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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비마이너X다이애나랩 기획연재] 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만약 당신의 가게에 이주민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온다면?

2020. 11. 02 by 정혜실

- 피부색, 생김새, 언어가 다르면 이주민?

최근 8월 한국과 일본 그리고 홍콩 등 동아시아의 이주 인권 관련 활동가들과 온라인으로 국제 화상 토론회인 웨비나(Web-Seminar)를 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웨비나의 주제는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본 동아시아에서의 제도적 인종주의’였습니다. 이때 홍콩 측 발표 자료를 보고 놀란 일이 있습니다. 한 핸드폰을 파는 가게에서 두 남성이 대놓고 “대륙에서 온 중국인들을 출입금지한다!”고 적은 팻말을 들고 선 장면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당당히 SNS에 올리기까지 했습니다. 이 장면은 한국의 중국동포들 상황과 오버랩되었습니다. 우한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되었다는 언론 보도 이후 중국동포들을 혐오하는 정서가 일었습니다. 그에 반응하듯 안산시 외국인주민센터는 평소 중국 동포분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도 나누고 놀이도 하던 야외 광장을 출입금지하였고, 중국식당들이 즐비한 이곳에 외출을 삼가라는 요구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온 이주민들 또한 사회적인 의심의 눈초리로부터 드러나고 싶어하지 않아서 스스로 외출을 삼갔고, 실제로 거리는 텅텅 비었습니다. 그 초기의 반응 이후 현재까지 중국동포가 문제가 된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건에서 볼 수 있는 중요한 관점은 ‘이주민의 정의가 무엇인가’하는 점입니다. 홍콩이나 한국에서 중국동포는 피부색이나 생김새가 문제는 아닙니다. 그보다 그들을 구분하기 쉬운 것은 언어일 것입니다. 같은 중국어나 한국어라도 발음의 차이에서 드러나는 출신 지역이 문제인 것입니다. 이는 이주민에 대한 국제이주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IOM)의 정의를 떠오르게 합니다. “이주민이란 자신이 태어난 곳을 한 번이라도 떠나 기간과 상관없이, 자발적이거나 비자발적으로 국내나 국경을 이동한 사람들”이라는 정의 말입니다. 이러한 정의는 우리 모두 이주민이 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확인해줍니다. 그래서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행위임을 알려줍니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말이 적합하게 잘 적용되는 곳이 한국에서는 제주도였습니다. 저는 올해 제주 예멘 난민에 관한 취재차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주관의 다문화 콘텐츠 제작을 위한 포커스 그룹 인터뷰(Focusing Group Interview, FGI)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이미 국내외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주도민들은 소위 비하적 표현으로 ‘육지 것’이라 불리는 ‘국내 이주민’과의 갈등을 다문화라는 콘텐츠 안에서 어떻게 해결해낼 것인가 고민 중이었습니다. 비싼 땅을 구매하는 중국인이라든지 종교가 다른 무슬림 남성인 제주 예멘 난민 등 이주민에 대한 반감을 해소하고 어떻게 제주도민으로 공존할 것인가는 중요한 의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이주민에 대한 정의를 두고 길게 이야기한 것은 이주민에 대한 우리의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단지 피부색이나 생김새로부터만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2018년 콩고에서 에볼라가 창궐한 후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에서 ‘흑인 출입금지’ 팻말을 걸었다거나, 그에 앞서 2011년 우즈베키스탄 여성이 사우나를 찾자 “외국인은 물 더럽히니 출입 안 돼요”라는 말을 들은 사례 등 우리는 뉴스 기사를 통해 여러 사례들을 익히 보아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기사화되지 못한 인종차별의 사례는 수없이 많습니다.

2014년 안산의 원곡동에서 카페 ‘작당’을 운영한 적 있다. 야트막한 카페 울타리 위에 큰 글씨로 ‘작당’이영어로 적혀 있고 그 너머 야외 카페 테라스에 손님이 앉아 있다. ⓒ정혜실
2014년 안산의 원곡동에서 카페 ‘작당’을 운영한 적 있다. 야트막한 카페 울타리 위에 큰 글씨로 ‘작당’이영어로 적혀 있고 그 너머 야외 카페 테라스에 손님이 앉아 있다. ⓒ정혜실

- 만약 당신의 가게에 이주민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러 온다면?

가깝게는 2019년 작년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이주민방송이 함께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결혼이민자, 난민, 이주노동자, 중국동포,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유학생 등 이주민들은 특히 필수품들을 사기 위해 자주 가야 하는 가게에서 무시를 당한 경험이 상대적으로 많았습니다. 마트 같은 곳에 가면 상대를 해주지 않는다거나, 물건에 대해서 물어봐도 답을 안 해주기도 하고, 신발이나 옷을 사기 위해서 가게에 들어가면 비싸서 못 산다는 투로 무시하는 말을 듣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제가 이주민 인권 관련 활동을 20년 동안 해오면서 처음으로 들었던 콩고 난민 출신 한 여성의 다음 이야기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 그 여성은 슈퍼에 들어가면 가게 주인이 자신을 보고 “아휴 깜짝이야”하면서 놀란다거나, 지하철을 타면 할머니들이 자신의 피부를 만지는 행위 같은 것이 너무나 상처라고 했습니다.

당시에 우리는 ‘낯섦’이란 말 한마디로 변명하고는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이주민이 전체인구의 4%인 2백만 명이 넘는 상황이며, 이 중 50% 이상이 서울 경기권에, 다른 지역에서도 대도시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기에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이주배경 아동청소년이 성장해 카페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 또한 종종 보게 됩니다. 그래서 ‘차별 없는 가게’라고 할 때 저는 단지 고객으로서 이주민만이 아니라,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주민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고객으로서 다른 고객과 다름없이 편하고 쉽고 안전하게 머물다 가는 공간이 되기를 바람과 동시에, 평등한 동료로서 일할 수 있고, 제대로 된 임금을 받을 수 있는 일터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2018년 도쿄의 릿쿄 대학에서 한일 세미나가 있어서 갔을 때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서남아시아 출신으로 보이는 청년이 카운터에서 일본어를 못하는 저를 친절하게 대응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일상적으로 만나게 되는 날이 곧 오겠지요. 편의점에서 일할 청년들을 더이상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일본처럼 온다면 말입니다.

아마 ‘차별 없는 가게’를 꿈꾸시는 분들은 이미 반차별의 감수성을 충분히 가진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될 위험성이 있기에 나의 손님으로 찾아오는, 또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주민을 어떻게 대할지는 고민으로 남을 것입니다. 너무 잘해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과도한 친절을 베풀어서 오히려 불편하게 만들 우려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지금 이 태도가 나라면 어떤 기분일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제가 이주민 인권 관련 활동을 오래해 오십이 넘다 보니, 안산행 지하철 등에서 이주민들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자꾸 말이 걸고 싶어집니다. 궁금한 것도 많으니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저를 제지시킵니다. 그들이 다가와서 묻지도 않았는데, 저의 쓸데없는 오지랖이 그들의 사적인 부분을 침해하진 않는지 말입니다. 그저 우리는 지하철을 함께 타고 가는 모르는 타인들인데 말입니다. 제가 다른 한국인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그들에게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니까요.

- 이주민에게 ‘차별 없는 가게’란 ‘특별히 다르게 대하지 않는 곳’

저는 2014년 안산의 원곡동에서 작은 카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베트남에서 온 젊은 청년들이 많이 찾아왔습니다. 베트남 출신 유학생을 아르바이트로 고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트남 커피와 음료를 마시기 위해 오는 그들은 데이트 중이거나 모임 중이거나 그랬습니다. 그때 저는 오지랖을 펴지 않고도 손님들과 친해질 수 있었습니다. 먼저 다가오니 말입니다. 때로는 그들의 연애가 삐걱거리는 것을 보기도 하고, 축하할 일이 많아서 한껏 차려입은 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다 보니 이주민 당사자 활동가들이 찾아오기도 했는데, 먹는 문화가 비슷한 캄보디아 청년 활동가가 자주 와서 저와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에서 제가 알게 된 것은, 저 같은 인권 활동가는 매번 문제가 생겨 피해자인 이주민만을 만났기 때문에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제가 미처 보지 못한 삶이 있는 이주노동자 청년, 유학생 청년, 결혼이민 여성들을 보면서 단지 노동자, 학생, 아내나 엄마, 며느리로서의 사람들이 아니라, 여러 모습의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그들을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제도적인 체류자격에 따라 이주민들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인 인간 그 사람으로서 이주민들을 보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주민에게 ‘차별 없는 가게’란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특별히 다르게 대하지 않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평범한 한국인들이 이용하는 방식처럼, 주문한 것을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곳이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문하는 일이 언어 때문에 힘들 수는 있어도 태도 때문에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별한 표시를 해두지 않아도 될 듯 싶습니다. 다만 캠페인 차원과 가게 주인의 의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이주민을 위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결국 이러한 행동은 주류사회의 변화를 위해 하는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아살람 레스토랑 음식. 튀김류, 스프류, 샐러드와 얇게 구운 난 등 수많은 접시 위에 음식이 다채롭게 담겨 있다. ⓒ정혜실
아살람 레스토랑 음식. 튀김류, 스프류, 샐러드와 얇게 구운 난 등 수많은 접시 위에 음식이 다채롭게 담겨 있다. ⓒ정혜실

- 제주 예멘 난민 반대로 뜨거웠던 제주도에 스며든 ‘아살람’

제주에는 평화라는 이름을 가진 ‘아살람(Asalam)’이라는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제주도에 예멘 난민으로 도착한 사람들이 잘 곳이 없어서 노숙할 처지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여성이 자신의 국악 연습실인 스튜디오의 문을 열어준 인연으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자신은 문을 열어주었을 뿐이라는 아살람의 주인인 한국 여성은 예멘인 쉐프가 바로 남편입니다. 문을 열어준 그곳의 예멘 난민들이 아랍 음식점이 필요하다는 말에 처음에 문을 연 ‘와르다(Warda)’라는 레스토랑에 예멘 친구들의 추천으로 온 쉐프가 지금의 남편이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일터에서 만나 사랑하게 되었고, 현재의 레스토랑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무슬림들을 위한 기도실을 갖춘 아살람 레스토랑은, 처음과 달리 제주에 여행 온 많은 한국인들이 북적거리고 있으며, 예멘만이 아니라 파키스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미국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이주민들이 먹고 즐기는 곳이 되었습니다. 정말 ‘평화’가 그곳에 어울리는 이름이었습니다. 그렇게 제주 예멘 난민 반대로 뜨겁던 갈등의 현장에서 벗어나 누구는 자기가 가진 공간을 그저 열어줌으로써 수많은 예멘인들을 만났고, 그들과 함께 지내면서 너무나 행복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지금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게 된 시작이라고 합니다.

낯섦을 두려움으로 인식할 때 오히려 차별이 일어나지만, 만나서 그 낯섦을 넘어 소통하고 교류할 때 그곳에는 사랑이 피어나고 평화가 찾아옵니다. 그렇다고 모든 이주민은 착하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갈등조차도 소통 가운데 있다면 서로 타협하고 협의하고 연대할 여지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피부색과 생김새 또는 언어, 서툰 한국어, 익숙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등장할지라도 우리가 그 낯섦을 넘어 한 발 더 다가가려 할 때 두려움보다 평화가 우리에게 찾아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의 가게를 활짝 열어주세요!

아살람 레스토랑 기도실. 작은 방 안에 이슬람 기도용 양탄자가 세 개 이상 깔려 있다. ⓒ정혜실
아살람 레스토랑 기도실. 작은 방 안에 이슬람 기도용 양탄자가 세 개 이상 깔려 있다. ⓒ정혜실

필자 소개

정혜실 이주민방송MWTV 대표,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현장의 경험과 이론적 기반을 바탕으로 이주민 인권 옹호 활동과 그에 대한 기록 남기기, 담론 형성에 기여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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