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
민중의 노래가 '백기완 선본용으로 제작된 노래'라는 글을 본다.
요즘 페이스북에 심심찮게 소개되고 노래도 링크되는 아무개 가수…
그 가수는 과거 한때 소위 운동가요 판에 몸담았던 적 있다. 딱 번갯불에 콩 볶을 시간만큼. 십수 년 전, DJ 이른바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눈치 빠른 방송사들의 재빠른 변신과 함께 이 친구 TV에 자주 보이더니, 급기야 '대표 민중가수'의 모습으로 포장되어 미디어 곳곳에 인터뷰 기사가 뜨거웠다.
'지난날 자신이 걸어온 삶'은 지금의 가수활동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러니 자꾸 과거 운동 삶과 현재의 자신을 연관 짓지 말라고 했던가? 문예운동 진영을 향해 민중가수라고 감히 스스로 칭하지 말라고, 그건 쪽팔린 거라고 우리에게 따끔한 충고도 했던가? 어느덧 치솟아버린 그의 몸값 못 챙겨주는 우리 진영에서 그는 그렇게 멀어져 갔다. 단, 번갯불 동시대 인텔리들의 박제된 추억과 상상 속에서만큼은 짙게 남아 있는 듯하다. 하여 이렇게 SNS를 통해 또 그를 만나게 되는 거 아닌가…
또 내가 아는 어떤 후배…
그는 대학 시절 동아리에서 학습하던 책과 문건이 문제가 되어 몇 년간 옥살이를 했다. 웃기지만 옛날엔 그랬다. 그 친구는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기도 전에 크게 당한 거다. 그는 감옥에서 나온 이후 복학하고 졸업한 뒤 소위 대기업에 취직했다. 여차저차 최근까지 그와 만남을 이어왔던 어느 날, 한 시대의 모순과 맞서 열심히 실전에서 투쟁한 투사의 모습으로 자신을 기억하고 추앙하는 그를 보고 난 좀 의아했다. 하기야 그는 민주화 보상도 받았다.
과연 그는 자신의 기억처럼 투사로서의 삶을 산 거였나? 국가의 폭력, 독재권력의 희생자는 맞다. 하지만 투사라는 개념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이건 아닌듯하다. 우리는 아직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권력에 맞서 거리에서 현장에서, 몸으로 꽃병으로 투쟁하던 많은 동지들… 진짜 투사들.
많은 학생과 인텔리들이 좋아했던 옛 노래들…
이런 부류의 민중가요들을 보면 동시대의 노동자, 민중의 삶 현장에서 쓰이고 불리던 노래들과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한다. 굳이 좀 분석해보면 노래 형식과 내용 역시 인텔리적 취향과 관조적 관념에 맞춰져 있는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결국 매스컴 등 사회 곳곳에 주류적 지위로 배치된 이들…
이들이 기억하는 노래는 결국 그 시대의 아이콘이, 배경음악이 되고 만다. 또 그 미디어에 노출된 대중은 또 그렇게 각인되고 인식되고… 이런 순환으로 결국 노래는 생각지 않은 생경한 옷을 입기도 하고.
며칠 전 이른바 통합진보당 당권파 부류의 사람들이 중앙위를 점거해 목적을 달성한 후 단상에 모여 '민중의 노래'를 불렀다. 이에 대한 맨션들을 페북 곳곳에서 본다. 이 노래를 만들던 때의 이야기를 난 누구에게도 했던 기억이 없다. 그런데 인터넷을 뒤지니 민중의 노래는 '백기완 선본용으로 맞춤 제작된 노래'라는 글을 본다. 아… 이렇게 또 옷이 입혀지는가 보다.
내 살아온 짧은 시간만 봐도 이렇게 세상사 뒤틀려 왜곡되고 가려지는데, 과거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민중의 삶과 사연들이 붓 가진 자, 힘 있는 자에 의해 왜곡되었을까?
김호철의 노래세상 자본의 목적에 의해 기획된 노래와 문화가 온세상을 뒤덮고 있습니다. 낮은 곳에서 울려 퍼져 민중들의 가슴속에 한이 되고 힘이 되고 밥이 되는 노래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노래 이야기를 중심으로 소시민의 사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대표곡:파업가, 단결투쟁가, 민중의 노래, 들불의 노래, 장애해방가, 장애인차별철폐투쟁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