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보조인들 “우리도 할 말 있습니다”

우리도 든든한 모임 하나 있었으면… 이용자, 노동자, 중개기관 한자리에 모이기 시작

2010-05-08     고미숙 활동보조인권리찾기모임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한 활동보조서비스 제도는 2007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 제도의 시행과 함께 새로운 직업군이 하나 탄생했다. 그들의 이름은 활동보조인. 활동보조인들은 중증장애인에게 파견되어 가사, 신변처리, 식사, 옷갈아입기, 씻기, 외출 등 일상생활을 돕는다.

활동보조인이 업무에 투입되기 전 받는 교육과정에서, 그리고 업무를 수행하면서, 활동보조서비스제도는 장애인의 선택권, 자기결정권 등 권리를 부여함으로써 자기실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하고, 활동보조인이 장애인의 이용자로서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그들의 판단을 방해해서는 안 되고 어디까지나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작 활동보조인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가르쳐 주지 않는다.
활동보조인은 교육과정에서 일은 거칠지만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한다는 긍지를 가질 수 있는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배운다. 그러나 업무에 투입되어 그 아름다운 긍지를 지키는 일은 오래가지 못한다. 임금 등 노동조건은 형편없고 미래에 대한 보장도 없으며 심하면 파출부 취급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긍지를 지키기에는 별로 아름다운 조건이 아닌 탓이다.
활동보조는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자립생활을 가능케 하는 서비스이지만, 활동보조인에게는 생활유지의 수단이다. 남들에게는 반찬값이나 벌고 애들 학원비나 보태는 정도로 보일지 모르지만 엄연한 직업이다. 그러나 활동보조인이 대부분 나이 많고 가사노동을 전업으로 하던 여성이거나 퇴직연령의 남자들이다보니 노동자로서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해 사회적으로 무관심한 상황이다.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나의 어머니이고 누나이고 딸이고, 그리고 은퇴한 늙은 아버지들인데도 그들이 거기에 가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이런 이유로 활동보조인들의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으려는 사람들의 모임이 2009년 3월에 처음 시작되었다. 열 손가락에도 못 미치는 숫자의 활동보조인들이 “활동보조인 권리찾기 모임”이라는 이름을 짓고 모임을 시작했을 때 주로 한 일은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는 일이었다. 활동보조인들의 자체모임을 갖고 있는 곳은 어디더라, 우리의 처지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들은 무엇이 있고 그것들이 어떻게 변할 것 같더라, 이러저러한 토론회가 있는데 관심을 갖자 등 아주 초보적인 수준으로 내용을 공유하였다. 헤어질 때는 다음 모임에는 내가 아는 누구누구를 데려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마치 교회에서 전도 서약을 하듯이. 이런 수공업적인 방식으로 사람을 모으다보니 8개월이 넘도록 40명을 미처 채우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모이자는 약속은 어떻게든 지켜나가니 대견한 일이기는 하다.
“우리도 할 말 있습니다.”
불만이 있어도 말할 곳이 없어서 많이 답답했던 사람들이 여기 와서 가슴에 쌓인 얘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하면 봇물이 터지듯 거침이 없다. 활동보조인들은 자기들의 고민이 그저 개인적인 불만이 아니라 제도 자체의 문제에 있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한다.
활동보조는 대인서비스, 즉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직업이다. 그러다보니 이용자와의 트러블이 항상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용자는 조금이라도 더 나은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고, 활보인은 그 요구들을 다 들어주기에 버겁기도 하고 자존심 상하는 요구들도 있다. 너무 심하다 싶으면 중개기관에 중재를 요청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불만이 있어도 참고 일한다. 어쨌건 돈을 받고 일하는 처지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동조건도 매우 불안정하다. 하다못해 기본급 몇 십 만원이라도 있다면 나을 텐데 이용자가 연결되지 않으면 그 달은 완전히 공치는 달이다. 이용자가 여러 명일 경우 이동할 때 차비가 보조되는 것도 아니다. 점심시간이 끼면 몇 푼 안 되는 월급으로 밥을 사먹을 수도 없고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녀도 어디서 먹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한다. 활보가 교육을 받지 않으면 일을 못하는 것처럼, 이용자들에게도 교육이 의무화 되었으면 좋겠다고. 이용자들이 제도의 취지와 자립생활에 대해 이해한다면 지금보다 트러블도 줄고 관계가 훨씬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할 말들은 가득한데 어디에 하소연을 해야 할지, 설사 하소연을 해도 바꾸게 만들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일을 하면서 어려운 점이 무엇인지, 어떤 조건에서 일하고 싶은지 아무도 우리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우리도 든든한 모임 하나 있었으면…
다섯, 여덟, 열 둘… 일만이천이나 되는 활동보조인들의 모임은 그렇게 수공업적으로 알음알음 연결되어 8개월 째 매월 한 번씩 만나는 일을 지속해 오고 있다. 한 번 이상 참여했던 사람의 수를 합치면 겨우 40여 명 남짓이다.
처지가 비슷한 노인요양보호사들에게는 “전국요양보호사협회”라는 전국 조직이 있다. 우리가 8개월을 만나고 있는 동안 요양보호사들은 제도시행 1주년을 기념해서 생일잔치 겸 요양보호사 대회를 열었고, 노동부가 요양보호사는 노동자가 아니라고 할 때 “우리는 노동자다.”라고 외치며 기자회견도 하고,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을 만나서 요구를 전달하기도 했다.
이런 일들을 우리는 이제 시작해야 하고 고스란히 우리의 힘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양보호사들은 우리가 부럽다는 말도 한다. 노인요양보호제도가 완전히 민간에 열려있는 탓에 교육비도 비싸고 수수료도 높고 중개기관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 또 노인장기요양제도가 만들어질 때는 요양보호사들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대응도 못했지만, 장애인장기요양제도가 시범사업으로 시행되고 있는 이 시점에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할 수 있는 활보인들의 모임이 작지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작은 모임이 바로 우리 “활동보조인 권리찾기 모임”이다. 우리 스스로는 한없이 작지만 어쨌든 이렇게 시작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때 주춧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
함께하면 힘도 커지고 제도를 더 낫게 만들 수 있는데…(활동보조인과 이용자인 장애인은 한 몸이다)
이 모임의 구성에는 독특한 면이 있다. 관리자에 해당하는 코디들이 모임을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와 관리자가 나란히 머리를 맞대고 활동보조인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이들은 활동보조서비스 제도를 만들었던 바로 그 사람들이고, 앞으로 제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활동보조인과 중개기관이 힘을 모아야 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활동보조인들이 모여서 자신들의 요구를 외부로 드러내면서 그동안 자조모임에 대해 긍정적으로 보던 중개기관들이 이제는 활보들이 모이는 것을 우려스럽게 바라보거나 혹은 방해하려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깊게 해보면 이런 행동이 자기 발등을 찍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다. 활동보조 중개기관들은 복지부의 지침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자신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이용시간을 깎거나 활보자격조건을 필요 이상 제한하거나, 크고 작은 행정업무들로 코디들을 피곤하게 하고, 부정수급을 핑계로 여러 가지 조건들을 까다롭게 만들어도 중개기관은 저항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조금만 앞서 나가 보자. 이용자와 중개기관 그리고 활동보조인들은 같은 이해관계자다. 이용자의 활보시간이 늘어야 활보인들의 임금도 늘고, 활보인들의 노동조건이 나아져야 서비스의 질도 좋아진다. 연결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 이용자들의 교육이 의무화된다면 자립생활에 대한 이해를 가진 2만 명의 장애인과 가족들이 생기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생존을 위한 제도 하나하나가 투쟁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는데, 활동보조인들을 같은 편으로 만든다면 지지자 1만2천명을 바로 옆에 두고 싸움을 시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활동보조서비스 제도의 칼자루는 중개기관이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쥐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활동보조인들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찾기 위한 싸움을 한다면 그 대상은 중개기관이 아닌 정부가 될 것이다. 단지 수수료 몇 푼 더 챙기겠다고 중개기관이 그 사이를 가로막고 서서 칼날을 자신들에게 향하게 만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새로운 세상과 만나고 있어요.”
9월부터 활보인들은 ‘노동자가 되는’ 교육을 하고 있다. 참여하는 숫자는 지금까지 열다섯 명이 채 안되지만 만족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아직은 낯선 단어일 수도 있는 노동자, 그것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 자신의 권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기회가 없었던 이들은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기쁨을 느끼고 있다.
‘권리찾기 모임’이 지금까지는 사람을 모으는 것이 핵심적인 활동이었다면 이제는 활보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모임으로 발전하기 위해 고심 중이다. 지금은 지역과 장애인자립생활센터 등을 찾아가서 모임의 취지를 설명하고 활동보조인들의 권리를 위해 중개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하거나, 활보인모임이 열리는 곳에 참석해 장애인장기요양제도 등 활동보조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게 될 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함께 고민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이용자들과 수시로 트러블을 겪어야 하는 활보인들에게 이용자교육은 상당한 관심사다. 제도와 자립생활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다면 이용자들과의 트러블이 상당히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센터들과의 간담회 등을 통해 이런 것도 적극 제안할 생각이다.
활동보조인들이 주축이 되는 토론회도 준비하고 있다. 스스로 요구하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를 위해 나서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묵묵히 일만 하는 것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나를 둘러싼 세계는 이렇게 확장된다. 활보인들은 모임에서 동료를 확인하고, 이 모임을 통해 코디와 이용자들을 만나 서로 고민을 나누다보면 함께 할 수 있는 일들도 만들어지고 만나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도해보지 않았던 다양한 활동들을 통해 수동적으로 살아왔던 우리들이 적극적으로 세상을 만나는 시도들을 하고 있다.
이 글은 <노들바람> 82호(2009년 겨울호)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