하면서도 장애 차별 관련 내용은 제외했다. ‘2024년 국가인권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 사건 중 장애를 사유로 한 사건이 전체의 44.5%에 이르는데, 그럼에도 이를 보고에서 제외한 것이다. (관련 기사: [국감] 인권위 업무보고에 ‘장애 차별’ 빠트려놓고 한다는 말이…)
홈리스 강제퇴거 건 ‘각하’한 인권위… “차별주의자 안창호 내몰아야”
황성철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거리 홈리스 강제퇴거에 대해 인권위에 진정했었다. 그러나 매번 기대와 다른 일이 벌어졌다. 홈리스에게 폭언을 가하고 퇴거 압력을 넣었던 서울스퀘어 보안업체의 강제퇴거 건에 대해 인권위는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했다”고 비판했다.
황 활동가는 “우리가 지적하는 것은 인권위 내부의 역량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차별받는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고, 혐오를 방조하는 위원장의 부당한 행태를 규탄하는 것”이라며 “인권위가 본래의 기능을 멈추고 있는 이유는 위원장이라는 자리에 혐오를 방조하고 내부를 탄압하는 차별주의자가 앉아 있기 때문이다. 안창호와 같은 차별주의자를 내몰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위, 성소수자 권리 방해·혐오하는 기구로 전락”
안창호 위원장이 외면하고 혐오한 대상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박한희 무지개행동 활동가는 “인권위는 성소수자 권리를 방해하는 기구로 전락했다”고 규탄했다.
박 활동가는 “지난 10일 안창호가 인권위원장이라는 직함을 내세우며 한국성윤리문화교육원이 주관한 반성소수자 강좌에서 강연을 한 사실까지 알려졌다. 차별과 혐오를 가르치는 인권위원장이 가당키나 하는가”라며 “안창호의 즉각 사퇴만이 인권위가 성소수자의 인권을 보장하는 제대로 된 인권기구로 거듭날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동성애를 조장한다”고 주장한 데 이어, 이주호 당시 교육부 장관이 “동성애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발언해 논란이 일었다. 이에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시정을 요구하며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다.
수영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는 “고위 공직자들의 혐오발언은 큰 사회적 파급력을 가지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보다 엄중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러나 인권위의 대처는 그야말로 ‘파행’ 그 자체였다”고 분개했다.
수영 활동가는 “안창호 위원장은 이 사건을 ‘특이사건’으로 규정하고, 자신은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안 위원장이 ‘안건 상정을 보류하자’고 하자, 그 한마디에 부서의 논의가 죄지우지되고 규정과 절차에 위반해 임의로 조사결과보고서 또한 제출되지 못했다”며 “안창호 위원장이 인권위에 자리잡고 있는 한, 이 사회의 인권은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인권위 내부에서도 과장급 공무원들을 시작으로 안창호 위원장에게 실명으로 사퇴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나왔다. 지난 19일에는 송두환·최영애·안경환 전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전직 인권위 간부 28명이 안창호 위원장과 김용원 상임위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