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욕망의 육체 아바타

[다시보기] 아바타 스스로 몸을 창조할 수 없는 인간들...그 내면이 꿈꾸는 또 하나의 형상

2010-01-18     김가영 기자

영화 아바타를 육체에 관한 이야기로 풀어보자. 아바타, 그것은 끝없이 진화해가는 테크놀로지의 욕망으로서의 몸이다. 기술은 이상적 보디(BODY)의 구현을 통해 육체적 한계로부터 이탈한다. 인간에게 몸이란 선택의 영역 안에 있지 않다. 형상이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바타, 그것은 인간의 욕망을 반영시킬 수 있으며 목적에 의해 창조되거나 조작 가능한 인위의 세계이다. 먼 미래, 그러한 신(新) 육체들이 모여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며 가상 혹은 외계에서 또 다른 거주지를 형성할지도 모른다.

하반신이 마비된 제이크(샘 워딩튼)는 이 아바타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기에 더없이 이상적인 인물이다. 그에게 다리란 부재하는 것이며, 이 결핍이 치유의 육체를 꿈꾸게 한다. 인간은 무수한 상황 속에서 걷는다. '걷는다'는 하나의 행위로부터 촉발되는 무수한 감각과 감정들이 장애 안에서는 하나의 욕망으로 환원될 뿐이다. 그가 아바타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는 계기는 자신의 다리를 고치기 위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지만, 아바타와 연결되는 바로 그 순간 장애로부터 해방된 한 육체를 경험하게 된다.

제이크는 행성 판도라의 토착민인 '나비(Na'vi)'의 외형에 원료 채취를 목적으로 투입되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과 지혜를 습득하게 되면서 점점 그들에게 동화되어 간다. 스승이자 연인인 '네이티리(조 샐다나)' 에 의해 점차 '나비'로서의 정체성을 갖게 되는 제이크는 점차 자신의 몸(본체)을 돌볼 겨를도 없이 아바타에 몰입하게 된다. 그에게 육체와 아바타 어느 쪽이 현실인지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단지 걷고 달릴 수 있음과 그렇지 못한 육체로 분류될 뿐이다.

아바타란 영원히 다른 몸으로 이주해가는 것이 아닌 본디의 육체와 연동하는 것이다. 본체가 소멸하는 순간 제2의 육체(아바타)는 가동을 멈추게 된다. 그렇다. 이 영화에는 두 개의 아바타가 등장하는 셈이다. 거대한 자연의 영혼 속에서 연동하는 인간이라는 본디의 아바타와 그러한 인간이 만들어 낸 욕망의 아바타. 파괴의 아바타.

인간은 누구도 육체의 명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언젠가는 소멸하는 육체 앞에 굴복하고 자신의 영혼을 거두어가야만 한다. 몸이라는 것은 외부(자연)로부터 형성되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며 인간은 육체가 지닌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다가 되돌아가야 한다. 장애인은 이미 그런 육체의 소실을 먼저 경험하는 자이다. 진화하는 기술은 먼 미래 인간의 육체를 해방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육체의 유한, 자연의 유한에 대한 사유 없는 테크놀로지란 자멸의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어떤 혁신적 기술도 인간을 이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은 선과 악으로 이분화된 캐릭터들과 다소 전형적인 내러티브의 전개로 깊이 있는 시선을 드러내지 못함에도, 아바타라는 소재를 이용해 한 차원 나아간 그래픽으로 새로운 감각의 상상력을 영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