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너무 불편한 제주도였어요.”

중증장애인 부부의 신혼여행 동행취재…난관의 연속 2014 장애인 이동권 실태 보고⑥ - 제주도 여행 이동권

2014-11-07     갈홍식 기자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사고 이후 장애인들은 거리에서 '이동권 쟁취'를 외쳐왔습니다. 이에 따라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생기고, 저상버스가 운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장애인 이동권은 크게 나아지지 않은 듯합니다. 몇 시간씩 기다려도 오지 않는 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 안전을 위협하는 장애인 리프트와 지하철 승강장의 단차 등은 오늘날 장애인 이동권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비마이너는 '2014 장애인 이동권 실태 보고서'를 통해 장애인이 이동할 권리는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봅니다. 또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어떤 것들이 더 필요한지도 함께 짚어봅니다. _ 편집자 주 

인천에 사는 신지은(지체장애, 32세), 오명진(중복장애, 39세) 씨는 지난 9월 결혼식을 올린 신혼부부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중증장애인인 이들은 민들레장애인야학에 다니다 만났다. 지은, 명진 씨 부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비, 장애수당 말고는 별다른 소득이 없어 신혼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러한 사정으로 집에서 가까운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1박 2일 여행을 다녀왔지만, 신혼여행 분위기를 내기엔 부족했다.
 
그러다가 결혼식 한 달 만인 지난 21일 이들은 주변의 도움을 조금 받아 우여곡절 끝에 2박 3일 제주도 신혼여행을 가게 됐다. 난생 처음 가는 제주도 여행에 두 사람은 설렜고, 또 특별한 여행이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기자는 지은, 명진 씨 부부의 허락을 받아, 염치 불구하고 신혼여행에 1박 2일 동행했다. 결과적으로 이 부부의 여행은 뭔가 특별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여행의 묘미를 느끼기도 전에, 이들은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은 교통편과 시설 접근성 문제에 부딪혔다.
 
제주도의 불편한 교통편, 여행 준비부터 애먹다
 
지은, 명진 씨 부부는 제주도 신행여행 2주 전부터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지은 씨는 제주도 여행에 큰 기대를 보였다. 평소 텔레비전에서 유심히 봐온 관광지가 부부의 여행 계획에 포함됐다.
 
부부는 준비과정에서부터 제주도 교통편 때문에 애를 먹었다. 현재 제주도 내 저상버스는 제주시 95번과 100번, 서귀포시 3번 등 3개 노선에 10대가 투입돼 있을 뿐이다. 짧게는 40분, 길게는 2시간 기다려야 하는 배차시간도 문제지만, 노선 자체도 시내에 편중돼 시 외곽이나 시외 지역으로는 가기가 어렵다.
 
차선책으로 알아본 제주 장애인콜택시도 결국 대안이 되지 못했다. 제주 장애인콜택시는 제주도민이 아니어도 이용할 수 있고, 이용하기 전날에 예약해 두면 되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지은, 명진 씨가 이용하려고 했던 시간대는 예약이 이미 꽉 찬 상태였다. 제주 장애인콜택시의 차량 수는 27대로 법정 도입 대수 39대의 69.2%에 불과했다.
 
그래서 지은, 명진 씨는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했다. 제주도에는 휠체어 탑승 장치가 있는 렌터카가 2대 있는데, 이마저도 다른 사람이 이미 예약해놓은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일반 승합차를 빌리고, 전동휠체어 대신 수동휠체어를 타고 가기로 계획을 세웠다.

▲김포공항에서 명진 씨가 비행기를 타러 가고 있다.

 

턱, 언덕 때문에 휠체어 이용 어려운 숙소 “실망스러웠다” 
여행 첫 날 아침, 인천 지하철 계양역에서 명진 씨를 만나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명진 씨는 평소에 타고 다니는 전동휠체어 대신 수동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지은 씨는 챙겨야 할 짐이 많아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바로 공항으로 온다고 했다. 명진 씨와 함께 공항에 도착한 시각은 10시 50분. 비행기 출발 시각 12시 10분까진 아직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지은 씨가 생각보다 많이 늦었다. 예약한 시간보다 콜택시가 늦게 와서, 공항에도 11시 45분에나 도착했다. 5분만 늦었더라도 비행기를 못 탈 뻔 했다며 공항 직원이 타박했다.
 
부랴부랴 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라탔다. 기내 통로가 휠체어보다 좁아 휠체어를 탄 채로 들어갈 수 없었다. 활동보조인과 승무원들이 두 사람을 안아서 자리에 앉히고, 휠체어는 수화물 칸에 실었다.
 
지은 씨는 허리와 목이 좋지 않아 이동 시 주의가 필요했는데, 마음이 급한 승무원은 그런 것을 따지지 못했다. 승무원에게 안긴 지은 씨가 얼굴을 찌푸렸다. 지은 씨는 “장애인들이 편하게 탈 수 있게 비행기 자리를 넓혀줬으면 좋겠어요. 전동휠체어째 탈 수 있게.”라고 말했다.

▲휠체어를 비행기 수화물 칸에 보내고, 몸만 일반 좌석에 '어렵게' 옮겨 앉은 지은, 명진 씨.

비행기가 제주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 40분경. 모든 승객이 내리길 기다려 두 사람이 휠체어로 옮겨 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지은 씨 휠체어 앞바퀴가 주저앉아버린 것. 지은 씨도 명진 씨와 마찬가지로 제주도 이동 문제를 고려해 수동휠체어를 빌려 타고 왔는데, 그 수동휠체어가 말썽을 부린 것이다. 바퀴가 굴러갈 때마다 덜컹거리는 휠체어 때문에 지은 씨가 많이 아픈 듯했다. 공항 직원에게 근처에 휠체어 고치는 곳이 있느냐고 묻자, 공항 근처에는 마땅한 곳이 없다며 제주 시내에 있는 수리센터를 소개해줬다.
 
수리센터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자 센터 직원이 곧 이쪽으로 오겠다고 했다. 20분 정도 기다리니 직원이 왔는데, 상태를 보더니 맞는 부품이 없어 수리가 어렵다고 했다. 대신 수리센터로 찾아오면 여분의 휠체어를 대여해 주겠다며 주소를 적어주었다.
 
어쩔 수 없이 급하게 렌터카 회사에 연락했다. 원래는 95번 저상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구경하다가 숙소로 가는 길에 렌터카를 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 상태로는 시내는커녕 공항 밖에도 못 나갈 판이었다.
 
수리센터에 갈 요량으로 두 시간 일찍 렌터카를 수령했다. 활동보조인들이 힘겹게 부부를 렌터카 좌석에 앉혔다. 그나마 명진 씨는 부축을 받으면 혼자 차에 올라탈 수 있었지만, 지은 씨는 활동보조인이 안고 움직여야 했다. 지은 씨는 활동보조인 혼자서 차에 태우기 어려워 명진 씨 활동보조인까지 가세했다.
 
차에 탄 일행이 수리센터에 가보니 지은 씨가 타고 온 휠체어처럼 자세교정장치를 장착할 수 있는 휠체어가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바퀴를 살펴보던 직원이 바퀴의 손상이 생각보다 적다며, 수리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30여 분 뒤 수리를 마친 휠체어를 받아들고 시내로 향했다.
 
늦은 5시께 제주 동문시장에서 저녁거리를 산 뒤 교외에 있는 숙소로 갔다. 숙소 간판을 지나치자 아담한 통나무집이 보였지만, 10cm 정도 되는 턱과 경사진 언덕 때문에 휠체어를 이용하긴 어려워보였다. 방을 예약한 지은 씨가 “이렇게 턱이 높을 줄은 몰랐다. 텔레비전에서 봤을 때는 이 정도인 줄은 몰랐는데 실망스럽다.”라고 했다.
 
언덕 때문에 차를 숙소 앞에 대는 것도 여의치 않아, 활동보조인들이 부부를 안고 10m가량 걸어야 했다. 방 안에 들어가자 일행은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쳐버렸다고 투덜댔다. 그래도 ‘내일은 다르겠지’라며, 내심 다음 날 여행을 기대하는 그들이었다.

▲이튿날 아침에 여행할 채비를 마친 지은, 명진 씨가 숙소 앞 풍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 숙소 앞은 턱과 언덕이 있어 휠체어로 다니기 불편했다.
불편한 교통편, 턱 위의 식당, “이런 상태면 제주도 다시 오기 싫어” 
이튿날 아침 9시 30분쯤 숙소에서 나온 일행은 서귀포시로 넘어가 녹차박물관을 구경하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당 입구에 턱이 있었기 때문에, 활동보조인들은 먼저 휠체어를 식당 안에 옮겨두고 부부를 안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활동보조인들에게 부부를 차에 태우고 내리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명진 씨 활동보조인이 “나는 허리가 튼튼해서 괜찮다. 이럴 걸 예상해서 나를 활동보조인으로 부른 것 같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후에는 제주시 연동에 있는 러브랜드에 가보기로 했다. 부부를 차에서 내리던 중, 명진 씨 활동보조인의 ‘튼튼한 허리’가 탈이 났다. 지은 씨와 명진 씨를 차에 태우고 내리는 것을 수차례 반복했으니, 허리가 아프지 않는 게 어쩌면 더 이상한 일이었다. 지은 씨와 명진 씨도 허리와 엉덩이가 많이 아프다고 했다. 나중에 약국에서 파스라도 사서 바르기로 했다.

▲명진 씨가 점심을 먹고 활동보조인의 부축을 받아 식당에서 나오고 있다. 둘째 날 방문한 식당들은 계단이 있어 휠체어로 출입이 어려웠다.
성(性)을 주제로 한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러브랜드에는 턱이 없어 휠체어가 다니는 데 무리가 없었다. 하지만 2층으로 된 실내전시관에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1층만 구경할 수 있었던 것이 흠이었다. 명진 씨는 야외 공원을 돌아다니며 얼굴에 생기를 찾았다. 명진 씨를 보고 지은 씨도 즐거운 듯 이야기했다.
 
“원래 오빠가 웃음이 많은데, 제주도 와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제대로 여행한 기분이 든 건 여기가 처음인 것 같아요. 여기는 볼거리도 많고 모형들이 특이하네요. 이런 건 처음 봤어요.”
 
밝아진 부부의 모습을 보고 옆에 있던 활동보조인이 사진을 찍자고 했다. 명진 씨의 활짝 웃는 모습, 부부의 꼭 맞잡은 손, 다정다감하게 이야기하는 모습들이 이들의 여행 사진첩을 장식했다.
 
관람을 마친 일행은 오후 5시 즈음 시내로 가서 파스를 사고 저녁을 먹었다. 제주시청 근처 음식점을 몇 군데 돌아다녔지만, 턱이 없는 곳이 없었다. 좋았던 분위기가 다시 싸늘해졌다. 적당한 식당 찾기를 포기하고, 아무데나 보이는 곳에 들어가 식사를 마쳤다.
 
숙소에 돌아가는 길에 지은 씨가 “지금까지 을왕리, 춘천, 제주도 여행한 것 중에 제주도 교통편이 제일 불편하네요. 식당들이 턱이 높아서 장애인이 들어갈 수도 없게 해놓고, 장애인화장실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어요.”라며 불만을 털어놓다가 "그래도 오늘은 좀 구경하고 돌아다닐 수 있어서 좋았어요."라고 말했다.
 

▲러브랜드에서 지은, 명진 씨. 명진 씨가 활짝 웃으며 지은 씨의 손을 잡고 있다.

장애인 맞이할 준비 없었던 제주도, 아쉬움 남기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이틀간의 여행을 끝으로 기자는 부부와 헤어졌다. 그들이 여행을 잘 마쳤는지 궁금해 일주일 뒤 지은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은 씨는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며, 마지막 날에 신비의 도로, 검은모래해변을 구경하고 점심으로는 갈치찜을 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여행의 피로가 겹친 탓인지 최근 몸이 좋지 않다고도 했다. 그녀와의 통화에서 제주도 여행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제주도에서 내내 수동휠체어를 타고 다녀서 몸이 안 좋았어요. 전동휠체어를 가지고 갔으면 몸이 덜 피곤했을 텐데, 수동휠체어를 타고 내리면서 허리도 아프고 몸도 아팠어요. 수동일 때는 혼자서 다니지도 못하고, 휠체어가 작아 내 몸에 맞는 것도 아니고 아주 많이 불편했거든요. 제주도에서 가고 싶은 곳도,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많았는데, 다 못하고 지나친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지은, 명진 씨 부부의 신혼여행은 왜 이렇게 꼬일 수밖에 없었을까. 근본적인 문제는 지은, 명진 씨 부부를 맞은 제주도의 준비 부족이다. 비행기에 장애인용 좌석이 있었더라면, 관광지를 잇는 시내, 시외버스 노선에 저상버스가 도입되었더라면, 굳이 이들 부부가 수동휠체어에서 타고 내리는 수고스러움을 덜 수 있었을 것이다.
 
공항처럼 관광객이 자주 드나드는 곳에 장애인 보장구 수리센터가 있었다면, 이들처럼 여행 시작도 전에 일정이 어그러지는 일도 줄어들었을 것 같다. 관광지, 숙소, 식당에 적절한 편의시설이 있었더라면, 부부가 첫날 숙소를 보고 당혹스러워할 일도, 턱없는 식당을 찾아 방황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바람이 무리한 요구일까? 비장애인 여행객들이 여행지에서 이런 종류의 어려움을 겪을 확률은 얼마나 될까? 여러모로 즐거움보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여행이었다. 옆에서 지켜본 기자가 이러한데 지은, 명진 씨 부부는 오죽했을까? 아쉬움이 남지 않게 장애인이 자유롭게 여행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을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