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능 아니면 초인? 대중 영화 속 장애는 어떻게 드러날까?

대중의 장애 통념, 극적 장치로 활용... 때론 장애 편견 전복하는 방향 제시

2016-04-21     갈홍식 기자

영화는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는 창이다. 때때로 당대인들의 편견을 깨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장애인이 점차 사회로 진출하는 모습을 반영하듯 여러 영화에 장애인 배역이 등장하고 주요한 역할을 맡기도 한다. 이러한 영화에서 장애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고, 어떤 극적 장치로 활용되는가?
 

2000년부터 KBS 라디오 ‘내일은 푸른하늘’ 등을 통해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분석해 온 류미례 독립영화 감독은 21일 서울 시민청에서 진행 중인 1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대중 상업 영화에서 드러나는 장애 코드를 분석하는 시간을 가졌다.
 

1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에서 '장애 코드로 영화 읽기' 코너를 진행하고 있는 류미례 감독.

순수, 초인적, 무능...장애 통념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흔히 영화 속 장애인들은 비장애인 등장인물이나 관객에게 감동과 깨달음을 주는 순수의 상징으로 묘사되곤 한다. ‘맨발의 기봉이’(2006, 권수경 감독)에 등장하는 8세 지능의 40세 남성 기봉이는 동네 허드렛일을 하며 늙은 어머니를 극진하게 모신다. 심지어 어머니에게 틀니를 해 드리기 위해 하프 마라톤까지 출전하는 '착한' 장애인이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는 다른 초인적인 능력을 지녔다는 통념도 영화에 충실히 묘사된다. 홍콩 공포영화 ‘디 아이’(2002, 대니 팽 감독)에서 시각장애인이었다가 각막이식으로 시력을 되찾은 문이라는 여성은 원래 각막의 주인인 린의 귀신을 보고, 다른 이들의 운명을 예지할 수 있게 된다. 사회성은 부족하지만 수학 계산, 음악, 예술 등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닌 이들도 영화에 등장하는 장애인의 모습 중 하나다.
 

또한 영화 감독들은 ‘장애인이 무력하다’는 대중의 통념을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 사용한다. ‘지구를 지켜라’(2003, 장준환)에서 정신장애인인 병구가 회사 사장이 외계인이라는 것을 믿고 그를 감금, 고문하지만, 극중 인물들이나 관객들은 장애라는 장치 때문에 그의 행동이나 발언을 믿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반전을 만드는 장치가 된다. 반전영화의 대표격인 ‘유주얼 서스펙트’(1995, 브라이언 싱어 감독) 또한 초대형 살인사건의 유력한 범인 카이저 소제를 관객들이 쉽게 알아채지 못하도록 다리를 절뚝거리는 장애인을 활용한다.
 

류 감독은 “스릴러 장르에서 관객에게 감독이 머리싸움을 제안하는데, (관객들이) 진짜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장애인들이 큰 역할을 한다”라며 “감독들은 보통 지적장애인은 아이고, 정신장애인은 환각 망상이 있어 믿을 수 없다는 식의 통념을 이용한다. 그러면서 장애인에게 진실을 투여하면서 (관객의 추리를) 뒤집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구를 지켜라'(2003) 포스터.

장애 통념을 전복하는 영화들 

그러나 일부 영화는 사회적인 장애 통념을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넘어서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류 감독은 대표적 사례로 ‘말아톤’(2005, 정윤철 감독)의 한 장면을 들었다. 지적장애인 초원이 어느 날 육상 코치와 집에 와서 평소 즐겨보던 ‘동물의 왕국’을 본다.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해설을 줄줄이 외우는 초원을 보던 코치가 “325 곱하기 27은”이라고 문제를 내지만 하품하는 초원. 그가 해설을 외우거나 마라톤을 잘 하는 것은 ‘초인적인 능력이 있어서’가 아닌, 그가 성실하게 노력한 결과물임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류 감독이 주목한 또 다른 영화는 스릴러 장르인 ‘표적’(2014, 창감독 감독)이다.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후송된 형을 구하고자, 동생 성훈은 담당 의사의 아내 희주를 납치한다. 성훈은 뚜렛 장애가 있어,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퍼붓곤 한다. 성훈이 희주에게 사과하자 정신의학과를 전공해 관련 지식이 있는 희주가 말한다. “괜찮아요. 당신한테는 재채기 같은 거잖아요. 참지 못하는 것 알아요.”
 

류 감독은 이 영화가 사회 속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범죄 조직의 말단에서 멸시받으며 사는 성훈을 뚜렛 장애인으로 설정한 것은 장애인의 현실에 비춰 개연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류 감독은 더 나아가 이 영화가 희주라는 인물을 거쳐 뚜렛 장애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는 것을 두고 “영화에서 장애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장애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말아톤'(2005) 포스터.

당사자들이 직접 장애 코드로 미디어 감시해야 

류 감독은 영화가 장애에 대한 편견을 함부로 드러내지 못하도록 제동을 걸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장애 인식을 반영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류 감독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문화 콘텐츠를 하나하나 점검하면서 칭찬이나 질타를 해야 문화생산자가 장애를 하나의 콘텐츠로 함부로 소모하지 않게 될 것”이라며 당사자들이 직접 장애 코드로 영화를 모니터링할 것을 주문했다. 류 감독은 방편으로 ‘올해의 장애인 영화상’을 제정해 최고의 영화, 최악의 영화를 선정하는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류 감독은 “영화에서 장애인을 등장시켰다가, 비판받으면 등장 안 시킬 수 있다. 미국 영화가 성조기를 매번 보여주는 것처럼, 영화에 장애인을 반드시 등장시키는 쿼터제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류 감독은 장애인의 잦은 미디어 노출을 통해 장애를 올바르게 보는 관점도 더 자주 고민하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류 감독(오른쪽)과 참가자들이 영화의 장애 코드에 대해 토의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