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근성을 고려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면 꼭 듣게 되는 말이 있다. “접근성 지원, 좋죠. 그런데 지금은 당장 돈을 벌어야 해요. 장애인들을 위해 추가적인 고려를 할 여유가 없습니다”와 같은 말들. 언뜻 일리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사고의 배경에는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접근성 지원이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오해, 그리고 ‘장애인은 고객이 아니다’라는 편견이 그것이다.
- 접근성 지원이 어렵다는 오해
접근성을 지원하는 일은 ‘예외 처리’를 하는 일이 아니라, ‘확장성 있게’ 제품을 만드는 일이다. 예를 들어, 저시력자가 글씨를 읽을 수 있도록 글씨 크기를 키울 수 있게 만드는 일은 코드 레벨에서는 ‘글 길이에 따라’ 각 UI(user interface : 사용자 인터페이스) 요소들이 커지게 만드는 일과 본질적으로 같은 일이다. 카톡 메시지를 보면 메시지 길이에 따라 말풍선의 크기가 달라진다. 이 기능을 구현한 시점에 이미 저시력자 대응을 위한 모든 준비는 끝났다.
여기서 추가로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밖에 없다. 바로 크기가 변화될 수 있는 폰트를 쓰는 것이다.
그런데 종종 이렇게 폰트만 커질 수 있도록 만들면 앱의 레이아웃이 깨지게 될 때도 있다. 그런 경우는 각 UI 요소의 ‘높이 값’을 고정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글씨 크기는 30포인트(point)가 되었는데 그 글씨를 담는 UI의 크기는 20포인트여서 아래 그림과 같이 기괴하고 쓰기 어려운 UI가 만들어진다.
높이를 고정하는 일은 일반적으로 최대한 피해야 하는 일이다. 높이를 고정하는 결정의 배경에는 ‘이 UI의 텍스트는 결코 한 줄을 넘어가지 않을 거야’라는 확신이 있기 마련인데, 문제는 이 확신이 무모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새로운 사이즈의 아이폰이 나왔을 때, 아이패드에서 앱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기능을 소개했을 때, 그래서 1줄짜리 텍스트가 갑자기 2줄이 되는 상황이 생겼을 때 아주 많은 개발자들이 그런 무모한 확신을 했던 과거의 자신을 책망했다. 또 기획자의 변덕 때문에 짧았던 문구에 조금씩 설명이 붙는 경우도 셀 수 없이 많다.
또 이렇게 높이를 고정할 때는 ‘모든 글씨들이 알파벳이나 한글, 한자와 비슷한 높이를 가질 것이다’라는 가정을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문자들이 있고 그 크기도 가지각색이다. 이런 상황에서 UI의 높이를 고정해 놓으면 아래 그림과 같이 빨간색 영역만큼의 부분이 잘리게 된다. 경우에 따라, 이런 버그는 문장의 원래 의도를 완전히 바꾸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니까 원래 지켜야 할 원칙들을 지키면서, 확장 가능하고 기획자의 요구 사항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시력자가 접근하기 쉬운 앱이 된다. 접근성 지원이라는 것이 ‘추가적인 공수를 들여’ 하는 일이 아니란 얘기다.
대부분의 접근성 관련 기능들이 이와 비슷하다. 색약 사용자를 위해 ‘더 큰 대비’의 색상을 적용하는 일은, 다크 모드를 준비하는 일과 거의 비슷하다. 또 굳이 다크 모드를 지원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프로그래머라면 언제든 회사가 브랜드 컬러를 바꿔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빠르게 앱 전반에 걸쳐 주요 색상들을 바꿀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이런 준비가 되어 있다면 색약 사용자들이 쓸 수 있는 색상 팔레트를 하나 더 준비하는 일은 크게 어려운 게 아니다.
보이스오버(VoiceOver) 등의 화면낭독기를 지원하는 일은 아주 약간의 추가 공수가 들긴 한다. 하지만 여기에 들이는 아주 작은 노력은 짧은 기간에 큰 보상으로 돌아온다. 대표적으로, 보이스오버를 지원하면 자동화된 테스트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자동화 테스트 프로그램이란, 사람 대신 앱의 버튼들을 정해진 시나리오대로 대신 눌러주는 프로그램인데,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보니 당연히 눈이 없다. 그런 면에서는 시각장애인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시각장애인과 완전히 같은 방식으로밖에 앱과 상호작용하지 못한다. 거꾸로 얘기해서, 시각장애인이 앱을 쓸 수 있으면 자동화 테스트 실행 프로그램도 앱을 쓸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자동화 테스트를 작성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화면 낭독기를 지원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정말 쉬운 일이다. 이걸 지원하기 위해 몇 시간 짜리 인터넷 강의를 들을 필요는 없다. 다음과 같이 여러 개의 텍스트를 표시하는 UI가 있다면, 그 텍스트들을 모아서 정리해 ‘accessibilityLabel’과 같은 변수에 넣어주기만 하면 된다. 그리고 이런 ‘accessibilityLabel’과 같은 정보들은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지체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보이스컨트롤(VoiceControl), 스위치컨트롤(SwitchControl)과 같은 기능들에서 계속해서 재활용된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여기에 들이는 공수의 가성비는 어마어마하게 크다고 할 수 있다.
- 장애인은 고객이 아니라는 편견
만약 내가 서비스하는 앱에 장애가 생겨서 OO시 사람들은 아예 접속할 수 없다면, 이 장애의 심각성은 어느 정도일까? 아마 길 가는 CTO(최고기술경영자) 10명을 붙잡고 물어보면 10명 모두가 다른 모든 일을 제쳐놓고 당장 해결해야 하는 이슈라고 말할 것이다.
장애가 하루 이틀 사이에 종식되지 않고 몇 달씩 방치된다면? CTO는 경질될 것이고, 앱스토어 리뷰에는 OO시 시민들의 다음과 같은 리뷰가 올라올 것이다.
“이 앱 OO에서만 안 된대요. 정말 어이없어서. OO 사람들 차별하나요? 왜 OO에서만 안 되는 것이지요? 왜 OO 사람들만 못하게 해요? OO 사람들은 XX도 하지 말라는 것인가요?”
이런 리뷰들이 앱스토어에 쌓이면 회사가 아무리 멋진 가치를 전달하려 해도, 그 진정성이 고객에게 전달될 리 없다. 시중에서는 ‘OO 사람들 차별하는 앱’으로 통용될 것이고, 심지어는 OO 주민들로부터 법적 소송이 들어올 수도 있겠다. 서비스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종류의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을 흘릴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일이 장애인들에게 일어난다고 하면 그 심각성은 어쩐 일인지 훨씬 낮게 취급된다. 2017년 기준으로 국내 장애인 인구는 약 267만 명 정도다. 웬만한 광역시의 인구 규모다. OO시 사람들이 우리 앱을 못 쓴다고 하면 문제라고 생각하고, 장애인이 못 쓴다고 하면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흔히들 장애를 개인의 의료적인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장애를 의료적 관점에서 정의한 ‘의료적 모델’이 장애를 바라보는 기본 시선이기도 했다. 1980년에 WHO가 발표한 ‘국제손상장애핸디캡분류’는 장애에 대한 최초의 국제적 정의다. 이에 따라 장애인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사람의 몸에 손상이라고 간주될 만한 이상이 있어서(손상)
무엇인가를 할 수 없게 된 상태에 빠져(장애)
사회적으로 불리한 처지에 놓인 사람(핸디캡)
즉, 의료적인 ‘손상’이 있어서 ‘장애’가 생기고, 그에 따라 ‘차별’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각장애인을 정의하면 다음과 같다.
눈에 문제가 생겨서(손상)
스마트폰을 볼 수 없어서(장애)
앱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핸디캡)
이처럼 의료적 모델에 따르면, 앱을 쓸 수 없는 원인은 장애인에게 있다. 장애 때문에 앱을 제대로 쓸 수 없는 것은 안타깝지만, 앱 개발자가 장애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 아닌 이상, 이 문제를 해결할 책임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앱을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은 여러 가지가 있다. 회원 가입 과정에서 성별을 입력할 때 ‘여성 또는 남성’ 두 가지 선택지밖에 주지 않는 서비스에 트랜스젠더는 가입하기도 어렵고 가입해서도 제대로 서비스를 사용하기 어렵다. 시골의 느린 통신 환경에서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앱도 많다. 아마 극단적인 성소수자 혐오자, 또는 서울 중심주의자가 아닌 이상 이런 문제의 원인이 사용자 개개인에게 있다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유독 장애인들이 앱을 쓰기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는 장애인 개개인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장애’라는 것이 일일이 대응하기 어려운, 굉장히 특수한 사례라고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획자/디자이너/개발자가 모인들, 어떻게 세상의 모든 사용 사례에 대응할 수 있겠는가! 너무나 특수한 그런 사례들은 어쩔 수 없이 일정 부분 포기하고 가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사실 서비스를 운영하다 보면 다양한 ‘버그’라는 것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보통 버그는 ‘회원가입을 했다가 바로 탈퇴하고 다시 가입한 사용자’, ‘그레고리안 달력이 아닌 일본력을 쓰는 사용자’, ‘새로 나온 신형 기기를 쓰는 사용자’, ‘최근에 핸드폰을 안드로이드에서 아이폰으로 바꾼 사용자’와 같이 특수한 경우에만 발생한다. 일반적인 사용 사례에서 버그가 발생했다면 당연히 개발 과정에서 발견되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이런 버그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런 특수한 사례까지 신경 쓸 수 없으니 대응하지 말자”고 말하는 IT종사자를 나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설령 한 사람의 고객에게 문제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문제의 내용이 앱을 쓸 수 없게 만드는 수준이라면 누구라도 헐레벌떡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고쳐서 ‘핫픽스(HotFix :심각한 버그를 최단 시간 안에 고치기 위해, 원래 정해진 배포 일정을 무시하고 즉시 배포하는 것)’ 배포를 한다.
사실 특수한 사례들에 대해 대응하는 일은 IT인의 일상이다. 장애인의 사용 사례에 대응하지 않는 것은 그들의 사례가 특수하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을 ‘우리와 상관없는 사람, 고객이 아닌 사람’들이라고 의식적으로, 또는 무의식적으로 차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행동 불능의 원인은 사실 특정 개인의 조건에 있다기보다는 사회적인 차별 때문에 생긴다. 이렇게 행동 불능의 원인이 사회에 있다고 보는 관점을,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라고 한다.
접근성 지원을 위한 선순환, 함께 만들자
이 글을 읽는 IT 종사자가 있다면, 이쯤에서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한평생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면서 살아왔는데, 갑자기 장애인들을 차별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억울할 것이다. 사실 그렇다. 공기처럼 퍼져 있는 장애인 차별의 원인은 특정 개개인에게 있지는 않다.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다양한 IT 인력을 양성하는 많은 교육 과정에서 접근성 지원에 대한 부분을 아예 다루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 인력으로 양성되는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도 접근성 지원을 전혀 ‘배워야 할 것’으로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해당 과정을 수료하고, 필드에 나가 업무를 수행하고 경력을 쌓고 연봉을 높이면서도 아무도 주변에서 ‘내가 뭘 놓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하지 않으니, 장애인에 대한 고려를 하려야 할 수가 없다.
왜 많은 교육 과정에서 접근성 지원에 대해 충분히 가르치지 않는 것일까? 결국 IT 인력을 채용하는 회사들에서 접근성 지원 역량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교육 기관의 최종 목표는 수료생들을 회사에 취업시키는 일인데,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귀중한 시간을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IT 회사들이 바뀌어야 한다. 회사를 바꾸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처럼 보이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노력들이 조금씩 쌓이다 보면 회사도 결국 바뀔 수 있다. 특히 지금은 접근성 지원의 중요성을 회사에 강조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 법정의무교육이 된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 덕분에 많은 사업장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있다. 또 지난 2월에는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낭독기 기능을 제대로 지원하지 않은 것이 장애인에 대한 차별 행위라는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이 있기도 했다. 금융위원회에서도 지난해 12월 말까지 ‘고령층 친화적 디지털 금융 환경 조성 가이드라인 마련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각 금융앱들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이드라인이 강제되기 전에 선제적으로 접근성을 고려해 앱을 만든다면, 불필요한 법적 분쟁에 휩쓸리지 않고 시장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설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런 역량을 회사가 확보하려면 당연히 채용 공고에서부터 ‘접근성 지원 역량’을 묻는 항목이 추가되어야 하겠다. 그리고 이런 채용 공고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교육 기관에서도 자연스럽게 수료생들을 회사에 취업시키기 위해 접근성 지원에 대한 역량을 수련시킬 것이고, 그 수료생들이 IT 업계 전반에 퍼져 다시 각 제품의 접근성 관련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할 수 있게 되는 선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나는 지금 우리 업계가 이 선순환의 시작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선순환에 가속도가 붙어 모든 제품에서 충분한 접근성이 챙겨질 미래가, 그래서 내가 더 나이 들어 눈이 어두워지더라도 사회에서 소외받지 않고 활발하게 트위터를 할 수 있는 미래가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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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 장애인실태조사
2. 국제손상장애핸디캡분류
3. 장애인고용촉진및직업재활법
4. “서울지법, ‘온라인 쇼핑몰, 시각장애인 웹 접근성 개선해야’ ” <웰페어뉴스> 2021.02.19.
https://www.welfare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76615
5. “전 금융권 고령자용 앱 의무화..디지털 금융 재설계 불가피” <디지털 투데이> 2021.3.22.
http://www.digita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8020
필자 소개_류성두 : 현재 뱅크샐러드 iOS 개발자로 일하고 있다. 이전에는 플리토에서 iOS 개발자로 일했다. 건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 이 글은 비마이너가 공동기획한 『과학잡지 에피』(16호-장애와 테크놀로지)에도 실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