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화의 기록
로사이드_따끈따끈 오늘의 창작 19
1.
H의 말은 그의 몸짓처럼 느릿느릿하고 때로 종잡을 수 없이 흘러간다.
‘H씨, 주말 잘 보냈어요?’
‘선생님 저는요, 해파리를 좋아해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저는요, 메뚜기도 좋아하고 로켓도 좋아하고 안경도 좋아…’
한다고, 그는 느릿느릿하게 말을 이어간다. ᅠ
‘아 그렇군요.’
합이 딱딱 맞는 탁구공처럼 오고 가는(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회적인 대화’와 달리 H와의 대화는 이렇게 종종 허공으로 날아가 흩어져 버리곤 한다.
2.
‘선생님, 저는 만들기를 좋아하지 가르치는 건 못하는데요.’
‘가르치라는 것이 아니에요.’
D는 손 솜씨가 좋고 함께 무엇을 하기보다 천상 혼자서 만들기를 좋아한다.
색색의 실을 묶어 자유롭게 무엇이든 손으로 만들어 보는 워크숍*에서 H를 만난 D는 그를 도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자신이 물어보는 말에 침묵하거나 혼자 노래 부르듯 딴소리를 하는 H를 당혹스러워하며 때로 다그치고 짜증도 내던 D는, 하지만 이내 조금 더 기다리는 태도와 어쨌든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요령을 익혀 차근차근 함께 형태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3.
“이게 뭘까요?” 라는 질문에
‘누에고치, 빨간 심장을 품은 새, 꽃다발, 떡볶이 국물…’ 등 다양한 대답이 나왔다.
내게는 이 물건이 어떤 대화의 기록으로 보였다.
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허공으로 날아가는 탁구공 같던 대화를 끈질기게 따라붙어 쳐낸 대화의 궤적이 실로 묶여 표현된 기록.
또 이런 상상도 해보았다. 약간의 기다림과 요령, 질서만 있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풍요로운 색채와 형태감이 살아있는 대화가 가능한 사회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여러분의 눈에는 이것이 무엇으로 보이시는가?
참고로 H의 대답은 ‘메뚜기와 강아지를 삼킨 해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