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성인에 대한 부양의무 부정해야"
키타노 이사장, 한․일 부양의무제도 비교 세미나에서 강조해 '장애인부터 단계적 폐지' 의견에 대해선 '연대가 우선'
▲'한․일 부양의무제도 비교검토를 통한 방향모색' 세미나 발표자와 토론자들. |
성인이 된 장애인에 대해 부모나 형제가 책임을 지는 부양의무는 장애인과 그 가족의 자립적인 사회생활을 위협하기 때문에 부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한·일 부양의무제도 비교검토를 통한 방향모색' 세미나가 12일 이른 10시 여의도 이룸센터 이룸홀에서 한국장애인부모회와 최동익 국회의원, 국회장애인복지포럼의 주최로 열렸다.
▲오사카지역생활지원네트워크 키타노 세이이찌 이사장 |
이날 주제발표를 한 일본 NPO법인 오사카지역생활지원네트워크 키타노 세이이찌 이사장은 일본의 장애인에 대한 가족 부양의무제도에 대해 설명하며 이러한 견해를 밝혔다.
키타노 이사장은 현행 일본 민법에서는 '직계혈족 및 형제, 자매는 서로 부양하는 의무가 있다'(877조 1항)라고 규정하고 3촌 간의 직계혈족이나 형제자매까지 폭넓게 부양의무를 인정하고 있으며, 이는 세계적으로도 특수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부부 사이 또는 부모의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는 일반적으로 인정될 수 있지만, 성인이 된 장애인의 경우 독립된 인격체로 보아 가족에 의한 사적부양이 아닌 공적 부양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성년 자녀의 경우에도 장애가 있어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가족 부양에만 전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키타노 이사장은 일본 지적장애인 등의 소득 및 주거 현황 자료를 바탕으로 장애인의 자립이 이뤄지지 않고 가족의존이 지속되고 있는 문제를 지적했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94.7%가 누군가와 같이 살고 있다고 하지만 배우자가 없는 경우가 96.7%이고, 자기 소득이 1만 엔(약 10만7600원) 이하인 경우가 절반에 육박한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보면 사실상 지적장애인들은 부모나 형제의 집에 같이 살면서 이들이 부양하고 있다는 것이다.
키타노 이사장은 이 같은 상황에서도 일본은 현재 생활보호법의 개악이 시도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전까지는 구두로도 신청할 수 있던 생활보호가 이제는 부양의무자 부양 상황과 관련 자료까지 첨부해 서류로 제출해야만 하도록 바꾸려는 것이다.
키타노 이사장은 이처럼 수급을 받기 위한 절차가 까다롭게 변화되면 수급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족을 비롯한 각종 인간관계가 붕괴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렇게 장애인의 부양에서 가족의존이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키타노 이사장은 가족 부양을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시스템을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주에서는 부모·형제·자녀가 장애인 가족을 유급으로 직접 돌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는데, 오히려 가족이 돈 때문에 장애인을 집안에 묶어 놓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도 비슷한데, 2006년 장애인자립지원법이 생기면서 1%의 자기부담금이 생겼다. 소득이 없는 장애인들은 이 돈을 낼 수 없으니 부모․형제 등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장애인의 가족의존은 더욱 강화된다는 것이다.
키타노 이사장은 이제 장애인이 가족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른 사람들을 통해 케어를 받는 한편, 기초연금 등의 소득을 늘려 이것으로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우주형 교수 |
이어진 주제발표에서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우주형 교수도 한국의 기초법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부양의무제 폐지를 강조했다.
특히 우 교수는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는 '민법상 가족부양의 원칙과 충돌한다'는 정부 측의 주장에 대해 "기초생활보장법은 하나의 공공부조제도로서 민법상 가족부양원칙과는 다른 원리에 따르는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우 교수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했을 때 추가 소요되는 예산이 약 7조 2천억 원으로 추정된다"라면서 "이는 2013년 정부 예산의 2%에 불과하므로 지나친 재정 불균형을 초래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삼육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정종화 교수는 몇 가지 쟁점들을 제기했다.
정 교수는 장애성인에게 부양의무를 지우는 것에 반대하는 키타노 이사장의 입장에 동의하면서, 장애아동과 장애성인의 부양의무 판단은 구분할 것을 제안했다.
즉, 장애아동에 대한 부양의 일차적 책임은 가족에게 두되, 장애아동양육수당 등의 제도를 통해 사회적 책임이 보조하는 방식으로 가고, 장애성인의 경우 사회적 보호를 원칙으로 한 소득보장을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 교수는 부양의무제 폐지에 따르는 예산 소요 문제에 대해 우 교수와 입장을 달리했다.
정 교수는 "부양의무제를 폐지했을 때의 예산추계가 7조2천억이라고 하지만, 이는 추계에 불과하고 잠재적 욕구의 수위가 현재적 또는 화폐적 가치로 나타났을 때의 예산 추계는 3배 이상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신중론을 폈다. 실제 노인장기요양 및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만들었을 때 예산 추계에서도 이 같은 사실이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토론자로 나선 삼육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정종화 교수,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은종군 정책홍보국장, 한국장애인부모회 노석원 부회장 |
토론에 나선 또 다른 토론자들도 부양의무제 폐지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방법에 서는 '단계적 폐지'를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은종군 정책홍보국장은 근로능력이 미흡한 중증장애인과 시설에서 수년간 수급자로 지내다가 자립하고자 하는 장애인의 경우는 우선해서 부양의무 규정에서 제외하는 등 특례적용의 확대를 제안했다.
은 국장은 "원칙적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부양의무 기준은 폐지되어야 마땅하다"라고 전제하면서도 "현재 장애인들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특정한 계층에 한해 제한적으로 부양의무 기준을 폐지하는 것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한국장애인부모회 노석원 부회장 역시 비슷한 주장을 제기했다. 노 부회장은 "장애인의 소득활동이 현저히 낮은 것은 물론이고, 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보장에서도 배제된 상황"이라며 "어쩔 수 없이 시설 입소를 선택할 때에도 입소자 중 70%를 수급자로 채우도록 하는 규정 등 때문에 불가피한 가족해체의 위험에 놓이게 되는 문제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노 부회장은 부양의무제 폐지에 따르는 재정적 부담이 문제라면, 전면 폐지에 앞서 장애분야를 시범사업으로 우선 폐지하는 방향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 같은 '장애인부터 단계적 폐지'라는 의견에 대해 키타노 위원장은 부정적인 견해를 밝혔다.
키타노 위원장은 일본의 사례를 설명하면서 "어느 특정 집단이 먼저 부양의무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 속에서 집단 간 분쟁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빈곤층에 있는 사람들의 연대를 통한 해결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키타노 위원장은 일본의 장애연금은 고령자연금과 연결되어 있어서 장애연금만 따로 올릴 수 없어서 고령자 단체와 함께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는 장애인 부모 및 활동가 80여 명이 자리한 가운데 2시간 30여 분 동안 진행되었다.
▲세미나를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