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홈리스 유인, 총체적 문제의 산물
주거, 생계, 의료지원 등 부족으로 요양병원 입원하게 돼 노숙인복지법, 홈리스 권리 보장 약해
홈리스들이 요양병원으로 유인돼 돈벌이 수단이 되는 상황은 총체적으로 부실한 홈리스 복지의 산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요양병원 대응 및 홈리스 의료지원체계 개선팀’(아래 개선팀)과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실 등은 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통계 자료, 홈리스 심층 면접 등을 토대로 요양병원 문제를 주거, 의료, 법률적 차원에서 지적했다.
‘먹거리, 잠자리 해결 위해’ 요양병원에 유인돼
2012년 시행된 ‘노숙인 등의 복지 및 자립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노숙인복지법)에서는 홈리스에 대한 임대주택 지원을 복지서비스로 명시하고 있으며, 이에 LH공사는 ‘주거취약계층 주거지원사업’을 통해 거리 혹은 시설에서 지내는 노숙인에게도 임대주택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개선팀은 주거지원사업 시행 후 2014년 말까지 홈리스에게 지원된 임대주택이 2913호에 불과했고, 거리 노숙인에게는 겨우 19호만 공급되는 등 임대주택 물량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2011년 보건복지부 실태조사에 의하면 전체 홈리스 인구는 28만 2161명, 이중 거리 노숙인은 3197명(응급잠자리 이용자 포함), 시설 노숙인은 1만 796명에 이르렀다.
거리 노숙인 중 57.0%인 1822명이 있는 서울시의 경우 1인당 100만 원 상당의 임시 주거비 지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나, 대상자는 2013년 기준 350명에 불과했다. 또한 서울시에 의하면 서울시 노숙인 시설(2013년)에는 정원 3794명 중 3478명(일시보호시설 이용인 743명 포함)이 이미 차있어 수용 여력이 부족했다.
이에 성북주거복지센터 김선미 센터장은 홈리스에 대해 양적으로 충분한 주거, 숙식 지원이 이뤄지지 않기에 홈리스들이 숙식을 제공하는 요양병원으로 유인됐다고 분석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에 대한 기대도 요양병원 입원의 주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김 센터장은 “요양병원에 입원했던 사람들은 차비 하나 지원받지 못한 채 거리로 나오게 되는데, 이후 사례 관리나 복지 연계가 전혀 되지 않았다”라며 “노숙인 분들에게 ‘요양병원에 다시 가고 싶으냐’고 묻자 대다수가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퇴원 후에도 다시 요양병원에 가게 되는 이유는 먹거리와 잠자리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밝혔다.
김 센터장은 “만성적 노숙인은 현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실제로 이들에 대한 현장 접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만성 노숙인에 대한 프로그램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라며 “거리 노숙을 막기 위해 주거 등 서비스 총량을 늘리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몸 추스를 곳 없어 요양병원에 입원, 진료는 뒷전
이어 사회진보연대 김태훈 정책선전위원은 홈리스들이 기존 의료 제도로는 병을 제대로 치료할 수 없어 요양병원에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노숙인복지법에 근거해 홈리스에게는 노숙인 1종 의료급여가 지급되지만, 이를 위해선 3개월 이상 시설에 입소하는 조건과 건강보험 미가입 혹은 6개월 이상 체납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 등 자격이 까다롭다.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본인이 부담해야 하고, 지정병원이 아니면 진료를 받지 못하는 등 의료 보장성과 접근성도 부족하다.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건강보험과 노숙인 1종 의료급여를 보완하는 식으로 의료보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성격이 비슷한 의료지원 정책이 중앙과 지방정부로 이원화되면서 이용자 입장에선 난해해질 뿐 아니라, 의료비 감축을 위해 중앙과 지방이 서로 책임을 떠넘길 소지도 발생할 수 있다.
김 정책선전위원은 홈리스에 대한 의료 지원이 취약해 외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질환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결국 홈리스들이 ‘와서 몸을 추스르라’는 요양병원에 유인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요양병원에 입원해도 홈리스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뿐 아니라, 입원 과정에서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했다.
김 정책선전위원은 “한 분이 진료받으려고 입원했는데, 진료를 단 한 번도 받지 못했다고 한다”라며 “홈리스 입원 과정 자체가 요양병원이 역 등지에서 술을 사주면서 ‘술, 담배 제공한다’는 식으로 유인하기 때문에 당사자와 의료인 모두 치료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져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정책선전위원은 “요양병원 입원을 위한 허위진단도 내려지고, 막상 치료가 이뤄져도 환자에게 설명과 치료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는다. 간혹 질환이 없는 환자에게 강제적으로 약을 먹이기도 하는데, 이는 의료윤리를 어기는 행위”라며, “요양병원 폐쇄 병동은 치료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통제 관리 목적으로 사용된다. 폐쇄 병동은 인권 침해적 요소가 있어서 절차를 지켜야 하나,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 정책선전위원은 진료 접근권을 제한하는 진료시설 지정제도를 폐쇄하되 단기적으로는 지정 병원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요양병원을 포함해 지정병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나아가 노숙인 1종 의료급여의 보장성을 확대하고, 요양병원 유치 경쟁에서 홈리스들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의료기관이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숙인복지법, 홈리스 권리 보장 약하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박영아 변호사는 노숙인복지법이 홈리스들의 권리 등을 소극적으로 규정해 홈리스들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노숙인복지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복지서비스는 주거, 급식, 의료, 고용, 응급지원이 있는데, 응급조치 외에는 모두 임의적 지원사항으로 규정돼 있다”라며 “권리가 없는 임의적 지원은 요건을 충족하더라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해, 오히려 요건 구비 또는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선별적이거나 차별적 지원으로 정책에 대한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요소가 된다.”라고 비판했다.
박 변호사는 “법률에서는 노숙인 진료시설에 대한 규정만 둘 뿐 노숙인 등에 대한 의료권 보장 내용을 담고 있지 않다”라며 “노숙인 등은 응급상황이 아니면 지정된 노숙인 진료시설 외 의료급여를 신청할 수 없다. 의료급여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결과적으로 홈리스들의 의료 접근권을 떨어뜨리고 병이 심각한 수준으로 진행될 때까지 의료기관 이용을 꺼리게 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안정적 주거가 없는 사람들의 취약성은 기본적으로 주거가 없는 데서 비롯되지만, 가장 핵심적이어야 할 주거지원이 경시되고 있다”라며 법률에 국가, 지방자치단체에 주거 대책을 위한 구체적 책임을 지우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에 “주거지원, 의료지원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대책만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중앙정부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중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