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라는 언어를 보다

다큐멘터리 '들리지 않는 땅'

2012-10-08     김가영 기자
▲'들리지 않는 땅' 포스터.

"처음으로 보청기를 귀에 댔을 때 이상한 느낌이었어요.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어요. 모든 소음이 들렸어요. 칠판에 분필이 써지는 소리. 고함소리, 문 여닫는 소리.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무서움을 느꼈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애써 그것을 잊었어요. 다시 평온한 상태가 되었죠. 선생님은 그걸 계속 끼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병원에 갈 적마다 보청기를 껴야만 했죠. 사람들이 '너는 정상적으로 될 거야'라고 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죠. 필요한 사람에겐 유용한 것이겠죠. 하지만 저에겐 아니었어요."

 

최근 국내 한 보청기 업체가 '청력은 능력이다'라는 광고를 신문에 게재해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청력이 아닌 다른 감각을 이용해 지각하고 교감을 나누며 소통하는 청각장애인들의 세계는 무능력하고 불완전한 것인가? 이 사회는 그들의 사용하는 수화를 완전한 언어로서 받아들이는 일에 주저하기에 그 권리 또한 제대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들리지 않는 땅'은 대상을 느끼고 표현하며 감정을 나누는 것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오직 눈으로는 보고 귀로는 듣고 입으로는 말하는 각 기관의 신체적 기능에만 중점을 두는 비장애인 위주의 시선을 꼬집고 있다.

 

이 영화는 청각장애인들이 수화를 통해 만들어내는 고유의 표현 세계 안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직접 교감하도록 한다.

 

'들리지 않는 땅'의 첫 장면은 수화를 통해 음악 공연을 하는 모습이다. 이 공연은 수화를 통해 음악의 일부인 가사만 전달하는 일차적인 기능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침묵 속에서 오직 수화만으로 어떤 리듬을 창출해내고 '곡'의 느낌을 표현하며, 예술의 표현수단으로서 음악을 향유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보청기를 통해 처음 듣게 되었을 때 통제되지 않은 소음 속에서 고통과 두려움을 느끼는 한 청각장애인에게 이 사회는 비장애인적인 삶만을 강요하며 견디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그는 소음이 아닌 침묵의 평온을 원한다. 청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세계에 접근하며 수화라는 언어를 통해 사는 것을 택한다.

 

이처럼 비장애인의 시선으로 '듣고 말하는 것'을 강요하는 일은 청각장애아동들에게 행해지는 교육에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다.

 

'들리지 않는 땅'에서 청각장애아동들이 교육받는 모습을 오랫동안 카메라에 비추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니콜라 필리베르 감독은 수화 고유의 가치를 알리기에 주력한다. 비장애인의 관점으로 청각장애인을 교육할 것이 아니라 수화라는 언어를 통해 청각장애인들의 감각을 존중하고 이를 확장시켜 대상을 충실히 느끼게 하고 풍부한 표현을 이끌어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예전에 학교에서 수화를 가르치는 게 금지되었어요. 손을 뒤로 꼼짝 못하게 하고서는 억지로 말을 하게 시켰어요. 시간이 변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학교에서 수화를 가르치는 걸 반대합니다. 우리는 수화와 불어가 공존할 수 있도록 싸우고 있어요. 우리가 성공할 거라고 믿어요."

 

▲'들리지 않는 땅'의 한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