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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수다‘집’

[연속기고] 청소년 수다‘집’

오롯이 퀴어한 나의 집을 찾아

2021. 11. 01 by 이인

《 기획의도 》

2019년부터 현재까지 청소년 “탈시설”과 “주거권”을 키워드로 활동하는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아래 청주넷)는 청소년 당사자, 청소년자립지원현장 활동가, 인권활동가, 법률활동가 등이 연대해 청소년 주거권 서사를 발굴하고, 담론을 확장하며, 정책 변화를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지난해 청주넷에서는 청소년 당사자 활동가 6명이 경험한 주거 약자로서의 삶을 강연 내용으로 정리했습니다. 올해는 청소년 활동가와 비청소년 활동가들이 함께 이 강연 원고를 다시 읽어보고 청소년 주거권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수다회’를 진행했습니다.

이번 기획연재를 통해 ‘소소한 일상’, ‘퀴어한 삶’, ‘청소년 인권’, ‘시설’, ‘가족’이라는 주제로 수다회에서 나눈 통찰력과 영감이 넘치는 이야기들을 더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저희의 글들이 청소년의 집다운 집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상상과 시도들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

[ 연재순서 ]

[서문] 청소년 수다‘집’, 그 다섯 개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① 소소한 일상은 누구에게나

② 오롯이 퀴어한 나의 집을 찾아

지난 4월 2일, 서울시 보궐선거를 맞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 차기 서울시장에게 아동·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활동가가 “내가 ‘나’일 수 있는 집”이라는 문구가 적힌 집 모형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지난 4월 2일, 서울시 보궐선거를 맞아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가 차기 서울시장에게 아동·청소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정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 활동가가 “내가 ‘나’일 수 있는 집”이라는 문구가 적힌 집 모형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우리는 집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할까? 감히 말하자면, 이 질문에 어떠한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고 외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수다회인 ‘청소년 주거권과 퀴어한 삶’은 ‘특정한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중 내가 먼저 집이라는 공간에서 나다울 수 없었던 경험을 공유했다.

“어, 난 분명 커밍아웃을 했는데? 아빠는 TV를 보면서 장난으로 ‘야, 너는 저런 여자 만나야 돼.’ 이런 말을 하고, 물론 그때는 제가 범성애자라고 정체화를 했어요. 그래서 엄마 아빠는 일말의 희망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얘가 그래도 여자를 만나겠지, 하는.”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고 인정받지 못했던 순간들, 마치 커밍아웃을 한 사실 자체가 삭제된 것처럼 평온하게 흘러가는 가족 분위기에서 상처를 받은 순간들, 나는 그 시간들을 ‘이 공간에서 나의 한 덩어리가 지워진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퀴어이기에 오는 고충은 원가정을 떠나서도 발생했다. 다른 참가자는 집수리 때문에 들른 집주인이 동성 애인과 찍은 사진들을 목격한 다음 날, 집 앞에 ‘동성애는 악질이다’라는 내용의 전단이 붙어 있던 경험을 이야기해주었다.

“저는 사이비인가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저희 집 주인이었던 거죠. …… 원래는 저희가 사귀고 있다는 거를 모르셨을 때는 인사도 하시고 되게 잘 챙겨주셨는데 그 이후부터는 아예 무시를 하더라고요. 인사를 해도 안 받고.”

또 다른 참가자는 사회에서 말하는 여성성과는 다른 외모와 삶의 방식으로 애인과 멀어진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게 저에 대한 모욕은 아니었고. 그러니까 그이도 저를 받아들이고 싶고 저와 같이 이 삶을 만들고 싶은데 자기도 건너야 될 뭔가들이 있는 거야. 도전해야 될 벽이. 그렇다 보니 네가 조금 더 평범한 선으로 와주면 안 되겠니? 그런 식의 분위기가 있었죠.”

상대에게 이질감을 주는 순간과 나 또한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을 버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순간이 차별에 맞서기 힘든 사회 구조 안에서 불가항력적이었기에 상대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는 이들도 있었다. 그랬기에 대부분의 이야기는 ‘살기 위해서’라는 표현으로 귀결되었다. 살기 위해서,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했다.

- 우리 모두에게 있던 ‘인정받지 못한 순간들’

그렇게 우리는 퀴어가 아니어도 누군가와 부딪히고 있었기에, 조심스레 퀴어의 의미를 확장해보기로 했다. 퀴어라는 단어의 원뜻대로, 각자에게는 저마다의 이상하고 기이한, 즉 ‘퀴어한’ 모습이 있을 테니까. 그래서 우리는 ‘퀴어하다’를 ‘유별나다’ 또는 ‘인정받지 못한 고유함을 갖고 있다’는 뜻의 형용사로 정의하기로 했다. 참가자들은 동성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해 유별나게 보였던 이야기나, 혼자서만 불편을 느꼈기에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당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참가자 중에선 퀴어한 부모도 있었다. 한 참가자는 자식에게 ‘오케이 땡큐’ 같은 말만 한다는 이유로 타인에게 ‘땡큐맘’이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자식을 방임하는 엄마인 것처럼 무시당하면서 말이다.

누구의 갈등은 진행 중이었고, 누구는 절연으로 끝나기도 했다. 누구는 가족과 갈등을 겪었고 누구는 가족 밖의 타인과 갈등을 겪었다. 누구는 정상성을 획득하려 노력했다. 어찌 되었든 유쾌하게 말하는 이는 없었다. 퀴어함은 관계에서 불편함을 유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나조차도 나 자신을 ‘불편한 존재’로 인식했기에, ‘불편’이라는 단어로 정리하기에 버거운 감정들이 쌓여갔다.

‘나의 퀴어함을 인정받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과연 그곳이 집일 수 있을까?’라는 말이 나왔다. 빠르게 지나간 말이었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오랫동안 맴돌았다. 왜 청소년들이 원가정 밖으로 나왔을까. 그들은 채광이 좋은 집이나 치안이 좋은 동네를 찾아서 나온 게 아니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집을 찾아서 나온 것이다. 그것을 특히 주거권에서 얘기하는 이유는 집이 나의 가장 개인적인 공간인 동시에, 구성원과 끊임없이 맞닿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모습 그대로 있을 때 버거운 공간은 집만이 아니었다. 집 밖으로 나와도 우리는 여전히 ‘이상한’ 존재였고, 그래서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집을 절실히도 외치고 있었다.

‘청소년 주거권 말하기 확산을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한 뱃지. 일명 ‘지워질 뻔한 내 삶의 한 덩어리를 담은 캐리어.’ 청소년들이 나다울 수 있는 ‘집다운 집’을 찾아 떠나는 것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주체적인 결정이라는 의미를 담아 제작했다. 6색 무지개가 담긴 반짝거리는 캐리어 모양의 뱃지. 말풍선에는 “‘나’로 살고 싶어서 길을 나섰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필자 제공.
‘청소년 주거권 말하기 확산을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제작한 뱃지. 일명 ‘지워질 뻔한 내 삶의 한 덩어리를 담은 캐리어.’ 청소년들이 나다울 수 있는 ‘집다운 집’을 찾아 떠나는 것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주체적인 결정이라는 의미를 담아 제작했다. 6색 무지개가 담긴 반짝거리는 캐리어 모양의 뱃지. 말풍선에는 “‘나’로 살고 싶어서 길을 나섰다”라는 말이 적혀있다. 필자 제공.

- 유별나서는 안 되고 평범한 것으로는 부족하고

평범을 넘어 비범해져야 하는 경험도 있었다. 유별나서는 안 되고, 평범한 것으로는 부족하고, 비범해야 하는. 가정에서 살아가기 위해 인정받을 수 있는 비범함을 갖추려 아등바등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스스로가 ‘원하지 않았던 딸’이었다고 말한 참가자는 평범해서는 결코 사랑받지 못했던 과거를 이야기했다.

“어렸을 때 굉장히 중요한 미션은 내가 여기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다는 증명을 해야 된다 이런 거였거든요. 저의 미션은, 그러니까 유별나서는 안 돼요. 유별나면은 사랑받을 수 없으니까. 근데 평범해서도 안 되는 거예요. 비범해져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언니보다 공부를 더 잘해야 된다, 남동생보다 더 착해야 된다. 뭔가 이런 식의 비범해지려는 노력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게 저의 한 20년의 세월이었던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속에 나의 과거가 스쳐 지나갔다. 갓 태어날 때부터 코가 그렇게 오뚝할 수 없었다는 형, 귀여움을 가득 가지고 태어난 동생 사이에서 짱구 머리에 쭉 째진 눈, 납작한 코를 가진 나는 ‘사랑받을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친척들에게 먼저 나서서 커피를 타주거나, 그릇을 치우거나 혼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나’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던 이들은 사랑받을 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다르거나, 남다르지 못했기에 견딜 수 없었던 과정을 뭉뚱그려 정리하자면 ‘존재 그 자체로서 인정받지 못했던 순간’들 아니었을까. 우리는 때론 퀴어하게, 때론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어떤 집에서 살고 싶냐는 질문에 이런 답들이 생각난다. 전라로 누워있을 수 있는 곳, 친구를 데려올 수 있는 곳, 노래 부를 수 있는 곳. 평범할 것도, 유별날 것도 없는 그런 일상을 그리는 이들이 꼭 그 일상을 살아가길 바란다.

- 부모와 함께 살지 않는 청소년 자체가 퀴어한 존재일 수도

원가정 밖에서 살아가는 청소년들은 있는 그대로 퀴어할 수 없는 공간에서 탈출해 새로운 공간에 정착해도, 여전히 유별난 존재로 취급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보편적이지 않은 세대 구성으로 시선이 집중되거나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과하게 공격적인 질문을 받거나, 타인에게 왜 원가정에서 나와 살아가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해명해야 한다. 그렇게 유별난 우리에겐 늘 유별나게 살아가야 하는 삶에 대한 이유가 요구된다. 우리는 다만 집과 집에 얽힌 관계들이 나를 존재 자체로 인정해주는 세상을 원할 뿐인데도 말이다.

여전히 많은 이들은 끝이 없을 것 같은 싸움을 겪고 있다. 그런 현실에서 수다회는 우리의 삶이 진부한 클리셰가 아니고, 우리의 ‘유별남’은 짤막한 순간을 넘어 지속되는 우리의 존재 자체이기도 하다는 걸 다시 상기해주는 시간이었다. 우리의 삶이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는 세상을 함께 상상해보기 위해, 이 이야기들이 휘발되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2021 세계 주거의 날 기념

[청소년 주거권 말하기 확산을 위한 캠페인]

“우리의 이야기는 멈추지 않집!”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는 ‘2021 세계 주거의 날’을 기념하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집다운 집’에 대한 이야기가 멈추지 않도록 청소년 주거권 운동에 힘을 보태주세요. ▷ http://bitly.ws/hqP5

필자 소개

이인. 청소년주거권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열아홉부터 혼자 살았고 당분간은 비슷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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