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능력주의와 아빌리파이
새로운 세기를 눈앞에 둔 1999년, 21세기 첫 20년간 전례 없는 판매고를 올린 새로운 정신과 약물이 등장한다.
이전부터도 할로페리돌(Haloperidol)이나 클로르프로마진(Chlorpromazine)과 같은 전통적 약제가 정신과 치료에 사용되어 왔지만, 이는 ‘추체외로증상(EPS)’이라 불리는 다양한 부작용을 초래하고는 하였다. 약물을 복용한 많은 수의 사람들이 팔다리가 뻣뻣해지거나 발음이 어눌해지고, 때로는 월경주기의 이상이 초래되고는 하였던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조현병의 음성증상(negative symptom)이라 불리는 인지기능 저하 등의 증상이 더욱 악화된다는 사실이었다. 이러한 부작용을 극복하기 위해 1990년대 이른바 ‘2세대 비전형 항정신병약물’들이 발명되었으나 여전히 다양한 부작용이 남아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신약’은 달랐다. 신약이 개발되던 1990년대 말에는 이미 뇌 속의 특정 도파민 수용체(D2 receptor)를 막는 것이 조현병 치료제의 효과와 직결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위와 같은 부작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이른바 ‘도파민 가설’이 널리 수용되고 있었다. 즉, 약물이 너무 심하게 도파민 수용체를 차단하게 됨으로써 약물 효과와 함께 부작용이 동반된다는 것이다. 이에 착안한 제약회사의 과학자들은 도파민 수용체를 부분적으로만 차단하는 신약 프로젝트에 착수하였다.
수년의 연구 끝에, 조현병의 환청이나 망상과 같은 증상을 조절하면서도 부작용은 대폭 줄인 획기적인 신약, ‘아빌리파이(Abilify)’가 개발되었다. ‘아빌리파이(Abilify)’라는 이름은, ‘능력’을 의미하는 ‘어빌리티(ability)’에 동사형의 어미(-y)를 붙여 만들어낸 것이었다. 복용자에게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겠다(Abilify)’는 그 자신만만한 이름처럼, 이 약물이 정신약리학 역사에서 지니는 위상은 대단하다. 이후 아빌리파이는 ‘3세대 항정신병 약제’라는 새로운 카테고리로 분류되기에 이른다.
21세기의 첫 20년간, 조현병, 우울증, 조울증, 뚜렛증후군, 강박증 등을 앓고 있는 수많은 정신장애 당사자들이 ‘능력’을 보장해주겠다는 이름의 이 신약을 복용하게 된다. 아빌리파이라는 이름의 약물을 매일 정해진 시간에 복용한다는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정신장애 당사자들에게 ‘능력주의’의 신화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일종의 의례였을지도 모른다. 능력주의(ableism) 사회를 노골적으로 대변하는 그 이름처럼, 정신장애인(dis-abled)도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추어 능력을 개발(Abilify)해야만 했다.
정신병 약제의 이름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능력에 대한 집착은, 반대로 정신장애란 어딘가 모자란, 능력 없는(dis-ability) 상태라는 것을 암암리에 함축하고 있었다. 즉, 장애인은 어떻게든 ‘완전’하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야만 하는 존재였으며, 그 능력회복의 과정을 함께하겠다는 신념이 응축되어 아빌리파이(Abilify)라는 이름으로 표출되었다.
- 능력있게 된 장애인? (Abilify-ed dis-abled?)
한편, 아빌리파이가 임상시험에서 보인 효과 또한 대단했다. 1,238명의 급성 재발 조현병 환자군에서 시행한 이중맹검 무작위 임상연구에서, 위약 군과 비교하였을 때에 아빌리파이는 뚜렷한 양성, 음성 증상 모두의 호전을 보였으며 이전의 약제들에서 보였던 여러 부작용은 상대적으로 매우 적었다.1) 즉, 큰 부작용 없이도 당사자가 경험했던 환청과 망상의 많은 부분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는 ‘환청과 망상의 세계’에서 이른바 ‘정상성의 세계로’, ‘병식 없는, 관리되지 않은 환자’에서 ‘병식 있는, 잘 관리된 환자’로 변화하는 과정이며, 나아가 ‘능력 없음(dis-ability)의 상태’에서 ‘능력 있는(Abilify-ed)’ 상태로 바뀌는 것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아빌리파이가 추구했던 ‘치료’의 과정이었다. 이처럼 아빌리파이라는 화학물질이 지니고 있던 여러 신경전달물질 수용체와의 상호작용 능력은 실로 절묘한 것이었고, ‘치료’의 과정 또한 아빌리파이를 통해 원활히 진행될 것으로 보였다.
- 약물화된 나, 약물화되지 않은 나 : 매드프라이드 운동과 아빌리파이의 충돌
아빌리파이가 출시되기 6년 전인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정신과 생존자 프라이드 데이(Psychiatric Survivor Pride day)’라는 행사가 열렸다. “인종, 젠더,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며 거대한 진전을 이루었던” 20세기의 민권 운동을 계승하며, 정신장애 당사자들도 “광기(madness)의 경험과 그것을 둘러싼 언어들”을 되찾겠다는 결의를 다졌다.2) 이 행사는 결국 2002년 매드프라이드(Mad Pride)로 이름을 바꾸었고, 2019년에는 한국에서도 첫 행사가 열리기에 이른다.
3세대 항정신병 신약 아빌리파이의 출시와 매드프라이드 운동이 새로운 세기가 열리는 같은 시기에 발생했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아빌리파이는 여러 신경전달물질 리셉터와 상호작용하며, ‘병식’이 있는, ‘비정신장애인의 세계’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다른 나’를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신약이었다. 그러나 그 신약이 전제하고 있는 ‘다른 나’의 ‘원래의 나’에 대한 우월성을 거부하는 운동이 바로 매드프라이드 운동이었다. 매드프라이드 운동가들에게 광기란 “나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질환’도 아니며, 내가 치료하길 원하는 ‘증상’의 집합체도 아닌, 내 정체성의 한 측면”이었던 것이다.3)
바로 이 지점에서 매드프라이드 운동과 아빌리파이로 대표되는 약물 이데올로기 사이의 충돌이 발생하였다. 매드프라이드 혹은 장애인운동의 핵심에는 정상성에 대한 거부가 있으며,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한 긍정, 즉 손상된 몸과 다른 정신상태를 가진 나를 그 자체로 긍정하는 움직임을 포함한다. 그렇기에 스스로의 정신상태에 자긍심을 가진다는 매드프라이드의 이념은, 해당 정신상태를 ‘고치고 치료하여’ ‘정상적 능력’을 되찾게 해주겠다는 아빌리파이(로 대표되는 현대 정신약물학)의 이념과 병존할 수 없었다. 즉, 사회적으로 주어진 ‘정상성’을 거부하고 나 자신의 환청, 망상, 우울, 집중력 저하와 같은 정신적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보다 ‘정상적’ 상태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정신과 약제는 필요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상성’이라는 목표가 사라진 자긍심의 세상 속에서 ‘정신과 약물’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약물을 복용하는 행위가 갖는 윤리적 문제는 무엇일까. 만약 정신과 약물 복용이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를 만든다면, 이는 현재의 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닐까? 정신과 약물로 인해 ‘바뀐 나’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진짜 나’ 혹은 ‘원래의 나’에 대한 기만인 것은 아닐까. 나아가, 약물 복용이 ‘정상성’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나의 정신상태를 변화시키는 것이라면, 정신과 약물의 복용이 (때론 불법적인) 정신 증강(mental enhancement)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일까.
이러한 문제를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다음 글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다음 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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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rady, Michelle A., Timothy L. Gasperoni, and Peter Kirkpatrick. "Aripiprazole." Nature reviews drug discovery 2.6 (2003): 427-428.에서 재인용.
2) Rashed, Mohammed Abouelleil. Madness and the demand for recognition: A philosophical inquiry into identity and mental health activism. Oxford University Press, 2019. Ch.1에서 재인용. (해당 단행본의 한글 번역본이 곧 출판될 예정이다.)
3) Rashed, 앞의 책, Chapter 1에서 재인용.
필자 소개
유기훈. 노들장애인야학 휴직 교사.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찾아 공학, 인류학, 의학 등을 떠돌다가 노들야학을 만났다. 야학과 병원의 언저리에 머물며, 억압하는 의학이 아닌 위로하는 의학을 꿈꾸고 있다. 노들야학 바로 앞에 사는 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