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권리예산 보장하라” 대치 끝 서울역 농성 재개

서울역 대합실서 장애인예산 증액 위한 농성 돌입 폭력적 대응으로 장애인들 고립시킨 코레일·경찰 전장연 “기재부, 책임 의지 있다면 협력해야”

2025-10-30     김소영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29일 서울역에 모여, 구윤철 기획재정부(아래 기재부) 장관에 ‘2026년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약속’을 촉구했다. 이날 장애인들은 20일부터 정부세종청사 민원동 앞에서 이어오던 농성 장소를 서울역으로 옮겼다.

오후 3시 전장연은 서울역 대합실에 천막을 설치해 농성을 벌이려 했으나,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직원과 경찰에 의해 저지됐다. 장애인들은 약 4시간의 대치 끝에 대합실에 현수막을 걸고 선전전을 진행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서울역 대합실에 차린 농성장 모습. 대합실 위에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기 위한 장애인권리예산 보장하라!”라고 적힌 큰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 김소영

폭력적 대응으로 장애인들 고립시킨 코레일·경찰

이날 서울역 내 코레일 직원들은 천막 1개를 들고 들어오던 전장연 활동가를 거칠게 막아섰다. 직원 수는 점점 늘어나 30여 명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활동가들과 직원들 간에 충돌이 빚어지며 위험한 상황이 벌어졌지만, 경찰들은 채증만 할 뿐,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코레일 직원들은 천막을 강제로 밖으로 끌어냈다.

코레일 직원들이 전장연이 가져온 천막을 빼앗고 있다. 사진 김소영
밖으로 천막을 빼낸 코레일 직원들과 전장연 활동가들이 대치하고 있다. 그들의 앞에 천막이 놓여있다. 사진 김소영

한 시간 뒤, 활동가들은 대합실 위에서 현수막을 펼치려 했으나 이 역시 저지당했다. 박 대표는 현수막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현수막 끝의 끈을 자신의 목에 걸었다. 그럼에도 코레일 직원들은 끈을 놓지 않고 잡아당겨 박 대표의 목이 조여 들었다. 이후 현수막을 다시 걸려는 박 대표를 경찰이 에워싸 고립시켰고 활동지원사조차 접근하지 못하게 막아, 휠체어에서 떨어진 박 대표는 한동안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방치돼야 했다.

대합실 위층 난간에서 현수막을 내리려던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공동대표가 경찰에 둘러싸여 있다. 허망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박 대표의 앞에 “예산 없이 권리 없다”라고 적힌 스티커가 유리창에 붙어 있다. 사진 김소영

이후로 두 시간가량 서울역 내에서 투쟁을 이어간 끝에, 전장연은 현수막을 걸고 선전전 진행을 위한 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들은 서울역 대합실에서 ‘교통약자이동권보장법 제정을 위한 1만 명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구윤철 기재부 장관에 장애인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선전전을 이어갈 예정이다.

전장연 “기재부, 책임 의지 있다면 예산 조정 전 협력해야”

이재명 정부는 지난 9월 2일 2026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전장연은 이를 ‘장애인권리를 무시한 가짜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이동권, 탈시설·자립생활권리, 노동권 등 장애인 당사자들의 요구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관련 기사: 728조 ‘슈퍼예산’? 전장연 “장애인권리 무시하는 ‘가짜예산’”)

예산안이 국회에 제출된 이후에도 장애인들은 정부를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박미주 전장연 정책국장은 “예산안의 최종 결정 권한은 기재부에 있다. 기재부가 장애인권리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와 책임 의지가 있다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아래 예결특위)에서 예산 조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장애인들의 요구가 반영될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2일 여야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일정에 합의했다. 예결특위는 다음 달 5일 열리는 예산안 공청회를 시작으로 부처별 심사를 진행한 뒤, 예산의 감액·증액 여부를 다루는 예산안조정소위원회(아래 예산소위)를 가동하기로 했다.

예산소위 심사를 거쳐 의결된 안은 예결특위 전체회의에서 최종 확정되며, 국회 본회의는 오는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처리해야 한다.

앞서 전장연은 지난 28일 기재부가 주최하는 ‘2025 공공기관 AI 대전환 워크숍’을 기습 방문해 구윤철 장관에게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전달했다. 구 장관은 “예산실장과 이야기해 보겠다”는 원론적인 답을 내놓았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에 대한) 구윤철 장관의 답변을 기다렸으나 여전히 응답하고 있지 않다”며 “다시 한번 시민들을 만나기 위해 2001년 이동권 투쟁을 시작했던 서울역에서 농성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