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 예산 0원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도 0원
거주시설 예산은 탈시설의 100배
장애인예산, 이제 국회 손에 달렸다
이재명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으로 728조 원을 편성했다. 본예산 규모가 700조 원이 넘은 건 역대 처음이다. 언론은 앞다퉈 ‘역대급 슈퍼예산’이라 보도했다.
그러나 장애인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장애인들은 이 정부의 첫 예산안을 두고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세습하는 가짜 예산”, “장애인을 수용시설에 가두는 감금 예산”이라 비판한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5일 오전 11시, 서울시 영등포구 T4철폐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6년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발표했다. 요구안과 정부안을 비교하니 정부 장애인예산의 문제점이 확연히 드러났다. 특히 최중증장애인 24시간 활동지원서비스,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맞춤형 공공일자리(아래 권리중심공공일자리) 등 핵심 예산은 0원이었다.
- ‘국민주권정부’라더니… 활동지원서비스 예산, 윤석열 정부와 비슷
장애인이 ‘생명줄’이라 부르는 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은 윤 정부 때와 비슷했다. 윤 정부는 지난해 14.7%에 이어 올해 11%를 증액했다. 이마저도 부족하다는 평가가 많았는데, 이 정부는 올해 2조 4,579억 원에서 내년 2조 7,221억 원으로 11%를 늘리는 데 그쳤다. 전장연은 “활동지원사 최저임금 인상 등 자연증가분을 고려하면 증액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전장연 요구안은 3조 6,524억 원이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를 받는 장애인 13만 9,715명의 월평균 지원시간은 136시간인데 전장연은 이를 175시간으로 늘리라고 요구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면 월평균 지원시간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최근 전국 장애인 314명은 자신의 턱없이 부족한 지원시간에 이의를 제기하며 변경신청을 했다. 그 결과 무려 154명이 더 많은 활동지원서비스 시간을 받게 됐다.
또한 전장연은 최중증장애인 1천 명이 활동지원서비스를 24시간 받을 수 있는 예산 1천억 원도 요구했다. 뇌성마비장애인 김주영 씨는 2012년 10월 26일 새벽, 활동지원사가 퇴근한 뒤 벌어진 화재 때문에 3m도 안 되는 거리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 참사는 ‘활동지원서비스 24시간 보장’ 투쟁의 도화선이 됐다. 그러나 이 정부는 1천억 원 중 단 1원도 편성하지 않았다.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아래 IL센터) 지원 예산은 올해 50억 원에서 내년 63억 원으로 소폭 상승했다. 전장연에 따르면 IL센터 필수인력 인건비가 기존 4명에서 내년 5명으로 1명 늘어난 예산이다. 그런데 장애인복지법 58조에 따라 시설로 분류되는 장애인자립생활지원시설에는 필수인력 7명의 인건비가 책정됐다. 이에 전장연은 “IL센터에 대한 차별을 조장하는 갈라치기 예산”이라 평가했다.
이형숙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IL센터는 20년간 죽어라 자립생활운동하면서 탈시설 정책 만들고 이동권을 확대해 왔다. 그럼에도 최근 장애인복지법에서 신설된 장애인자립생활지원시설보다 적은 인건비를 책정하는 건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 근로지원인은 요구안의 절반, 권리중심공공일자리는 0개
근로지원인 제도의 경우 장애인들은 2만 명 양성을 목표로 5,181억 원을 요구했다. 정부는 절반가량에 그치는 2,643억 원을 편성했다. 최근 정부는 근로지원인 1:다(多) 매칭 정책을 시행해 장애인노동자의 거센 반발을 샀다. 1:1 매칭을 원칙으로 근로지원인 수를 늘리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며 서울고용노동청까지 점거했지만 결국 반영되지 않았다.
최중증장애인 노동권 보장의 핵심인 권리중심공공일자리 예산은 한 푼도 편성되지 않았다. 최근 보건복지부는 ‘권리중심’이라는 용어에 공공연히 불만을 드러냈다. 장애인들은 국정기획위원회 로비에서 농성을 시도하며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국정과제에 반영하라고 요구했으나 좌초됐다. 정부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초로 권리중심공공일자리를 폐지한 오세훈 서울시장과 비슷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전장연은 “오세훈표 무시 예산”이라고 규탄했다.
- 장애인거주시설 예산, 탈시설 예산의 100배
장애인거주시설 예산과 탈시설 예산은 무려 100배가량 차이 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내년도 장애인거주시설 지원 예산으로 7,351억 원을 편성했다. 지방비가 동일하게 매칭되면 장애인거주시설에만 국고 1조 4천억 원이 투입된다. 반면 장애인 자립지원(탈시설로드맵) 시범사업에는 78억 원을 편성하는 데 그쳤다.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 358억 원에도 한참 못 미친다.
조아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장애인은 시설에 갇혀 살라는 예산”이라고 지적했다. 전장연 또한 “집단적 수용시설을 강화하는 감금 예산”이라고 성토했다.
- 장콜 운전원 2.5명 보장, 뇌병변장애인지원센터 설치
장애인콜택시(특별교통수단) 운영비의 경우 장애인들은 차량 1대당, 일 8시간 근무하는 운전원 2.5명을 보장하기 위해 999억 원을 요구 중이다. 이들의 핵심요구는 장애인콜택시 대기시간을 줄이라는 것이다. 택시를 부르고 탑승하기까지 최장 3시간을 기다리기도 한다. 일 8시간 근무하는 운전원 2.5명을 배치하면 차량 1대가 하루에 최소 16시간은 운행될 수 있단 계산이다.
권달주 전국장애인이동권연대 대표는 “우리의 간절한 콜택시는 운전원이 없어서 주차장에서 놀고 있는 경우가 다수”라며 “비장애인은 앱에서 10초면 잡히는 택시를 우리는 왜 3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나. 이게 대한민국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이라고 규탄했다.
뇌병변장애인들은 뇌병변장애인종합지원센터(아래 종합센터) 3개소와 뇌병변장애인비전센터(아래 비전센터) 16개소를 설치하기 위해 120억 원을 요구했다. 비전센터는 성인 중증 뇌병변장애인에게 돌봄, 교육, 건강 등 지역사회 기반의 개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종합센터는 비전센터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또한 1원도 편성되지 않았다.
뇌병변장애인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장애인 의사소통 권리증진센터 3개소 설치 등 64억 원을 요구한다. 오영철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회장은 “뇌병변장애인의 의사소통 지원은 그간 언어치료를 받는 학령기 청소년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성인이 되면 관련 서비스가 모두 중단된다”며 “의사소통 지원방안을 보급하고 교육하는 등 시스템을 마련하고자 이같이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내년 예산은 이제 국회 손에 달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장애인들은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국민의힘 등 국회의원 다수가 소속된 주요 정당 당사에 방문해 2026년 장애인권리예산 요구안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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