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거부한다 / 박지민

[Against Ableism! 일본 특사단 이야기 ③] 점점 거세지는 일본 경찰의 탄압 그럴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저항하는 것 연대의 전선 구축해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으로

2025-03-14     박지민

[편집자 주] 지난해 11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가 ‘파리 패럴림픽 특사단’에 이어 ‘일본 AA(Against Ableism, 비장애중심주의 철폐) 특사단’을 파견했다. 17명의 장애인·비장애인으로 구성된 특사단은 11월 22일부터 11월 27일까지 일본 도쿄, 오사카를 방문해 한국의 장애인권리 약탈 현실을 알렸다. 최근 3·1절을 맞아 일본에 재방문해 야스쿠니 신사 인근서 시설 수용을 강요하는 일본과 한국 정부를 규탄하기도 했다.

11월 22일,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12년 전 선고받은 집행유예를 이유로 일본으로부터 입국을 거부당했다. 결국, 박 대표는 당일 한국으로 강제 송환됐다. 그럼에도 전장연은 일본에서 투쟁을 이어갔다.

특사단은 5박 6일 동안 일본의 출근길 지하철에서 포체투지(기어가는 오체투지)를 하고,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다이인(die-in) 행동’을 벌였다. 또한, 예산 논리를 앞세워 장애인을 시설에 격리하는 한국과 일본 공통의 문제를 일본 내 장애운동단체 및 정당과 논의했다. 기자회견과 장애인인권영화제를 개최하며 일본의 시민들과 연대하기도 했다.

특사단은 일본에 가서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돌아왔을까. 특사단의 여정을 생생히 듣고 기록하고자 다양한 특사단원의 이야기를 7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더 많은 만남과 대화의 장 / 강내영
② 비장애인에겐 가까운 일본, 휠체어 탄 장애인에겐 멀고도 험난한 길 / 조재범
③ 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거부한다 / 박지민

일본 AA 특사단은 장애인권리 약탈을 지속하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국제적으로 고발하고, 비장애중심주의에 저항하는 국제연대 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일본에 갔다. 특사단은 국제 앰네스티 일본지부의 공식 초청 일정과 10개 단체와의 간담회를 비롯해, 출근길 도쿄 지하철 탑니다,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 다이인(die-in) 행동,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 기자회견 등의 시민불복종 직접행동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특사단을 맞이한 것은 일본 정부의 박경석 전장연 대표에 대한 부당한 입국 거부 통보였다. 국제 앰네스티 일본지부의 공식 초청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박경석 대표는 6시간의 억류 끝에 결국 한국으로 강제송환 되었다.

사전에 계획되고 공모된 것으로 보이는 입국 거부 조치는 전장연 운동, 나아가 저항하는 목소리를 틀어막으려는 명백한 공격이었다. 허탈하고 분노했지만, 특사단에게는 남은 임무가 있었다. 빠르게 일정을 재정비해 공항을 나섰다.

- 일본 경찰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졌다

다음날부터 출국할 때까지 특사단은 일본 경찰의 감시와 미행에 시달려야 했다. 휠체어는 어딜 가나 눈에 잘 띈다. 길거리를 지나가도, 식당에서 밥을 먹어도, 버스를 타도, 지하철을 타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살아도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 만인의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하물며 여러 명의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함께 이동하는 모습은 얼마나 생경한 광경이겠는가. 사람들은 당황하고, 애초부터 장애인을 배제하고 구축된 이 사회 시스템은 곧잘 마비된다.

사복을 입은 일본 경찰이 일본 AA 특사단을 힐끔 쳐다보며 감시하고 있다. 영상 박지민 활동가 제공

눈에 잘 띄는 우리를 미행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겠지만, ‘흔한 비장애인 아저씨’였던 일본 경찰들을 알아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영상에서처럼) 4차선 도로 건너편에서 벽에 붙어 우리를 슬쩍슬쩍 감시하는 경찰들을 어떻게 알아채겠는가.

한국에서도 담당 정보관이 있을 만큼 평생을 공권력의 ‘요주의 인물’로 감시당하며 살아온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만이 동물적 감각으로 경찰들을 구분해 냈다. ‘범죄를 저지르지도 않은 우리를 이런 식으로 미행해도 되는지’, ‘무슨 근거로 우리를 미행하는지’ 계속해서 따져 묻고 항의했지만, 아무런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나중에는 노골적으로 무리 지어 우리 뒤를 따라오며 위압감을 조성했다. 일본 정부는 도대체 뭐가 두려워서 한국에서 온 20여 명의 소규모 특사단을 그렇게 끈질기게 감시한 것일까.

일본 AA 특사단을 둘러싸며 감시하고 있는 일본 경찰들. 일본 경찰들은 지하철부터 목적지에 가는 길까지 따라왔다. 사진 김소영
많은 일본 경찰들이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의 다이인 행동을 저지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일본 정부는 우리가 무엇을 할지 알고 있었다. 특사단이 일본에 온 이유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장애인권리 약탈을 고발하고, 장애인도 감옥 같은 거주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이동하고, 노동하고, 교육받으며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 앞에서 우리의 방식대로, 즉 ‘비폭력 시민불복종 직접행동’으로 길을 막고 누워, 일본 시민들에게 연대를 호소했다. 장애인을 배제하고 굴러가는, 누군가를 끊임없이 탈락시키는 이 비장애중심주의 사회를 잠시 멈춰두고 빼앗긴 권리를 외쳤다.

그런 우리를 경찰은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수십 명의 경찰이 휠체어를 둘러싸고 강제로 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위험하니 안전을 위해 나오라”며 오히려 더 위험하게 사람을 마치 물건처럼 들어 올려 끌어냈고, 거칠게 밀치며 시민들의 시선에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둬버렸다.

주일본 대한민국 대사관 앞에서 일본 경찰들이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의 휠체어를 이규식 대표의 동의 없이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 김소영
시부야 스크램블 교차로에서 일본 경찰들이 이수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서울지부 대표의 휠체어를 거침없이 들어 올리고 있다. 사진 김소영

공권력이 ‘혼란을 야기하는’ 사람을 대하는 방식은 한국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는 전혀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우리를 빠르게 진압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평화로운 상태’를 유지할 뿐이었다.

공권력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그들이 필사적으로 우리의 목소리가 시민들한테 들리지 않게 가로막을수록 확실해지는 단 한 가지는, 우리의 행동이 그들에게 정말로 위협적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저항이 체제를 전복시킬 위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진다.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저항하는 것이다.

- “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한다”

현재 일본의 장애인운동은 급진성과 투쟁성이 거의 사라졌지만, 사실 1970년대에는 푸른잔디회(青い芝の会)라는 강렬한 저항의 역사가 있었다. 푸른잔디회는 뇌성마비 장애인 당사자들이 1957년 결성한 단체로, 장애인에 대한 시혜와 동정을 거부하며 장애인 차별과 비장애중심주의에 맞서 급진적이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이어갔다.

당시 일본 사회에서 장애인은 가족들이 주변에 꽁꽁 숨겨야 할 ‘흉’으로 여겨지는 존재였다. 하지만 푸른잔디회는 이에 굴하지 않고 거리로 나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연설하고 유인물을 배포했다. 휠체어 승차 거부에 맞서 버스를 점거하고, 목욕탕 입장 거부에 맞서 목욕탕을 점거했다.

횡단보도를 기어가며 도로 위에서 시를 쓰고, 장애인을 차별하는 기업·관공서·학교가 있으면 직접 찾아가 농성을 벌였다. 그리고 책임자를 끌어내 교섭 자리를 만들게 했다. 푸른잔디회의 이러한 활동은 장애인 이동권, 탈시설, 활동지원(자립생활) 제도 개선에 많은 영향을 줬다.

푸른잔디회의 행동 강령은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우리가 뇌성마비자라는 것을 자각한다.
2. 우리는 강렬한 자기주장을 행한다.
3. 우리는 사랑과 정의를 부정한다.
4. 우리는 문제 해결의 길을 선택하지 않는다.
5. 우리는 비장애인 문명을 부정한다.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세상을 부정하며, 온 몸을 던져 비참하고 억압적인 현실을 폭로했던 푸른잔디회의 투쟁. 우리는 그들의 치열했던 투쟁이 남긴 저항의 역사 속에 있다.

특사단이 ‘굳이’ 일본까지 가서 우리의 방식대로 투쟁하고, 일본 시민들에게 연대를 호소하는 이유는 단순히 한국 정부나 일본 정부 같은 개별적인 국가권력이 아니라, 장애인을 배제·차별·억압하는 거대한 체제, 바로 비장애중심주의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국경을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어 더욱 광활하고 단단한 연대의 전선을 구축하려 한다. 그리고 그 연대를 바탕으로 유구히 지속된 불평등한 관계를 재정립하고 모든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으로 나아갈 것이다.

 

필자 소개

박지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2024 일본 AA 특사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