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경호 기재부 장관 집 앞, 장애인 500명 집결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중, ‘생존예산’인 활동지원 예산 증액 요구
활동지원 산정특례 종료 코앞… 장애인 3천여 명 삭감·탈락 앞둬
만 65세 이상 장기요양 강제전환 “이제라도 죽여 달라”
추 장관 자택 근처 3시간 행진하며 면담 촉구

추경호 기재부 장관 자택 앞에 집결한 장애인 활동가들. 자택 ‘래미안도곡카운티’앞에 커다란 전광판이 세워져 있다. 결의대회 무대에는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책임 촉구,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예산 없이 권리 없다”고 적힌 큰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른쪽에 경찰이 친 울타리가 보인다. 사진 하민지
추경호 기재부 장관 자택 앞에 집결한 장애인 활동가들. 자택 ‘래미안도곡카운티’앞에 커다란 전광판이 세워져 있다. 결의대회 무대에는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책임 촉구, 장애등급제 가짜 폐지, 예산 없이 권리 없다”고 적힌 큰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오른쪽에 경찰이 친 울타리가 보인다. 사진 하민지

26일 오후 3시, 서울시 강남구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자택 앞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등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 500여 명이 집결했다. 장애인권리예산 보장 요구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추경호 장관을 규탄하기 위해서다.

이번 결의대회는 여러 예산 중 ‘장애인활동지원(아래 활동지원) 권리예산’ 보장의 시급함이 집중적으로 조명됐다. 전장연은 장애인권리예산 중 ‘2023년 활동지원 예산’으로 2조 9천억 원을 요구하고 있다. 올해 예산보다 1조 2천억 원 증액된 수치다.

구체적으로는 △중앙정부 차원 활동지원 24시간 보장 △산정특례 종료 후에도 기존 활동지원 시간 유지 △개인별 지원 강화를 위한 종합조사표 개선 △당사자 별 종합점수 세부내역 공개 의무화 △만 65세 도래 장애인에 대한 활동지원 이용 권리 완전 보장 △만 65세 이후 장애를 입은 사람의 활동지원 신청 자격 보장 등을 요구했다. 이런 정책이 실현되려면 활동지원 예산 증액이 필수적이다.

전장연은 추 장관을 향해 “장애인활동지원 권리예산은 생존권 예산이다. 국민의 생존권 요구를 외면하는 기재부를 규탄한다. 장애인권리예산은 검토 대상이 아니다”라며 “2023년 장애인활동지원 예산 2조 9천억 원을 편성하라”고 요구했다.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 함께 살자,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애인 활동지원 권리예산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피켓에는 추경호 장관 사진이 있다. 그 뒤로 결의대회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보인다. 이들은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 양산 등을 썼다. 사진 하민지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 함께 살자,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애인 활동지원 권리예산 보장하라’라고 적힌 피켓이 보인다. 피켓에는 추경호 장관 사진이 있다. 그 뒤로 결의대회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보인다. 이들은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모자, 양산 등을 썼다. 사진 하민지

- 산정특례 종료 후 대책 없어… 정부는 발달장애자녀 살해 비극을 보고 있나

활동지원 산정특례 종료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정부는 2019년 7월 1일,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시행하면서 활동지원 판정체계를 인정조사에서 종합조사로 바꿨다. 그러나 종합조사표로 활동지원 갱신조사를 받은 장애인 중 활동지원시간이 삭감되거나 탈락된 장애인은 14.5%에 달한다.

장애인들이 거세게 항의하자 정부는 활동지원이 삭감된 장애인에게 3년간만 한시적으로 기존 활동지원시간을 보전하는 ‘산정특례’를 적용했다. 산정특례는 오는 7월 1일부터 순차적으로 종료될 예정이다. 하지만 정부는 아무 대책도 세우지 않고 ‘이의신청을 하라’며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정부의 땜질식 대책으로 올해 산정특례가 끝나는 장애인 2913명은 활동지원시간이 삭감되거나, 수급자격이 박탈되는 상황에 처했다.

1년 후 활동지원 100시간이 삭감될 예정인 진은선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소장은 “종합조사 10분 만에 내 인생이 결정된다. ‘밥은 혼자 먹을 수 있냐, 화장실에서 혼자 뒤처리할 수 있냐, 생리는 하고 있냐’ 이런 질문에 답하며 내가 얼마나 ‘무능한’ 사람인지를 증명해야 한다. ‘집에선 이 정도의 지원이 필요하고 밖에선 이 정도가 필요하다’라고, 내 필요와 욕구를 중심으로 대답할 수 없다. 조사가 끝나고 나면 활동지원 시간이 얼마나 떨어질지, 내 삶에서 또 뭘 포기해야 할지 두렵고 불안하다”고 성토했다.

남태준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가 발언 중이다. 그의 오른쪽에 있는 활동가가 ‘모든 발달장애인이 자립할 때까지 장애인의 권리예산을 보장하라 피플퍼스트성북센터’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남태준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가 발언 중이다. 그의 오른쪽에 있는 활동가가 ‘모든 발달장애인이 자립할 때까지 장애인의 권리예산을 보장하라 피플퍼스트성북센터’라고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인의 활동지원시간 삭감, 탈락 문제도 심각하다. 장혜영 정의당 국회의원실 발표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2020년 12월까지 활동지원 갱신자 중 서비스 시간 하락자의 50.4%(3865명), 서비스 탈락자의 61.2%(292명)가 발달장애인이다. 당장 올해 활동지원시간이 삭감되거나, 수급자격이 박탈되는 발달장애인은 1501명에 달한다.

남태준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는 발달장애인의 서비스 욕구를 제대로 판정할 수 없는 종합조사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태준 활동가는 “종합조사표에 발달장애인 항목에 해당하는 인지행동특성 항목 문항이 8개뿐이다. 항목 수가 너무 적어서 많은 점수를 인정받기 힘들다. 그래서 활동지원시간도 많이 받기 힘들다”라고 비판했다.

최근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영정사진. 활동가들은 결의대회 후 이들을 추모하며 헌화했다. 사진 하민지
최근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의 영정사진. 활동가들은 결의대회 후 이들을 추모하며 헌화했다. 사진 하민지

발달장애인에 유독 불리하게 짜인 종합조사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을 절망에 빠뜨리고 있다. 활동지원시간이 적을수록 가족에게 돌봄의 책임이 가중되기 때문이다. 지난 23일, 서울시 성동구에 사는 40대 여성이 6살 발달장애자녀를 안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같은 날, 인천시 연수구에서는 60대 어머니가 대장암을 진단받은 30대 중증장애자녀를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끓으려다 미수에 그친 일이 있었다.

남 활동가는 이 같은 사건을 언급하며 “이런 비극은 너무나 모자란 활동지원시간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국가와 정부는 발달장애인과 가족에게 돌봄 부담을 전가하지 말라. 비극적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활동지원시간 24시간을 보장하라”라고 말했다.

결의대회 현장. 추경호 기재부 장관 자택 앞 인도에 활동가 500여 명이 모여 있다. 맨 앞에 취재진 카메라가 보인다. 사진 하민지
결의대회 현장. 추경호 기재부 장관 자택 앞 인도에 활동가 500여 명이 모여 있다. 맨 앞에 취재진 카메라가 보인다. 사진 하민지

- 65세 이후 장기요양 강제전환… “활동지원 예산 줄이려는 것”

장애인이 만 65세가 되면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고 노인장기요양서비스(아래 장기요양)로 강제전환된다. 활동지원은 보건복지부에서 하루 최대 16시간까지 제공하고, 지방자치단체 추가 시간까지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장기요양은 하루 최대 4시간까지만 가능하다.

또한 장기요양은 재가간병 지원을 원칙으로 해서, 사회생활이나 일상생활 등의 지원은 받을 수 없다. 활동지원과 달리 집안에서 간병만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장애인은 장기요양 강제전환 제도를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렀다.

장애계 항의가 거세자, 복지부는 2020년 12월 22일, 장기요양 강제전환으로 활동지원이 삭감된 장애인에게 부족한 시간을 보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활동지원이 60시간 이상 삭감된 사람만 보전이 가능하다는 규정을 내세워, 사각지대에 놓인 장애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만 65세가 넘어 탈시설했거나 장애등록을 한 사람, 만 65세 미만이지만 장기요양을 받는 사람에게는 신청 자격조차 부여하지 않고 있다.

발언 도중 통곡한 최영자 은평센터 활동가. 그는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 함께 살자, 윤석열’이라 적힌 피켓을 목에 걸었다. 피켓에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발언 도중 통곡한 최영자 은평센터 활동가. 그는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 함께 살자, 윤석열’이라 적힌 피켓을 목에 걸었다. 피켓에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이 보인다. 사진 하민지

최영자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탈시설해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다. 현재 만 67세다. 머리 아래로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어렵다. 그러나 그는 현재 장기요양 하루 4시간으로 생활하고 있다. 만 65세가 넘어 활동지원을 못 받게 됐기 때문이다.

최영자 활동가는 “먹고 싶은 게 있어도 이거 먹으면 똥 마려울까 봐 못 먹고, 목이 말라도 물 마시면 오줌 마려울까 봐 안 마신다. 정말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난 행복하게, 내 맘대로 살고 싶다. 더는 못 살겠다. 내게 활동지원시간을 더 달라. 아니면 차라리 이제라도 나를 죽여 달라. 울고 싶은데 혼자 눈물도 닦을 수 없다”라며, 발언 도중 목놓아 울었다.

황지영 씨의 오빠는 2013년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후 오른편이 마비됐고 언어장애도 갖게 됐다. 벽을 짚거나 지팡이가 있어야 겨우 거동이 가능한 상황이다. 오빠가 퇴원할 당시 장기요양을 알게 돼 신청했다. 오빠의 나이 만 65세 전에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 때문에 활동지원을 못 받게 됐다. 활동지원법과 장기요양법에 따라 장기요양을 받고 있으면 활동지원 신청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황 씨는 “장기요양이 하루 3시간밖에 안 된다. 장기요양을 받은 사람은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걸 미리 알았다면 장기요양을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억울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정의당, 청와대, 보건복지부에 도와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나 현재로선 모두가 안 된다고 한다. 활동지원은 오빠와 우리 가족에게 희망이다. 놓치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건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 씨의 오빠와 같은 상황에 놓인 장애인은 전국 2만 6천 명 정도로 집계된다. 백인혁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정부는 예산 절감을 위해 활동지원제도로 유입되는 장애인 인구를 통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장기요양을 받는 만 65세 미만 장애인이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한 법은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다. 헌재는 2022년 12월 31일까지 법을 개정하라고 한 상태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오현주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후보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오현주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후보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사진 하민지

이날 결의대회에는 신지혜 기본소득당 서울시장 후보와 오현주 정의당 서울시의원 비례대표 후보가 참석해 연대발언했다.

신지혜 후보는 “이 시위를 불편하게 느끼는 도곡동 주민분들이 있을 듯하다. 이웃 주민분들께 부탁드린다. 추경호 장관에게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확보하라고 함께 목소리 내달라”며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탈시설·자립생활 지원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게 예산이다. 추경호 장관에게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함께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현주 후보는 “기재부 장관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대통령보다 더 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지 않으면 우리가 밤낮없이, 시도 때도 없이 이곳에 와서 우리의 권리를 이야기하겠다”라고 했다.

전장연은 결의대회 후 추경호 장관 자택 인근을 3시간 동안 행진했다. 전장연은 기획재정부가 2023년 본 예산을 위한 실링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할 것과 구체적 답변을 위한 추경호 장관 면담을 요구했다.

행진하는 활동가들과 한 줄로 선 경찰들. 사진 하민지
행진하는 활동가들과 한 줄로 선 경찰들. 사진 하민지
행진 모습. 양쪽에 경찰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고 가운데에 활동가들이 행진하고 있다. 제일 앞에 선 활동가들이 ‘장애인 거주시설은 감옥이다’라고 적힌 감옥 모형을 끌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행진 모습. 양쪽에 경찰들이 두 줄로 늘어서 있고 가운데에 활동가들이 행진하고 있다. 제일 앞에 선 활동가들이 ‘장애인 거주시설은 감옥이다’라고 적힌 감옥 모형을 끌며 행진하고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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