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영화가 보고 싶어!

2016-04-07     김찬기


- 만화 해설 시작

# 1.
영화 ‘도가니’ 포스터가 있다. A, B는 농인이다.
A : (도가니 포스터를 보고서는) 언니, 이것 봐!

# 2.
A : 이 영화, 대사를 수화로 한대.
B : 정말? 그럼 우리도 볼 수 있겠네?

영화관으로 가는 A, B. 매표소 직원에게 ‘도가니 2장 주세요’라고 적힌 종이를 내민다.

매표소 직원 : 도가니…는 정육점에…

B : (도가니 포스터를 가리키며 손짓한다) 이거요! 이거!
직원 :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영화 ‘도가니’ 표 두 장을 산 A, B.

매표소 직원 : 즐거운 관람 되십시오!

#3.

영화관 옆 매점에서 파는 팝콘을 발견한 A, B.

B : 팝콘 먹을래?
A : 좋지. 

매점 직원 : 어떤 걸로 드릴까요?
A : 오른쪽거요!

하지만 매점 직원은 A의 손짓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매점 직원 : 죄송하지만…고객님…이거요? …저거요?

팝콘 사는 게 늦어지자 뒤에서 다른 손님들이 아우성친다. “거 빨리 좀 합시다!”

B : 팝콘 먹지 말고 그냥 가자…
사람들의 눈치에 둘은 결국 팝콘을 사지 못한다.

# 4.
영화 도가니 상영관. 그러나 정작 수화는 얼마 나오지 않아서 이 둘은 영화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에서 나오는 사람들. 영화를 보고 분노에 차있다.
“와, 진짜 나쁜 놈들! 완전 소름 끼치지 않냐?” “애들 완전 불쌍해”

#. 5.

A, B가 카페에 앉아 있다.

A : 언니, 무슨 내용인지 알겠어? 언니는 소리 좀 듣잖아
B : 극장이 너무 넓어서 소리가 웅웅 거려. 보청기 껴도 저런 소리는 잘 안 들려.
A : 수화도 거의 안 나오고! 그럴 거면 자막이라도 넣어주던가! 안 되겠어.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우리가 바꿔야 해!!

# 6.

이후, 농인들은 농인 문제를 다룬 영화 ‘도가니’를 정작 농인들은 볼 수 없다며 문제제기를 하였다.
현수막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
현수막엔 ‘청각장애인도 한국 영화를 마음 놓고 보고 싶다!’, ‘영화제 한글자막, 화면해설을 의무화하라!’라는 글자가 적혀 있다.

그러나 5년 후 2016년 현재,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

#7.
 

한 청각장애인 김 씨가 컴퓨터를 하던 중 장애인 영화관람권을 보장하라는 뉴스를 보게 된다. “저런다고 뭐가 달라질까? 휴…” 한숨을 쉬며 못마땅해하는 김 씨.
그러던 중 배우 강동원이 나오는 영화 ‘검은사제들’의 개봉 소식을 접한다. “이건 봐야 해!” 김 씨는 배우 강동원의 팬이다. 

# 8.
극장에 간 김 씨. 매표소에 ‘검은사제들 1장 주시오!’라고 적힌 종이를 내민다.

매표소 직원 : (속으로) 엄청난 박력이다.

직원은 김 씨의 박력에 흠칫하며 김 씨에게 영화표를 건넨다. ‘후후후’ 웃으며 영화관에 들어가는 김 씨. 두근두근 설렌다.

# 9.
하지만 한글 자막이 되지 않아 김 씨는 영화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잖아!” 분노하는 김 씨. 김 씨의 안경알이 갑자기 쩌적 쩌적 깨지고, 온몸은 불끈불끈 근육질로 변한다.

# 10. 
‘파괴의 신’으로 변하는 김 씨. 안갯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 11.
“부순다. 극장을 부순다.” 쿵쿵.

# 12.
파괴의 신으로 변한 김 씨의 극장 깨기가 시작되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극장들은 모두 파괴되었다.

# 13.
검은 적막 속에서 ‘파괴의 신’의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지구는 멸망하였다.

- 만화 해설 끝.

지난 2월, 시·청각장애인들이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공간과 시간대에 볼 수 있게 해달라며 법원에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영화사업자들은 장애인의 문화예술활동에 대한 정당한 편의를 제공해야 합니다. 시각장애인에겐 ‘화면해설’이, 청각장애인에겐 ‘자막’이 필요하지만, 현재 이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 만화 _ 김찬기. 1984년 4월 16일생. A형. 좋아하는 음식은 만두. 싫어하는 것은 새치기하는 사람. 취미는 만화책 읽기와 산책. 팬레터 보내실 곳 ffdusaod@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