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위를 걷는 세기말의 청춘들
이와이슌지 감독 영화 '피크닉'
ⓒ튜브 엔터테인먼트 |
"너희들 담 밑으로는 내려올 수가 없는 거니?"
까마귀의 깃털로 만들어진 옷을 입고 찢어진 검은 우산을 쓴 채 다니는 코코는 부모로부터 버려져 정신병원에 오게 된다. 그곳에서 선생님을 죽인 죄책감으로 끊임없이 환영에 시달리는 츠무지와, 코코에게 호감을 느끼며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사토루를 만나게 되고, 이들과 함께 자신들이 감금되어 있는 정신 병원을 떠나 지구의 종말을 구경하기 위해 최후의 피크닉에 나선다.
한가로운 태양빛이 내리비치는 오후, 그들은 빈 바구니와 버려진 인형을 주워든 채 자신들이 포함될 수 없었던 세계의 담장 위를 가로질러 간다. 세계가 끝나는 순간을 맞기 위해 이루어지는 이들의 소풍은 더없이 아름다운 이미지를 자아내는 동시에 비극적이다. 세상으로부터 가해지는 폭력에 상처입은 채 사회에서 격리된 세 명의 젊은 영혼들. 이들이 펼쳐 보이는 마지막 '피크닉'은 지구의 종말 이외에는 자신들을 향한 어떤 구원도 내리지 않는 세계로부터 작별을 고하는 의식에 가깝다.
병원 담장 밖으로 떠난 첫 모험. 아이들의 찬송가 소리에 멈춰선 코코와 츠무치는 그곳에서 만난 목사로부터 성경을 건네받는다. 그리고 성격 책에 찍힌 출판일이 지구 종말의 날이라 믿게 된다. 이들은 각자의 상처와 아픔으로부터 구원되고자 담장을 따라 마지막 외출을 감행하게 된 것이다.
코코, 츠무치, 사토루는 도시의 ‘경계’를 따라 세상의 ‘종말’을 구경하기 위해 길을 떠나지만, 그러나, 이 세계에는 이들을 구원해줄 ‘끝’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난 지구가 언제 멸망하는지 알아. 그건 있잖아.... 내가 죽을 때야. 지구는 내가 태어나면서 시작됐어. 그러니까 내가 죽으면 지구도 함께 없어질 거야."
담장과 난간, 건물의 턱을 밟으며 가는 이들의 여정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세기말 청춘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들은 자유로우면서도 불안한 걸음으로 '끝'을 향해 전진하지만, 이 길에서조차 사토루는 도태되고 비가 쏟아지자 츠무지는 다시금 자신이 죽인 선생의 환영에 시달리게 된다. 이들을 향한 구원은 결코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코코는 죽음을 통해 자신들이 갈망하는 세계의 종말에 닿고자 방아쇠를 당긴다. 그녀의 분신인 까마귀의 깃털만이 흩날리는 노을 진 바다. 사토루를 환영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코코는 사토루의 품에 안긴 채 스스로 세상을 마친다.
'피크닉'의 감독 이와이 슌지는 세 명의 독특한 아웃사이더들이 그려내는 ‘종말’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또한, 주연을 맡은 일본의 싱어송라이터 차라(Chara)는 순수하면서도 분열적인 독특한 감수성의 코코 역을 완벽하게 소화해내며, 영화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영화 '피크닉'은 아름다우면서도 슬픈 청춘들의 상처들을 뛰어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그려내며, 동시에 상징을 통한 간결하면서도 시적인 서사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