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대상 환자 유인행위, “B요양병원 진상조사하라”
서울역·영등포역 등지에서 노숙인 유인, '명백한 불법' “홈리스를 상대로 한 신종 착취, 10여 군데 더 있어” 진상조사 촉구
▲홈리스행동 등 인권단체들이 노숙인 상대 불법 환자 유치행위를 벌인 강화도 B요양병원에 대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서울역, 영등포역 등에서 노숙인 등을 상대로 불법 환자 유인행위와 인권유린을 자행한 강화도 소재 B요양병원에 대해 인권단체들이 진상조사와 처벌을 촉구하고 나섰다.
홈리스행동·건강세상네트워크·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인권단체들은 26일 이른 10시 30분 서울 충정로에 있는 복지부장관 서울집무실 앞에서 'B병원 실태 고발 및 진상조사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그동안 B요양병원이 노숙인 등을 상대로 자행한 각종 불법행위들을 폭로했다.
인권단체들이 B요양병원 문제를 알게 된 것은 지난 3월 경이었다. 홈리스행동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한 거리 노숙인으로부터 “B요양병원에 원치 않은 입원을 하게 된 지적장애를 가진 노숙인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B요양병원에 직접 찾아갔다고 밝혔다.
이 상임활동가는 “서울역에서 노숙하던 분들을 그냥 공간 이동시켜서 병원에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다”라는 말로 B요양병원의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이 상임활동가는 “마침 도착한 시각이 식사할 때였는데, 병원 환자들이 밥을 먹는 모습은 마치 거리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는 것과 흡사했다”라며 “게다가 각 병실에는 ‘일주일에 담배 3갑, 커피믹스 5개 제공’이라는 문구도 쓰여 있었다.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 병원의 모습이 아니었다”라고 전했다.
인권단체들은 이처럼 병원이라고 보기 힘든 B요양병원이 각종 관계 법령을 무시하며 홈리스를 상대로 돈벌이 행위를 벌였다고 폭로했다.
인권단체들의 증언에 의하면, B요양병원은 노숙인 중 일부를 보호사 또는 운전사라는 명목으로 발탁해 그들과 면식이 있는 다른 노숙인을 환자로 유인하는 행위를 했다. 이를 위해 서울역, 영등포역 등 노숙인들이 많은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차량을 이용해 입원 편의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는 의료법 27조 3항 위반 사항이다.
B요양병원은 또 입원한 노숙인들의 건강보험 환자 부담금을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환자를 유인하기도 했다. 입원한 노숙인들 대부분이 의료급여 1종 수급자인 경우가 많으므로 본인부담금이 적고, 따라서 이를 병원 측에서 대납해준다고 해도 손해 보는 일이 아니었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이렇게 하면 병원은 홈리스 한 명당 식대, 행위별 수가 등을 제외하고도 최소 100만 원 가량의 수익을 남길 수 있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것도 의료법 27조 3항 위반 사항이다.
또한, 이 병원은 환자를 유인하는 과정에서 경미한 질환이 있는 노숙인에게 술을 과음하게 하여 우울증·알코올중독 등 질환이 있는 것으로 위장시키기까지 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입원에 처한 노숙인들에게 B요양병원은 환자 통제를 이유로 각종 폭행과 신체 억제대를 사용해 결박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 또한 의사, 간호사 등의 전문요원이 아닌 무자격자에게 ‘보호사’라는 이름을 붙여 환자관리를 맡기기도 했다. 이는 의료법 12조 2항과 형법 260조 1항 등을 위반한 사항이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B요양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있는 노숙인 당사자가 자신의 피해경험을 밝히기도 했다.
영등포역 근처에서 노숙생활을 해온 그는 평소 걷는데 불편함이 있었다. 이때, 다리 치료를 해준다는 B요양병원 측 사람들의 말을 믿고 입원하게 됐는데, 정작 병원에선 다리 치료는 해주지 않고 신경정신과 약만 계속 투여했다고 한다.
이에 그는 퇴원시켜 달라고 요구했지만, 병원 측은 퇴원은 3개월 후에나 가능하다고 답했다. 참다못한 그는 항의의 표시로 세 번에 걸쳐 단식투쟁을 했지만, 병원은 그를 ‘CR방’이라 불리는 곳에 가둬 결박시키고, 소위 ‘코끼리주사’라 불리는 신경안정제를 투여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박영아 변호사는 “B요양병원은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도 없는 사실상 숙박시설에 불과하다"라면서 “정부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요양병원들이 불법적으로 환자를 유치해 병실을 채워, 세금과 건강보험료를 갈취하는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당국의 강력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라고 제기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김대희 사무국장은 이러한 인권유린 사건을 낳은 근본적인 원인이 정부가 공공의료에 대한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사무국장은 “전국에 요양병원이 총 1250개가 있는데, 그 중 공공병원은 40개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직영이 아니라 위탁형태로 운영되고 있다”라면서 “정부가 국민 건강에 대해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있기에 병원들 간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환자 알선행위가 창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홈리스를 상대로 한 신종 착취 수법”이라고 규정하고, 복지부가 B요양병원을 철저히 조사하고 법률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홈리스행동 등은 25일 복지부에 B요양병원에 대한 현지조사를 요청해 놓은 상태이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그러나 복지부는 아직 조사계획도 잡고 있지 않은 상태이고, 그러는 사이 어제도 이 병원은 영등포역에 나와 노숙인을 데려가는 일이 벌어졌다”라며 복지부의 시급한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홈리스행동 등은 또 B요양병원과 같은 사례가 10여 군데 더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B요양병원에 대한 대응을 시작으로 요양병원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응을 촉구하는 활동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술, 잠자리 등을 이용해 홈리스에게 환자 유인행위를 하는 B요양병원을 비판하는 퍼포먼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