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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비마이너X다이애나랩 기획연재] 차별 없는 가게의 조건

청소년에게 차별 없는 가게란?

2020. 11. 30 by 치이즈
노래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실. 청소년실은 보통 카운터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있다. ⓒ치이즈
노래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청소년실. 청소년실은 보통 카운터에서 가장 가까운 쪽에 있다. ⓒ치이즈

카페는 내가 가장 많이 가는 곳 중 하나다. 어떤 이들은 카페가 이렇게 많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 요즘 20~30대들이 거주 빈곤에 시달리면서 친구를 초대해 대화 나눌 공간이나 작업 공간이 부족하여 카페가 그 공간을 대신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간이 지금보다 더 있던 것은 아니지만, 청소년 시절 나는 사실 카페에 잘 가지 않았다. 지역이 워낙 시골이라 주변에 카페가 별로 없기도 했지만, 사실 돈이 없었다. 중학생 때 일주일에 용돈을 2만 원쯤 받았는데, 한 잔에 4천 원씩 하는 음료를 마시는 건 큰 사치였다. 친구들과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지역 도서관의 휴게실에 가거나, 그마저 어려우면 학교에서 집까지 꽤 먼 거리를 걸어오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가끔씩 카페에 가면 생과일주스나 아이스크림 같은 메뉴를 시켰다. 아메리카노는 어른들의 음료 같았고, 주문했을 때 ‘나이도 어린데 커피를 시켜?’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학교 근처에서 고카페인 음료를 판매할 수 없도록 규제를 실시한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 사회가 나의 건강을 염려하고 있다는 마음보다는, 주문할 수 없는 음료가 하나 더 늘어난다는 의미로 와닿았다. 교복을 입으면 어딜 가든 쉽게 눈에 띄었고, 모두가 나의 나이와 학교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버릇없고 가게 분위기 망치는 급식들’ 같은 일화가 떠돌았고, 가게 공간을 많이 차지하거나 큰 소리로 떠들면 민폐라고 손가락질당할 것 같았다. ‘미성숙한 요즘 애들’에 대한 혐오를 모르지 않았기에 행동 하나하나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큰 프랜차이즈 카페나 가게를 가면 카운터 직원이 대부분 젊은 아르바이트 노동자거나 또는 대면할 필요 없는 키오스크가 있어 나은 편이지만, 중년인 사장이 혼자 운영하는 곳들은 들어갈 때마다 긴장됐다. 반말을 하는 건 불쾌해도 그렇다 쳤지만, 주로 혼자 가는 나에게 말을 걸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일방적인 관심과 친근함은 내가 어리고 만만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언젠가는 평일 낮에 사복을 입고 서점에 갔는데, 책을 둘러보는 나에게 서점 주인이 슬며시 다가와 “학생…… 맞지?”라며 물었다. 나이는 어려 보이는데 왜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에 여기에 있느냐, 의심 또는 질책이 느껴졌다. 굳이 나이를 확인해야 했던 이유는 나이에 따라 사람을 다르게 대우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학생’인지, ‘아가씨’인지, 또는 ‘애 엄마’인지에 따라 나를 보는 시선은 달라졌을 것이다.

청소년이 거부당하고 배제될 때

청소년이 아닌 지금도 청소년 지인들과 어울리다 보면 불편한 점들이 생긴다. 노래방에 가면 보통 ‘청소년실’을 이용하도록 배정받는데, 다른 방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서 처음엔 왜 이곳이 청소년실인지 몰랐다. 그런데 밤 10시가 되자 노래방 주인이 아무 기척 없이 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청소년실’이라 적힌 곳은 청소년들을 위한 공간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처럼 무례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허락된 곳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밤 10시 이후에는 모두 나가야 한다고 했고, 우리는 예약된 곡 수가 얼마나 남았는지와 상관없이 내쫓길 수밖에 없었다. 그때, ‘노 키즈 존’이라는 이유로 문전박대당하는 어린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지침이라는 이유로, 또는 법이 그렇다는 이유로 가게 점주나 직원들은 아무렇지 않게 어린이·청소년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거나 이미 들어와 있는 사람을 내보낸다. 거부당하고, 내쫓기는 어린이·청소년이 느낄 박탈감이나 무력감은 고려되지 않는다.

집 앞 카페에 붙어 있는 각종 금지를 표기한 아이콘. 금연, 동물 동반 금지 아이콘과 함께 ‘노 키즈(아이 출입 금지)’ 아이콘이 붙어 있다. ⓒ치이즈
집 앞 카페에 붙어 있는 각종 금지를 표기한 아이콘. 금연, 동물 동반 금지 아이콘과 함께 ‘노 키즈(아이 출입 금지)’ 아이콘이 붙어 있다. ⓒ치이즈

그런 불쾌감과 무력감을 옆에서 함께 느꼈기 때문에, 청소년이 거부당하는 자리에 같이 연대해서 저항하게 된다. 작년 서울 퀴어문화축제 후원 주점에서는 술을 판매하기 때문에 청소년의 경우 친권자(보호자) 혹은 친권자 대리인을 동반하는 경우에만 참여가 가능했다.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오히려 억압받는 청소년 퀴어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부모와 함께 퀴어문화축제 후원행사에 올 수 있는 청소년은 극히 드물 것이다. 주점에 청소년이 출입할 수 없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통상적인 법규라 하더라도, 자신의 성 정체성을 가족에게 드러낼 수 없는 청소년 퀴어들의 현실이 고려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보호와 차별, 그 모호한 경계

청소년이 밤 10시 이후 노래방에 가지 못하고, 주점에 가지 못하는 근거가 되는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약물 또는 매체를 규제함으로써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하게 함을 목표로 한다고 명시한다. 술과 같은 유해한 약물은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의 신체에 더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고 여겨진다.

PC방 앞 ‘22시 이후 미성년자 출입금지’ 표지판. ‘19금’이라는 표시와 함께 22시 이후 신분증 검사를 한다는 말이 쓰여 있다. ⓒ치이즈
PC방 앞 ‘22시 이후 미성년자 출입금지’ 표지판. ‘19금’이라는 표시와 함께 22시 이후 신분증 검사를 한다는 말이 쓰여 있다. ⓒ치이즈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늘며 2차 성징을 보이는 등 ‘성장’이라고 표현되는 청소년기 특정한 몸의 변화 양상은 청년기 또는 그 이후에도 일어나는 신체 변화에 비해 유난히 크게 조명되는 경향이 있다. 모든 사람의 몸은 나이에 상관없이 주변의 영향에 의해 변화를 겪음에도 불구하고, 청소년기의 몸은 특히 더 유연하고 나긋나긋한 이미지로 묘사되며, 모양이 변형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된다. 청소년기의 뇌를 스펀지로 비유하며 외부의 영향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하는 것도 흔히 볼 수 있다.

유독 청소년기의 변화 가능성이 강조되는 것은 청소년의 몸과 정신을 비청소년의 것으로 도달하는 과정에 놓인 미완성으로 보는 인식에 기반한다. 비청소년에 이르기까지 청소년의 몸과 정신을 ‘건전하게’ 보전해야 한다는 논리는 청소년이 쾌락을 누릴 권리, 정치적으로 행동할 권리, 다양한 정보에 접근할 권리 등을 제한하는 근거가 되어왔다. 설령 국가가 청소년의 건강한 성장을 지원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해도 지금과 같이 ‘건전하지 못한’ 행위를 하는 청소년들을 처벌하는 방식 외에 다른 방법들을 더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신분증과 같이 신분의 증명을 요구하는 것은 그만큼 공동체 안에서 청소년의 신분이 위태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청소년에게는 허용되지만 청소년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권리의 차이는 우리가 동등하게 함께하는 시민이라는 생각을 가로막는다.

청소년을 환영하는 가게는?

청소년을 환영하는 가게를 구상하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청소년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을 이해해야 한다.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금기와 나이주의의 문제는 실제로 합법적인 차별이거나 사회의 상식과 관습처럼 굳어진 것들이 많아 문제를 제기하기 쉽지 않다. 그러나 그만큼 청소년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문제이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겪는 문제이다. 조금 더 삐딱하고, 조금 더 도전적인 ‘차별 없는 가게’를 기대한다.

필자 소개

치이즈.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 합법적인 청소년 차별로 가득한 세상에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지 늘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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