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의 삶에 필요한 것은 ‘선의’가 아니다

류미레 감독 다큐 (2001년작)장애인작업장 내 모습 담아 “오늘날보다 더 ‘선진적’이지만…”

2015-06-10     강혜민 기자

DMZ다큐멘터리영화제와 신나는다큐모임 주관으로 독립영화관 인디스페이스에서 <한국의 다큐멘터리 감독들> 기획전으로 류미례 감독편이 열렸습니다. 그중 지난 8일엔 성인 지적장애인의 일터인 ‘함께사는세상’을 배경으로 한 다큐멘터리 <친구-나는 행복하다 두 번째 이야기>(2001)가 상영됐습니다. 영화 상영 후 ‘지적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주제로 류미례 감독과 당시 ‘함께사는세상’ 책임자였던 유찬호 사제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비마이너는 영화와 함께 당시 현장에서 나눴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관악장애인재활센터 '함께사는세상'에는 20여 명의 지적장애인이 출퇴근을 하며 함께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 그들은 일도 하고 글도 배우며 풍물도 배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곳이 소중한 것은 여기서 사람을 만나면서 그들이 덜 외로워지고, 이 모든 것들이 지적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삶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여기는 2001년의 장애인 작업장이다. 이 모습은 류미례 다큐공동체 ‘푸른영상’ 독립영화감독의 다큐멘터리 <친구-나는 행복하다 두 번째 이야기>(2001)에 담겼다.

▲다큐 <친구-나는 행복하다 두 번째 이야기> 한 장면
어느 날 센터 회원인 광수가 용돈 5000원을 잃어버린다. 센터 교사들과 회원들은 밤늦게까지 회의를 하며 범인을 찾아내고자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흥미롭다. 교사는 광수를 불러 잃어버린 돈이 5000원짜리 한 장인지, 천 원짜리 다섯 장인지 물어 확인한다. 그 뒤 의심(?)되는 회원을 불러 묻는다. 그는 그전에도 도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다른 회원의 돈을 가져갔던 이다. 그러나 그는 알리바이가 있어 용의선상에서 제외된다. 결국 센터 회원들이 모두 모여 범인을 찾고자 한다.

회원들은 회의를 연다. 이때 회의 진행은 회원 중 한 명이 맡는다. 회의를 통해 맨 처음 용의선상에 올랐던 경수가 사실 범인임이 밝혀진다. 이후엔 돈을 훔쳐가고 거짓말을 한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사후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교사들은 교사회의에서 1년에 한 번 가는 공동체 여행에 경수를 제외하고 가야 한다고 의견을 모은다. 이번 사건은 경수가 벌인 세 번째 도난 사건으로 이는 습관적 행동이기에 다른 회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중히 다뤄야 한다는 게 이유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수가 이를 숨기기 위해 그럴듯한 알리바이를 대며 거짓말한 죄가 컸다.

교사들은 이러한 결과를 회원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이에 대해 회원들끼리 자체 논의하도록 한다. 그러나 회원들은 그것은 너무 가혹하다며 함께 가야 한다고 결정한다. 경수는 함께 여행 가자고 하는 회원들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광수에겐 돈을 가져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한다. 광수 또한 다신 돈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잘 간수하겠다고 말한다.

영화는 ‘지적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라고 불리는 그것이 실제 당사자의 삶에 펼쳐졌을 때 일어나는 풍경을 담아낸다. 지적장애인의 경우, 자기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하는 것(자기결정권)이 힘듦으로 삶에서 끊임없이 훈련하고 익혀야 한다. 영화 속 이들은 이를 넘어 이상적 풍경을 그려낸다. 이들은 공동체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들 자신의 힘으로 내부 관계를 회복하는 법을 익힌다. 이때 교사들은 이들의 조력자로서 기능한다.

그러나 2001년은 지적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단어도 없던 시절이다. 따라서 정립된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그러한 ‘관계’를 맺길 원했기에 기존 비장애-장애로 규정된 관계의 틀을 벗어나 사람들과 새로운 형식의 관계를 맺어나가는 것이다. 이는 류미례 감독이 <친구-나는 행복하다 두 번째 이야기> 전에 제작한 <나는 행복하다>(2000)의 영향이 컸다. 당시 함께사는세상 책임자였던 유찬호 사제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나는 행복하다>) 촬영한 영상을 보니 부끄러웠다. 그전엔 내 일상을 스스로 볼 기회가 없어 몰랐는데 영화를 통해 보니 일상의 내 모습이 폭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촬영 뒤 센터 내 호칭 문제를 정리하고 교사들은 회원들에게 반말하지 말자고 정했다. 사실 ‘선생님’이란 호칭도 불편했지만(딱히 부를 적당한 호칭이 없어 선생님이라고 당시엔 불리게 됐다). 그 후엔 장애·비장애 상관없이 ‘~씨’라고 불렀다.”

지적장애인에게 1/n의 몫을 주고 역할을 맡기는 것, 지적장애인 당사자의 공동체 회의 진행을 교사가 아닌 당사자가 맡는 것. 그리고 지적장애인들의 아버지들을 초대해 그들을 설득하는 것까지. 이러한 영화 속 풍경은 오히려 오늘날보다 더욱 ‘선진적’으로 보일 정도다. 14년 전 영화 속 모습이 이럴진대 현재 이들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함께사는세상은 ‘많이 변했다’고 한다. 당시 총책임자로 있던 유 사제는 2010년 다른 곳으로 발령 나면서 그곳을 떠나게 됐다. 영화에 나온 이용자 중엔 현재 사망한 이도 있고 결국 장애인시설에 가게 된 이도 있으며, 여전히 그곳에 다니는 이도 있다. 함께사는세상은 탈시설이라는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운영되던 기관은 아니었다. 이곳은 지역사회에 장애인들이 갈 곳이 현재보다 더욱 없던 1997년 대한성공회서울교구사회복지재단에서 서울시 관악구에 만든 장애인센터였다.

14년 만에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와 2015년의 현실을 마주한 영화는 그때 그곳에 있던 이들에겐 당시엔 읽히지 않았던 여러 맥락도 보여줬다. 그것은 거리와 시간을 두고 마주하기에 발견할 수 있는 요소이기도 했다. 그중 하나는 장애인의 성(性) 문제였다. 영화에 등장했던 이들 중엔 실제 결혼까지 이어진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지적장애인이라는 특성과 이를 제대로 조력해주기 어려웠던 현실들로 이혼에 이른 이들도 있었다. 유 사제는 “직업 문제 못지않게 장애인의 성문제도 센터 안에서 심각한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그리고 함께사는세상에서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던 류미례 감독도 한동안 카메라를 내려놔야 했다. 류 감독은 “깊은 비밀, 진실을 알게 되면서 작업을 못 하게 됐다. ‘이야기의 주체가 누구인가’를 넘어서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류 감독은 그 후 함께사는세상에서 지적장애인들이 스스로 카메라를 들고 세상을 찍을 수 있게끔 하는 미디어 교육을 시작했다.

류미례 감독은 묻는다. “사람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가 있고 지능은 그중 한 부분일 뿐인데, 저들은 장애인이고 나는 왜 장애인이 아닌가. 저들은 왜 장애인이라고 불리나.” 이는 당시 그녀를 흔들었던 물음이고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물음이다.

영화는 주변의 조력으로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꾸려나가는 지적장애인의 이상적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오늘날의 사회가 외치는 지적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이 존중되는 사회를 닮았다. 그러나 영화 바깥과 이후의 삶에선 그것이 구조적으로 조력 되지 않을 때 얼마나 쉽게 무너지는지를 알려준다. 그것은 쌓아온 노력에 비해 쉽게 무너졌고 그만큼 당사자들에겐 상처로 남았다. 그렇다면 결과는 명징하다. 이 사회는 이들의 삶을 어떻게 조력할 것인가. 그것은 개인의 선의로썬 불가능하다. 구조적 지원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