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립적인 삶을 살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대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아마 상당수 비장애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학교에 가고,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아갈 것 같다. 하지만 장애인이 경험하는 자립의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2020년 이루어진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최종학력 중학교 졸업 이하: 55.35% (무학: 36.02%/ 초졸: 8.99%/ 중졸: 10.34%)- 근로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 16.2% (이 중 66.89%의 장애인
“시설에서 나는 교육을 받기는 받았는데 얻은 게 하나도 없다.” (최동운)1)“탈시설을 하고부터는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물론 사람들과 다투고 열 받는 일도 생기지만 적어도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지 않습니다.” (이상근)2)“인간은 시민으로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으로 만들어진다.” (스피노자)3)사람이 아닌 시민은 없다. 하지만 시민이 아닌 사람은 있다. 인간은 공동체에 속함으로써 시민이 된다. ‘장애인도 시민권 열차에 탑승시켜 주십시오’라는 외침은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한다. 누구를 낳
지난 2월 5일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이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설립 및 운영 지원 등에 관한 조례’ 폐지안을 발의했다. 이에 노동, 사회단체가 모여 ‘서울시 사회서비스원 폐지 저지와 공공돌봄 확충을 위한 공대위’를 발족해 조례 폐지안에 대한 반대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서울시의회는 4월 19일부터 열리는 임시 회기에서 이 안건을 다룰 예정이다.폐지 조례안을 발의한 강석주 서울시의원은 발의 배경으로, 사회서비스원이 공공성을 담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사회서비스원은 설립된 지 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낯설다. 그만
- 전쟝연 행동대장의 관상‘전쟝연 행동대장’. 동료가 보내준 링크를 타고 들어가 본 게시물의 제목이었다. 게시물에는 사진 두 장이 있었다. 댓글을 기반으로 사진 속 인물을 묘사해 보자면 “눈빛 보소 ㅋㅋ”의 강렬한 눈빛, “건장한 젊은이가 왜 저런 길을…ㅉ”을 부르는 체격, “경호 인력 쓴 거?”라고 의심할 정도의 카리스마, “관상 ㄷㄷ”을 부르는 압도적인 관상을 가진 사진 속 인물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 였다.장판(장애 운동판)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느닷없이 행동대장이라는 입지전적 인물로 등극한 것도 놀라운
『변신』이 탈주(fuite)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던가요? 네, 『변신』은 회사 생활과 부양가족의 세계로부터 탈주하려는 욕망으로 인해 몸이 변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는 어머니의 애정에 이끌려 인간적 과거에 미련을 갖게 되고, 그 미련에 가로막혀 동물적 삶의 탐색을 중단하고 말죠. 이후 그는 자기 방 안에 봉쇄되어 아버지의 심판과 가족들의 방치 속에서 죽어 갑니다.- 학술원에 드리는 변신의 보고‘변신’이 ‘탈주’의 방법임을 좀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소설이 있습니다. 1917년 오스트리아 조간신문에 게재된 「학술원에 드리는
- 520번의 금요일올해 4월은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엄숙히 지키는 모임들로 가득하다. 그 와중에 세월호참사작가기록단은 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의 지난 10년간 사연을 구술기록을 통해 담아낸 책 『520번의 금요일』을 펴냈다. 동시에 한때 사회가 ‘아이들’이라고 불렀으나 어느덧 청년이 된 세월호 생존자와 형제자매, 그리고 그들과 함께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도 펴냈다.두 책을 읽으며, 10주기를 기념하는 여러 모임에 참여하며, 520번의 금요일이 지났다는 사실 앞에서 탄식
체감의 크기가 나날이 커지는 기후위기의 현실을 반영하듯 22대 총선을 앞두고 거대 보수 정당들도 기후위기 관련 공약을 제출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기후위기 앞에 절박함을 호소했던 것에 비해 기후 의제가 주요 정치 현안으로 다루어지지 못해온 현실을 고려하면 이번 총선에서 기후를 둘러싼 정치의 풍경이 사뭇 달라진 것 같다. 과연 22대 국회는 ‘기후정치’를 담는 공간이 될 수 있을까?- ‘기후정치’의 (재) 등장선거 시기마다 기후 의제를 정치의 문제로 만들기 위한 시도가 있었다. 2020년 21대 총선 당시 ‘기후위기비상행동’으로 결
[편집자 주] 본 연재는 질병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를 질병권(잘 아플 권리) 운동과 연결 지어 살펴본다. 질병과 아픈 몸은 우리 사회에서 무엇이고 무엇일 수 있는지 질문하는 동시에, 누구나 아플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질병’과 변혁적 사회운동의 불/가능성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더 나은 운동’은 무엇일까?“이제 운동은 접은 거야?”1990년대 긴 학생운동을 마치고, 2001년 여성운동을 하기 위해 여성단체에서 상근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여성단체에서 여성 노동 관련 활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을 들은 일부 ‘운동권 선배’들은
한국장애포럼은 국내외 장애계와의 지속적인 협력과 연대를 통하여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등의 이행을 촉진하고 장애인의 권리 실현과 통합적인 사회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장애단체들의 연합조직입니다. 한국장애포럼은 해외 장애계 뉴스 중 한국 장애계와 공유하고픈 뉴스를 뽑아 소개합니다.1. 캐나다 시설수용 피해생존자들의 탈시설 투쟁 담은 다큐멘터리 개봉캐나다 피플퍼스트(People First of Canada)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이 네 개의 벽(These Four Walls)」이 최초로 공개되었습니다. 영화는 매니토바개발센터(Mani
‘지금, 어디에도 없는 성평등’‘여성 주권자가 말한다, 2024 총선에 없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성’ 혹은 ‘성평등’이 실종됐다는 진단과 토로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성차별·성폭력으로 얼룩진 후보자 공천 과정을 보며 분노와 회의감에 빠지지 않기란 쉽지 않다. 지난 2년은 윤석열 정부가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상징적인 일곱 글자로 성평등에 대한 사회적 요구를 무력화시켜 온 시기다.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도 ‘인구부 신설’을 가장 앞세워 또다시 여성가족부 폐지를 예고했지만, 이에 맞서 성평등 가치를 전면화하거나 여성 대중을
『변신』의 초안이라 부를 수 있는 산문이 있습니다. 카프카의 산문집 『관찰』(1915)에 실린 「갑작스러운 산책」은 가족 관계로부터 벗어나려는 욕망의 일상성을 보여줍니다. “실내복을 입고 저녁 식사 후 책상에 불을 켜고 앉아 습관처럼 이런 일이나 저런 놀이”를 시작하는 어느 날입니다. “날씨는 음울해서 집에 머물러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고”, “어제는 꽤 오랫동안 책상에 머물러 있어서 외출한다는 것이 당연히 놀라움을 불러일으키고”, “층계도 어두워지고 대문도 잠겨 있는”, 여러모로 바깥에 나가기 힘든 분위기입니다. “그럼에도 불
- 사라진 권리중심 공공일자리내게 지난 2월 27일은 숨 가쁜 노동의 날이었다. 새벽 5시 30분 열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해 일을 본 후, 택시를 타고 울산으로 이동해 또 일을 보고, 다음 날 일정을 위해 다시 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이동해서 저녁 6시 50분쯤 역 앞의 한 모텔에 겨우 짐을 풀었다. 숨 쉴 틈도 없이 노트북을 열고 목록에 뜨는 와이파이 중 하나를 잡아 줌을 연결했다. 탈시설정책위원회 2월 연속 세미나 2부인 ‘탈시설 장애인의 노동과 사회통합’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50명 가까운 사람들이 줌으로 모여 이슬 교수님의
[필자의 말] 노들장애인야학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활동 속에서 마주친 시적인 순간들. 눈부시게 뻐근한 순간들. 이례적으로 아름답고 잔인한 순간들. 사안과 의제를 따라 순간 나타났다가, 순간 사라지는 활동과 투쟁들 사이에서 발견한 시,의적절한 순간들이 두고두고 내게 힘을 주었다. 차별과 혐오에 맞선 자들이 사랑할 만한 세계를 발견하고자 할 때, 살아갈 만한 세계를 발명하려 할 때, 한 줄 쓰임이 있었으면 한다.- 철창을 끄는 무리들심장이 메슥거릴 만큼 뛰었다. 한여름 광화문 거리를 철창을 끌며 뛰었다. “시간 없어, 문 닫을 시간
- 강의를 듣는 건 나만의 취미활동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연초만 되면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한 해 계획 세우기에 몰두한다. 이미 사무실 일이 차고 넘치는 상황인데도 새해만 되면 무언가 새로운 걸 해 보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굳어만 가는 몸을 위해 운동도 하고 싶고, 그림과 악기를 다루는 취미생활도 해 보고 싶고, 뭔가 학문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마치 평소 굳게 닫혀 있던 욕망의 항아리가 들썩거리다 뻥 터져 나올 듯, 하고 싶은 게 갑자기 이것저것 마구 떠오르는 것이다. 비록 작심삼일도 못 가는 욕망이지만.이럴 땐
[편집자 주] 서울시는 지난 2월 26일 ‘장애인 자립지원 절차 개선안’을 발표했습니다. 이 안에 따르면, 장애인거주시설에 사는 장애인이 탈시설을 희망하는 경우, ①의료진의 자립역량 조사 ②자립지원위원회의 퇴소 검토(거주시설+전문가) ③자립체험(5년간 자립 준비) ④자립역량 재심사(1년 단위)의 단계를 거쳐야만 합니다. 퇴소 후 모니터링 결과,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부적응”한다고 판단되면 시설에 재입소 될 수 있습니다. 즉, 탈시설 절차가 까다로워졌을 뿐만 아니라 탈시설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의 참여는 배제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한국장애포럼은 국내외 장애계와의 지속적인 협력과 연대를 통하여 유엔장애인권리협약 등의 이행을 촉진하고 장애인의 권리 실현과 통합적인 사회 조성을 목적으로 하는 한국장애단체들의 연합조직입니다. 한국장애포럼은 해외 장애계 뉴스 중 한국 장애계와 공유하고픈 뉴스를 뽑아 소개합니다.1. ‘토파즈 소셜케어홈 사건’ 1심 법원, 헝가리 당국의 장애인 권리침해 책임 인정지난 2월 27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지방법원은 장애인 거주시설 ‘토파즈 소셜케어홈(Topház Social Care Home)’이 시설 거주인 220명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한
카프카는 유대인이었고, 결혼을 기피한 독신자였으며, 채식주의자였습니다. 오늘날 소수자 범주에 속하는 이런 객관성뿐만 아니라 주관성에 있어서, 즉 자신을 언제 어디서나 주류에 끼지 못하는 존재로 여겼다는 점에서 그는 영원한 소수자였습니다.그의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Hermann Kafka, 1852~1931)는 주류의 삶을 꿈꾸며 시골의 유대공동체(게토)를 떠나 대도시 프라하로 이주했습니다. 거기서 장남 프란츠 카프카를 낳았지요. 프라하는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속한 보헤미아(오늘날의 체코)의 수도로 체코 민족이 다수였지만,
최근 국제 인권 활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씨도우’가 화두다. “그 단체에서는 씨도우 준비하세요?” “요즘 씨도우 분위기는 어떻대요?” “이번 씨도우 정말 중요할 텐데, 투쟁입니다!” 장안의 화제 씨도우, 대체 뭘까?‘씨도우’는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Convention on the Elimination of All Forms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 영문명의 두문자 약어다. 한국은 이 협약에 1984년 가입했고, 올해 5월 9차 심의를 앞두고 있다. 여성 의제는 다양한 인권단체에서
한 시민분이 내리면서 저희를 향해 저주를 퍼부으시더군요. “지옥에나 떨어져라!”라고요. 네. 그러지 않아도 저는 이미 지옥에서 살아왔습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마저도 누리지 못한 채 하루하루 버티듯이 살아내야만 하는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수지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김동예 ( 「[투쟁결의문] 이 세상이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비마이너, 2022. 6. 15.)신중했어야 했다. 특히 사진을 더 잘 골랐어야 했다. “웃는 사진은 없냐?”고 선배가 물어왔을 때만 하더라도, 그냥 졸업식
더불어민주당과 진보당, 새진보연합은 22대 총선용 비례연합정당인 ‘민주개혁진보연합(가칭)’을 3월 3일 창당하기로 했다. 이에 참여할 것을 요청받은 녹색정의당은 당내 논란 끝에 ‘비례연합정당’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윤석열 정권 심판’을 위해 지역구 선거연대는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4년 전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하는 꼼수 정치의 상징이었던 ‘위성정당’이 이번 총선에서는 ‘반윤석열 연대’를 이룰 ‘연합정치’의 빅텐트로 돌변한 것이다. 특히 ‘위성정당’ 비판에 앞장섰던 시민운동 세력이 ‘연합정치시민회의’로 결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