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가 씽씽 달리는 도시'에 대한 발칙한 상상

구화 대신 수화를, 도서관 책은 점자로 되어 있는 도시 “장애인이어서 차별받는 게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

2014-08-01     강혜민 기자

1.

사람들이 휠체어를 타고 씽씽 달린다. 아이쿠야, 걸어가던 이의 옆구리가 위험하다. 휠체어에 옆구리가 치일 것 같다.

이 도시의 도로는 휠체어가 다니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길은 매끄럽고 턱은 없다. 내리막길을 ‘걸어가던’ 이는 미끄러워 어쩔 줄을 모른다. 손에 잡을 핸드레일도 없다. 양옆의 도로 턱은 휠체어 높이에 맞춰 설계되었다.

전화 한 통 하러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니 이건 또 왜 이리 낮은가. 바로 옆에서 휠체어 탄 이는 편하게 전화 거는데 나의 신체엔 이 공중전화 박스가 도무지 맞지 않다. 비는 우악스럽게 내리고 어깻죽지에 우산 끼고 엉덩이 빼고 전화번호 누르려니 너무 힘들다.길 건너 아이가 나를 보곤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킥킥 웃는다. 아마 아이는 이렇게 말했을 거다. 

“저 아저씨 좀 봐. 너무 웃겨.”

한 여자가 건물에 들어간다. 여자의 말을 들은 남자가 수화로 답한다. 여자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주위를 살짝 둘러보는데 여자의 당혹스러움을 해결해줄 이는 없어 보인다.

이 도시의 도서관은 또한 어떠한가. 책을 펼쳐본다. 종이는 하얗다. 깜장 글씨 다 어디 갔어. 오돌토돌 튀어나온 알 수 없는 점자만 박혀 있다.

2.

이 영상은 프랑스 전력청(EDF)이 제작했다.

문득 “장애인은 장애인이어서 차별받는 게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과거에 장애인은 버스도, 지하철도 타지 못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닐지라도 이젠 버스도, 지하철도 탈 수 있다. 휠체어가 탈 수 있는 ‘계단 없는’ 저상버스가 생겼고, 지하철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었기 때문이다.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다’라는 주장이 있다. 실로 농인끼리 모였을 때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장애가 아니다.’ 그들은 음성언어가 아닌 시각언어인 수화로 대화를 나누기에 그 안에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으며 수화로 의사소통이 충분히 가능하니 아(啞, 언어장애)도 아니다. 다만 이 사회가 수화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지 않고 구화 중심으로 되어 있기에 농인은 살아가기 힘겨운 것이다.

그리하여 이런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가 아니라 장애인 중심의 사회를. 도로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조건에 맞게 최적화되어 있으며 사람들은 구화 대신 수화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도서관의 책은 점자로 되어 있는 사회를.

다시 한 번 당신에게 물어본다. 장애가 나쁜 것인가? 장애는 부정되어야 하는가?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사람 역시 부정되어야 하는 존재인가? 우린 기꺼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