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국회 논의 들어간 수화언어법, 주요 쟁점은?
국회 교문위, 수화언어 관련 법안 공청회 열어 수어의 주체, 공용어 인정 범위 등에서 이견
그간 1년 넘게 국회에서 잠자고 있던 수화언어 관련 법안이 2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공청회를 시작으로 다시금 본격 논의에 들어갔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수화언어 관련 법안은 총 4건으로, 지난 2013년 8월 새정치민주연합 이상민 의원이 ‘한국수화언어 기본법’을 대표 발의한 것을 시작으로, 10월에는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과 같은 당 이에리사 의원이 각각 ‘수화기본법’과 ‘한국수어법’을 발의했으며, 이어 11월에는 정의당 정진후 의원이 ‘수화언어 및 농문화 기본법’을 발의했다.
이들 법안에 대해 국회는 지난해 4월 공청회를 열어 본격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세월호 사건으로 일정을 취소한 뒤 지금까지 논의를 미뤄왔다. 1년 동안 미뤄졌던 논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니 만큼, 이날 공청회를 앞둔 농인들의 기대는 매우 높았으며, ‘수화언어 및 농교육권리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2월 26일 국회 앞에서 농인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한 수화언어법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이날 공청회에서 다뤄진 법안들은 모두 농인의 언어권 보장 및 농인의 삶의 질 향상을 목적에 두고, 농인들의 언어를 공식적인 언어로 명문화 하자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법률의 용어 사용 문제, 수화언어의 주체와 공용어로서의 범위 설정,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수화언어 교육, 농인의 권리보장과 가족지원 등의 쟁점에서 각 법안들이(특히 이에리사 의원안과 정진후 의원안) 미묘한 차이점을 갖고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농인만의 공용어인가? 국어와 동등한 공식 언어인가?
가장 먼저 입장이 갈린 부분은 법률의 기본이 되는 용어 선택의 문제로, 농인 당사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수어’로 부를 것인가, 아니면 ‘수화언어’로 부를 것인가 하는 점이었다. 현재 이에리사 의원안에서는 ‘수어’를, 정진후 의원안에서는 ‘수화언어’를 택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나사렛대학교 우주형 교수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명칭은 물론 ‘수화’이지만, 이는 언어라는 의미보다는 하나의 의사소통수단에 불과하다는 뜻이기에, 법안이 지향하는 언어로서의 권리를 담지 못한다”라고 지적했다.
한국농아인협회 이미혜 사무총장도 “실제 설문조사 결과 절반 이상이 ‘수어’라는 표현을 더 선호했다”면서 “이로써 한국 수어에 언어적 지위를 인정함과 동시에 이를 근간으로 형성된 농사회·문화 및 농정체성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해진다”라고 강조했다.
반면 정진후 의원은 “언어에는 역사성과 대중성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며 “수어라는 낯선 개념보다는 수화언어라는 명칭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 쟁점은 큰 논쟁 없이 쉽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수화언어’라는 명칭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장애인정보문화누리 김철환 실장은 “수어라는 말을 꼭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고, 새정치민주연합 박홍근 의원도 “법률상 공식 명칭을 ‘수화언어’로 하고, 약칭 ‘수어’로 하는게 어떤가”라고 타협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보다 더 토론의 여지가 있는 쟁점은 ‘수화’ 또는 ‘수화언어’를 사용하는 주체를 누구로 설정할 것이며, 이를 한국의 공용어로 택한다면 그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하는 부분이었다. 이와 관련해 이에리사 의원안에서는 “한국수어가 음성언어인 국어와 다른 형식의 농인의 고유한 언어임을 인정”한다고 명시했다. 즉, “한국수어는 농인의 공용어”라는 것이다.
나사렛대학교 우주형 교수도 “우리나라 농인은 그들의 제1언어이자 모어인 수어를 공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고 외국어나 다름없는 음성언어인 한국어만을 공용어로 강제당하는 상황”이라며 “한국수어를 대한민국 농인의 공용어로 선언하는 것은 기본 전제”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해 김철환 실장은 “수화언어를 농인들의 공용어로 한정하여 규정하면 일반 국민들이 ‘수화는 농인들만이 사용하는 특수한 언어’로 인식하게 돼, 법률 제정 취지와 다르게 될 수 있다”며 정진후 의원안이 명시한 대로 ‘수화가 국어와 동등한 공식 언어’로 명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수화언어가 농인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적용되는 공용어여야 한다는 것이다.
김 실장은 “일본, 아이슬란드,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등의 수화 관련 법률에도 수화언어가 자국의 국어와 동등한 자격이 있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라고 제시하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일반 교과과정에서도 수화언어를 정식 과목으로” vs “가능할까?”
또 하나 중요한 쟁점은 교육에 대한 문제다. 토론에 임한 모든 이들은 농인들의 언어상의 차별은 교육과정에서부터 차별과 배제가 존재했기 때문이라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이에 이에리사 의원안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인 교사 또는 한국수어를 사용하여 교육이 가능한 교사를 배치하여야 함”(제14조 1항),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학교 교육에서 한국수어를 한국어와 동등한 교수·학습 언어로 사용하며 한국수어를 교육과정에 포함하여야 함”(제14조 2항)이라고 명시했다.
정진후 의원안에서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농인과 수화언어 사용자가 장애 발생 초기부터 수화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고, 수화언어를 사용하여 능력과 적성에 따라 교육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을 명시했다.
하지만 정진후 의원안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농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의 교과과정에서도 수화언어를 교육하도록 하는 조항을 담았다. 이에 대해 김철환 실장은 “사회통합이 강조되고 있는 현재 상황을 고려할 때 수화언어 교육을 개인의 책임으로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초·중학교의 방과 후 교육이나 특활활동, 고등학교에서 제2외국어 등으로 수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며, 해당 조항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이 내용이 실제 통과되기까지는 여러 난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지난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위원이 작성한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초·중등교육법 및 동법 시행령에 따라 교과는 교육부장관이 정하여 ‘초·중등학교 교육과정’으로 고시하고 있는 바, 제정안에서 수화언어 과목을 의무교과로 도입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공청회에서 새누리당 윤재옥 의원 또한 이 검토보고서를 언급하며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수화언어 과목을 도입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해 지자체의 역할과 타 법률과의 관계에 있어서 적절한지 검토해야 한다”라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관할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교육과정과 관련해서는 ‘장애인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등에서 담아야 할 부분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교육부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계속 진행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 의원 안에서는 농인과 수화사용자의 가족지원(제14조), 농문화의 지원(제19조)에 대한 내용도 담았다.
수화언어 위한 별도 연구기관 설립, 실현될까?
제출된 네 개의 법안 모두는 언어로서 수화언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교육을 위한 별도의 공식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수화언어 발전을 위한 기본계획 수립과 이에 대한 심의를 진행할 자문위원회를 구성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회 전문위원은 2013년 12월 검토보고서에서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소속기관인 국립국어원과 같이 정부 조직의 하나로 둘 경우, '정부조직법'에 따른 행정부의 조직재량권을 제약하게 될 우려가 있고, 직제 중심의 정부조직 관리체계에 혼란을 줄 소지가 있다”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부 관계자는 “(별도 연구기관 설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연구기관은 새로 신설하는 방법 뿐 아니라, 기존 기관을 지정하는 방법도 있다. 이에 대해서는 안행부, 기재부 등과 협의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정진후 의원은 “연구와 교육, 심의에 대한 부분은 이번 법안에 꼭 들어가야 한다”면서 “기재부가 (예산을 이유로) 반대한다고 물러서면 안 된다. 문체부가 적극적으로 기재부를 설득해야 한다”라고 주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