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널서 윷판 벌인 장애인들...올해 설에도 고향 못 갔다

동서울터미널 모인 장애인 150명, 시외이동권 추경예산 편성 촉구

2016-02-05     갈홍식 기자

"걸! 잡았다!"
"윷! 이동권 팀 승리!"

설을 앞둔 5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동서울터미널 승차장에서 장애인들이 윷판을 벌였다. 올해 설에도 고향에 가려 했던 장애인들을 태울 버스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동권 팀과 저상버스 팀으로 나눠 윷놀이를 한 장애인들은 다음 명절엔 고향에서 윷을 던지길 소망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소속 장애인 150여 명은 5일 서울 광진구에 있는 동서울터미널에서 버스 타기를 시도했다. 이들은 오후 12시 20분 강릉행, 12시 30분 홍천, 강릉 주문진, 음성행, 12시 55분 평창 진부행, 1시 10분 양평행 시외버스 표를 구매했다. 그러나 결국 표를 구매한 모든 버스를 이용할 수 없었다.
 

5일 동서울터미널에서 150여 명의 장애인들이 고향 갈 버스를 탑승하려 했으나 결국 타지 못했다. 승차장 앞에서 윷놀이를 하는 모습.

2014년 설부터 매년 명절마다 장애인들은 서울 강남버스터미널, 센트럴버스터미널 등에서 고속·시외버스 타기를 시도해왔다. 그러나 2015년까지 9574대 고속·시외버스 중 휠체어 탑승설비가 갖춰진 버스는 없었다.
 

"명절에 고향 가고 싶다"는 장애인들의 지속적인 요구에 힘입어, 국토교통부는 2014년과 2015년 교통약자의 고속버스 접근권 확보를 위한 시범사업 예산 16억 원을 편성했다. 그러나 이 예산은 정부 최종 예산에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전장연에 따르면 2016년에도 정부는 예산 부족을 이유로 추가경정예산에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이날 장애인들은 버스 타기를 통해 장애인이 탑승할 수 있는 버스를 도입하지 않는 정부와 버스운송사업자에 항의했다. 또한 정부 등에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추경예산을 편성할 것을 촉구했다.
 

강릉행 표를 구매한 이라나 씨(장애 1급)는 “2008년 서울에서 살기 시작한 후 고향에 내려가 본 일이 손에 꼽을 만큼 적다”라며 “2년 전부터 고향 가는 것을 거의 포기한 상태”라고 밝혔다.
이 활동가의 경우 고향에 가더라도 2시간 30분가량 걸리는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 약 6시간 소요되는 기차를 주로 탑승해왔다. 이 활동가는 “내 경우 휠체어를 등받이를 접을 수 있어 버스를 탈 수는 있다. 하지만 직원들 허리춤 붙잡고 휠체어 실어달라, 몸을 들어 옮겨 달라 사정해야 했다"라며 버스 이용의 불편을 호소했다.
 

이경호 의정부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는 "버스를 타러 가면 아들은 타는데 나는 못 탄다. 휠체어 탑승 설비를 만들어야 비장애인뿐 아니라 장애인, 노약자, 유모차도 타지 않느냐"라며 "정부가 법('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은 만들어 놨는데, 과연 지금 장애인들이 비장애인과 같이 모든 운송수단을 이용할 수 있는가"라고 성토했다.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은 "정부는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16억 원의 예산은 배정하지 않으면서, 故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에 올해 4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라며 "정부는 예산의 우선순위를 바꿔 오는 추석에는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고향에 가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버스를 타지 못한 장애인들은 오후 1시 10분부터 양평행 버스의 출발을 막고자 승차장 밑으로 내려와 경찰과 대치하기도 했으나, 30여 분 후 자진 철수했다.
 

버스 표는 구매했으나 휠체어 탑승 설비가 없어 차에 오르지 못한 장애인.
장애인들이 버스를 타지 못하는 것에 항의하자, 버스터미널 직원이 양해를 구하고 있는 모습.

버스에 탑승하지 못한 장애인들이 항의차 버스 출발을 막고 있는 모습.
승차장 밑에서 버스의 출발을 막으려는 장애인들과 경찰이 대치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