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돌보기는커녕 일상생활도 힘든 활동보조시간
"이승연 씨에게 월 200시간 활동보조를 동대문구가 지원하라" "사회 전체가 고민해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지적도
동대문구 답십리에 거주하는 이승연(38, 뇌병변장애 1급) 씨는 지난 6월 초 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에서 제공하는 활동보조 100시간과 서울시에서 추가지원하는 80시간을 합해 월 180시간이 이 씨가 받는 활동보조시간 전부이다.
하루 6시간 남짓으로는 아이 돌보기는커녕 이 씨가 일상생활을 영위하기에도 부족한 시간이다. 게다가 뇌병변장애 1급인 이 씨의 어머니가 받는 활동보조시간도 월 100시간에 불과하다. 그러나 아버지, 중풍을 앓고 있는 뇌병변 1급 장애의 어머니, 비장애인 남편 등 5인 가족에게 지급되는 수급비는 월 60만 원 정도로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28일 서울장차연 등은 동대문구청 앞에서 '뇌병변장애여성 이승연씨의 양육권 보장'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이 씨는 동대문구에 활동보조서비스 추가시간 신청을 요구했지만, 신청기간이 만료됐다며 받아주지 않았다. 그 뒤 서울시가 신청기간이 남았다고 알려와 다시 신청하자 ‘주민등록상 한집에 2명의 장애인이 있으면 독거특례를 신청할 수 없으며, 와상사지마비장애인이 아니면 추가시간을 신청할 수 없다'라는 말만 들었다.
이런 상황은 비단 이 씨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국가가 제공하는 2주 산모 도우미 서비스가 끝나고 나면 아이를 키우는 일은 오롯이 여성의 몫으로 남겨질 뿐, 장애여성 대부분이 양육권을 제대로 보장받고 있지 못한 현실이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서울장차연)와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가 이런 이 씨의 상황을 보다 못해 나섰다. 28일 이른 11시 동대문구청 앞에서 '동대문구 장애인양육권 보장 긴급대책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서울장차연은 “기초단체 추가지원을 하고 있는 서초구 · 강남구 · 송파구 · 중구 · 용산구와 같이 이승연 씨에게 월 20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동대문구가 지원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장애인부모의 양육을 지원하는 긴급지원대책, 장애아동 돌봄서비스 등 사회서비스를 내용으로 하는 조례를 제정해 제도적 지원대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서울장차연 이원교 공동대표는 “며칠 전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최저생계비 체험을 하면서 '6,300원으로 하루 사는 게 황제 같았다'는 말로 서민을 우롱했다”라고 지적하고 “장애인의 양육권은 예산의 문제가 아닌 생존의 문제이므로 동대문구가 한나라당처럼 장애인의 삶을 우롱하지 않도록 두 눈 뜨고 지켜보겠다”라고 강조했다.
민주노동당 서울시당 조윤숙 장애인위원장은 “20대 초반에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제도적 뒷받침이 없어 무척 힘들었고 결국 첫째 아이가 다섯 살 때 목숨을 잃었다”라면서 “아이를 기르는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가 책임져야 할 문제이므로 동대문구가 장애여성이 당당하게 아이를 기를 수 있는 권리적 토대를 마련해줘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장애여성공감 배복주 대표는 “가부장제인 우리 사회에서는 양육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짐 지워지기 때문에 저출산 문제가 계속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는 이승연 씨 개인사례로만 끝날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고민해서 제도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아이키우기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당사자 이승연 씨(왼쪽)와 아이를 안고 기자회견하는 아내를 바라보는 이 씨의 남편. |
당사자인 이승연 씨는 “한집안에 장애인이 두 명이라서 독거특례신청도 안 되고 추가시간요청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데, 정작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내 활동보조인은 아이를 돌보고 나는 활동보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하고 “그나마 낮에 아이를 돌보는 활동보조인이 저녁에 퇴근하면 아이가 방치되는 상황이라 이대로 가면 아이가 위험하다”라며 절규했다.
한편, 동대문구는 “예산과 직결되는 문제라 뭐라 확답할 수 없다”라며 “다른 예산에서 편성할 수 있는지 고려해 이번 주 안으로 답변을 주겠으며, 내년부터 출산지원금 외에 양육지원비 제공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