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성 이유요? 모두가 편하게 살기 위해"
538일째 맞은 광화문역 농성장 풍경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지니고 이어온 농성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이 광화문역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한 지 540여 일이 넘었다.
비닐 천막이었던 농성장이 번듯하게 세워지고 각각의 사연이 담긴 영정 사진이 하나둘 늘어나는 등 여러 변화가 있었지만, 여전히 중증장애인 활동가들이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하라’라고 외치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농성 538일을 맞은 지난 2월 9일 저녁, 농성장은 전주에서 올라온 전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북장차연), 전주중증장애인지역생활지원센터(아래 전주센터) 활동가들이 지키고 있었다.
이날 전북지역 활동가 중에서는 처음 농성장을 찾은 이도, 농성이 시작될 때부터 참여한 이도 있었지만, 지나가는 시민을 향해 서명을 하고 가라고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이날 처음 농성장에 온 전주센터 강윤규 자립생활팀장은 “소리치는 것도 쑥스럽고 서명 안 해주는 사람한테는 서운하기도 하다”라면서 “그래도 간간이 서명해주는 분들이 있어서 고맙다”라고 밝혔다.
강 자립생활팀장은 전북에서 농성장을 지키러 가는 활동가들이 농성장에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체험해보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밝혔다.
“전북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육체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아주 힘든 것 같아요. 지난번에는 센터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못 왔는데 이번에는 센터 직원하고 활동가가 여기 와서 얼마나 고생하는지 직접 느껴보고 함께하려고 와봤어요.”
전주센터 김종수 활동가는 지난해 10월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농성장에 왔다. 김 활동가가 처음 왔던 때와 달리 이날 농성장은 깔끔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김 활동가는 농성장이 새롭게 단장된 것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농성장이 바뀌어서 아늑하고, 정리도 깔끔히 잘 되어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바뀌기 전에는 정리도 안 되어 있어서 ‘장애인들이 하는 일이 이렇지’라는 편견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했는데, 농성장을 새롭게 단장하고 나니까 시민들이 이런 생각을 하진 않을 것 같아요.”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농성장 앞으로 시민이 지나가면 김 활동가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서명받고 있습니다. 서명하고 가세요.”라고 부지런히 외쳤다.
▲농성장 앞 영정사진에 마련된 서명대에서 시민 두 명이 서명을 하고 있다 |
김종수 활동가 옆에 있던 전북장차연 선철규 활동가는 광화문역 농성에 돌입할 때부터 함께해온 활동가 중 한 명이다.
농성에 참여하는 동안 농성장에는 크고 작은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선 활동가는 이러한 변화를 기쁘게만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고 김주영 활동가, 고 지우·지훈 남매, 고 김준혁 활동가 등이 농성 기간 도중 세상을 떠났다. 선 활동가는 농성장 앞에 늘어선 일곱 개의 영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농성장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사실 가슴 아픈 일도 많았죠. 농성장이 세워질 때는 영정사진이 하나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하나둘씩 생겨나더라고요. 아마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여기 계신 분들(영정) 말고도 더 많은 분이 죽어갔을 거에요. 힘들게 사시는 분들도 있고요. 어쨌든 이런 우리나라 현실이 슬퍼요. 이런 영정들이 더 생겨나지 않게 하려고 이렇게 농성장을 지키지만, 이런 거 안 해도 되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농성장 앞에 있는 영정 사진을 보며 누가 제일 기억에 남느냐고 묻자 선 활동가는 “김주영 동지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라면서 “김주영 동지랑은 같이 교육도 받고 일도 같이하곤 했다.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가끔 전북 지역에 내려오셔서 교육도 하셨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지방에서 농성장을 사수하러 오는 활동가들은 보통 낮에 농성장에 도착해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오전에 돌아가는 편이다. 농성장 잠자리가 불편하고 외풍이 심해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농성장의 열악한 환경에서 밤을 지새우다가 몸 상태가 안 좋아지기라도 하면 병원에 가기 어려운 중증장애인 활동가가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실제로 선 활동가는 예전에 서울에 왔다가 급체 증세로 농성장에서 밤을 새우는 내내 고생했던 경험이 있다. 이날 처음 농성장을 찾은 전주센터 진정훈 활동가도 추운 농성장 환경 때문에 오한이 걸려 다른 활동가들이 걱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밤에 농성장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선 활동가는 오히려 서울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들보다 농성장에 자주 오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했다.
“저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지만 서울 동지들은 이곳을 매일 지키고 있잖아요. 오히려 멀다는 이유로 자주 못 오는 게 아쉽죠. 가까이 살면 매일 올 텐데 너무 멀어서 자주 오지 못하니까 그게 미안하죠.”
자주 오지 못한 미안함 때문인지 전북지역 활동가들은 지나는 시민에게 쉬지 않고 서명하라고 외쳤다. 전북장차연 김병용 활동가가 ‘서명받은 수대로 좋은 잠자리를 정하자’라고 제안하자 선전전은 더 열띠게 진행되기도 했다.
이날 저녁 8시경 538일차 선전전을 마무리한 전북지역 활동가들은 이날 받은 서명 용지를 정리했다. 총 서명 인원은 132명으로 전날 85명보다 47명을 더 받았다.
강윤규 자립생활팀장은 “서명할 것 같은 사람이 지나가면 눈치를 줘야 한다. 이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한다.”라고 서명을 많이 받은 비결을 밝혔다.
그러자 선철규 활동가가 “옆에서 소리 지른 것은 우리 아니냐. 앞으로는 팀장님 혼자 선전전하게 해야겠다.”라면서 “사실은 우리가 오랜만에 온 거라 오늘 더 열심히 선전전을 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전북지역 활동가들은 하루를 정리하며 간단한 뒤풀이를 했다. 한 시민이 농성장에 선물한 음료수 덕분에 뒤풀이는 조촐하지만 풍성했다.
선 활동가는 “농성 초기에 몇몇 시민분이 빵하고 따뜻하게 데운 두유를 가져오시기도 했다”라면서 “시민분들이 음료수도 갖다 주시고 서명 판에 ‘포기하지 말라’라는 메시지도 남겨주시는데 이런 일을 경험하면 정말 힘이 난다”라고 밝혔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전북지역 활동가들이 농성장을 지키는 이유로 이어졌다. 활동가들은 장애인이 편한 세상, 그리고 모든 사람이 편하게 사는 세상을 위해 농성장을 지키는 일을 포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종수 활동가는 “예전에는 우리끼리 살라는 식이었는데, 우리가 밖에 나와 이 일을 하는 이유는 후세 장애인들이 더 편하게 살아가자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선 활동가는 장애인뿐 아니라 모두가 편한 세상을 위해 농성장 지키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고 밝혔다.
“솔직히 이 농성이 우리만 좋자고 하는 일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편하게 살자고 하는 게 목표에요. … 가만히 있으면 나아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게다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이루면 모두가 다 편하니까 제가 이 일을 못 관두는 거죠.”
이렇게 농성 538일째 하루가 지나갔다. 전북지역 활동가들은 다음날 또 다른 활동가들과 교대하고 활동하는 곳으로 돌아갔다.
전북지역 활동가가 그러했듯 500일 넘게 농성장을 지키는 활동가들은 서로 고마움과 미안함을 간직하고, 장애인을 비롯해 모두가 편하게 사는 세상을 꿈꾸면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선전전을 진행하는 진정훈 활동가(왼쪽)와 강윤규 자립생활팀장(오른쪽). |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종수 활동가(왼쪽)와 김병용 활동가(오른쪽). |
▲농성 538일째 서명 인원과 모금액을 정리한 일지. 이날 132명의 시민이 서명했다. |
▲지난 2월 9일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538일'을 맞은 팻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