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노동, '시장중심' 개념 벗어나야 가능하다
의무고용률 5% 인상, 사회연대 고용제 등 장애인고용 대안 모색
노동시장에서 배제되는 장애인의 노동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연대 고용제, 장애인 의무고용률 5% 인상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노동 개념에 대한 근본적인 방향 전환의 필요성도 아울러 제기됐다.
중증장애인노동권공대위는 11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고용정책 방향 제시와 대안모색 토론회'를 열고, 장애인 노동정책의 개선 방향에 대해 토론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김재익 굿잡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은 장애인 고용을 위해 직업재활 패러다임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아래 장애인고용법)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4년 6월 기준 장애인 고용률은 36.6%로, 비장애인 고용률 60.9%보다 20%p 이상 낮은 수준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전체 소득 중 공공부조나 사회보험 같은 공적 소득이 차지하는 비율이 12.9%(2012년 기준)로 낮다. 같은 시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40.7%로 우리나라보다 3배가량 높다. 결국 우리나라 장애인은 노동으로 임금 보전도 어렵고, 사회 보장 시스템도 부족한 현실에 방치돼 있는 셈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 소장은 직업재활 패러다임으로는 장애인 노동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 패러다임에서는 장애인이 취업을 못 하는 주요 요인을 개인의 손상과 직업능력 부족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취업 정책 역시 사회복지사, 직업재활사의 상담과 직업 교육을 통해 개인 능력을 향상하는 방향으로 마련된다. 그러나 김 소장은 신체적, 정신적 손상이 심한 중증장애인에게 단순한 교육과 상담만으로 취업을 연계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중증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과 제도를 정비하는 고용지원 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용지원 패러다임은 장애인 근로지원인, 중증장애인 인턴제, 장애인을 위한 직종 개발 등 중증장애인 취업에 필요한 사회적 방안을 확충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김 소장은 비영리기관에서 장애인을 고용하고 국가나 기업에서 비용을 내는 사회연대 고용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김 소장은 “기업 측에서는 의무고용률을 못 지켜도 돈(고용부담금)을 내는 것이 더 이롭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있다. 부담금 자체가 장애인 고용을 강제하는 것이 아닌, 정부에 돈 내라는 의미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며 “더블카운트제(중증장애인 1명 고용 시 2명 고용한 것으로 계산하는 제도)는 장애인 고용이 아니라 재벌에게만 혜택 주는 정책에 불과하다”라고 장애인고용법의 부작용을 지적했다.
이를 위해 김 소장은 현행 장애인고용법상 국가기관 3%, 민간기업 2.7%인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장애출현율에 맞는 5%로 대폭 인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고용부담금도 미고용 장애인 1인당 71만 원(최저임금 기준 67%)으로 책정된 부담기초액을 중증장애인의 경우 최저임금 기준 100%~150%로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소장은 고용부담금 수준을 높여 기업의 장애인 고용을 강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좀 더 근본적으로 시장중심 노동이 아닌 장애인에게 맞는 노동 개념을 정립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도현 『비마이너』 발행인은 공공시민노동 관점에서 장애인 노동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시민노동은 헌법에서 규정하는 권리이자 의무인 노동을 공공사회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개념이다. 김재익 소장이 제안한 사회연대 고용제도도 공공시민노동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김 발행인은 '교육'이 권리이자 의무로 공공에서 보장하는 것이 당연하듯, 노동 또한 공공에서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발행인은 “자본주의적 노동이 이윤 창출의 조건이라면, 우리의 관점에서 노동은 내가 갖춘 능력과 조건에 비춰 내 활동이 지역사회 구성원에게 물질적.정신적.정서적 풍요에 이바지를 하느냐다”라며 “중증장애인이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하며, 이 책임을 공공이 지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김 발행인은 공공시민노동을 구체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발행인은 우선 장애인고용법의 혁신을 촉구했다. 김재익 소장의 방안대로 장애출현율인 5%에 맞춰 의무고용률을 조정한다해도, 기업은 장애인 의무고용을 이행하지 않을 수 있다. 김 발행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당사자가 기업 외 분야에서 본인이 소망하는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 임금은 국고나 고용부담금 적립금에서 쓸 수 있게끔 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 발행인은 “고용부담금을 최저임금 67%에서 최저임금보다 높은 수준으로 높여 그것으로 사회연대기금을 만들거나, 그것이 자신 없으면 일반회계에서 그만큼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이것은 입법권과 행정권을 가진 정부의 책임”이라면서 동시에 “이것은 장애인계에서 싸워야 하는 몫이기도 하다. 문제 제기를 넘어 지금과 같은 강력한 투쟁이 수반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