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반란’ 과학자들 ①
독일에서만 벌써 15명의 활동가들 재판행
“북반구가 남반구를 죽이고 있다”
“지금 부족한 건 논문, 보고서, 강연이 아니다”

[편집자 주] 전 세계적인 기후정의 운동의 활성화와 더불어 이 운동에 결합하는 과학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기후 재앙을 당장 막아야 한다며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을 벌인다. 도로와 공항을 점거하고, 정부 건물에 붉은 페인트를 뿌리고, 화석연료 기업의 벽을 과학 논문으로 도배한다.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요구하는 기후정의 단체들이 늘 해온 일이나, 과학자들도 적극적으로 합류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주목된다. 이들은 일견 과격하게 보이는 시민불복종 행동을 하지 않는 한, 기후위기에 대한 과학자들의 경고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자유기고가 손가영 씨가 흰 가운을 입고 거리로 뛰어든 ‘과학자반란’ 구성원 8명을 지난 2월 한 달간 인터뷰했다. 이 내용을 5회에 걸쳐 연재한다.

2022년 10월 29일 저녁 6시, 번쩍이는 신차로 가득한 독일 뮌헨 BMW 출고센터. 흰 가운을 입은 13명의 사람들이 들어서더니 작업이 시작됐다. 자동차 앞창으로 검은색 페인트가 콸콸 쏟아졌다. 차 몸통엔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역설하는 논문 출력물이 덕지덕지 붙었다. 사람 손바닥도 들러붙었다. 강력 접착제를 묻힌 손바닥을 핸들, 몸통, 차체 여기저기에 붙여버린 것이다. 경음악만 한가롭게 흘러나오던 전시장은 곧바로 거친 목소리들로 가득 찼다.

“우리는 원하는 것은 무엇? 기후 정의!” “과학을 외면하지 말라!” “이건(전시장) 지구를 구하는 게 아니다! 자동차 산업을 구하는 거다!”

2022년 10월 29일, 독일 뮌헨의 BMW 출고센터에서 시민불복종 행동에 돌입한 독일 과학자반란 활동가들. 사진 Scientist Rebellion

모두 독일 ‘과학자반란(Scientist Rebellion)’ 구성원들이다. BMW만 찾아간 게 아니다. 10월 20일엔 폭스바겐 전시장을, 25일엔 자산운용회사 블랙록(BlackRock)을, 26일엔 뮌헨 중심 거리를 점거했다. 정부에겐 “지금 당장 체제 전환”을, 기업들에겐 “지금 당장 대규모 탈탄소화”를, 세계 정부들엔 “지금 당장 남반구 부채 탕감”을 말하기 위해서다. 이런 시민불복종 행동이 아니면 권력자들은 시민들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기 때문이다.

2022년 10월 19일,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전시장을 점거한 독일 과학자반란 활동가들. 강력 접착제를 묻힌 손바닥은 바닥에 붙어있다. 사진 Scientist Rebellion

과학자반란은 급진적인 기후정의 운동 단체 중 하나다. 2021년 영국에서 시작돼 유럽, 북·남미, 아프리카 대륙의 36개국으로 퍼졌다. 과학자란 정체성으로 모인 게 특징이다. ‘과학자가 굳이?’라고 물으면 이들은 “과학자이기 때문에”라고 답한다. 위기를 더 잘 아는 이들이 한가함에 빠져 있으면 대체 누구에게 긴급한 행동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실패했다”고도 했다. 과학계의 첫 기후위기 경고가 나온 지 36년이 지났으나 변화는 없었다. 과학자반란은 “부족한 건 과학이 아니라 정치적 의지일 뿐이었다”며 사회에서 기득권인 과학자들, 특히 북반구 과학자들에게 기후 정의에 나설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 1~2월 8개국 12명의 과학자반란 활동가들에게 인터뷰를 요청하는 이메일을 보냈다. 9명이 답신을 주었으나, 이중 징역살이를 하다 현재 가택연금 중인 한 명은 관찰소의 감시를 받고 있어 인터뷰를 진행하지 못했다. 첫 번째로 인터뷰가 이루어진 건 독일의 분자생물학자 나나마리아 그뤼닝(Nana-Maria Grüning, 40세) 박사와 니콜라스 프로이츠하임(Nikolaus Froitzheim, 65세) 지질학 교수다.

- 정부 건물에 논문 붙이고, 목에 쇠사슬 걸고

“시간의 문이 너무나도 빠르게 닫히고 있어요. 우리가 기후위기에 대한 통제력을 전지구적으로 상실하는, 이 최악의 상황을 고칠 수 있는 임계점 앞의 시간이요. 그래서 저는 지난주(2월) 직장을 그만뒀습니다.” (나나마리아)

나나마리아는 2월부터 전업 활동가가 됐다. 샤리테(Charité·베를린 의대) 연구교수직을 그만뒀다. 스무 살 때부터 20년 동안 분자생물학 한 길을 걸어온 그였다. 그에게 분자생물학자와 기후정의 활동가라는 두 길은 다르지 않았다. “생물학과 자연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경외해서” 생물학자가 됐고, 바로 또 그 이유로 활동가도 됐기 때문이다.

“저는 제가 하는 종류의 연구가 가능한, 부유한 나라에 사는 걸 거대한 특권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동시에 이 특권이 지구적 위기로 인해 위협받는다는 사실도 점점 깨달았습니다. 기후재난으로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우리는 어떻게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매일 150종의 생물이 멸종되고 생태계 전체가 붕괴하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연구를 할 수 있는 길은 과연 얼마나 남을까요? 어떻게 우리(생의학자)가 사람들의 건강과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제 기초 연구 결과는 치료와 같은 응용으로 발전될까요, 아니면 그 전에 경제가 붕괴해 버릴까요? 이 모든 생각이 제가 전업 활동가가 되는 걸 이끌었습니다.” (나나마리아)

2022년 10월 18일, 독일 과학자반란 활동가들이 독일연방 교통부 건물 벽을 과학 논문으로 도배하고 붉은 생분해성 페인트로 칠하는 직접행동을 벌이는 모습. 사진 Stefan Müller

기후위기를 우려하는 과학자 모임은 더러 있으나, 이들과 과학자반란의 차이는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을 적극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특정한 법이나 지침을 따르기를 거부하면서, 이를 통해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켜 사회구조적 변화를 꾀한다. 나나마리아의 첫 행동은 베를린의 연방식품농업부에서 시작됐다. 2021년 3월, 다른 연구자 3명과 함께 흰 가운을 입고 기후위기 원인 분석이 담긴 논문 출력물을 건물 창문과 문들에 붙였다.

2021년 11월엔 COP26(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1)이 열린 영국 글래스고에도 갔다. COP는 기후정의 활동가들에겐 ‘전지구적 그린워싱’의 대표 행사다. 미온적인 타협의 결과물을 마치 최선의 노력인 양 그럴듯하게 포장해, 정부 실패라는 본질에서 사람들의 주의를 분산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해 COP 개최지는 기후정의 활동가들의 최대 집결지다. 나나마리아도 “COP는 실패했다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11월 11일 20명의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목에 쇠사슬을 걸고 영국 글래스고 킹조지 5세 다리 위를 수 시간 동안 봉쇄했다. 모두 체포됐고, 그도 생애 처음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 사건은 기후위기로 인해 과학자들이 집단 체포된 첫 사례로 알려졌다.

- 지금 북반구 국가들은 남반구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지상 지옥에서 우리를 구할 기회가 있는 한 나는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2023년 6월 20일 베를린 지방법원에서 니콜라스의 진술)

니콜라스는 지금까지 3차례 재판에 넘겨졌고 예정된 재판도 두 개 더 있다. 이 중 한 재판에서는 3,600유로의 벌금형(현재 항소 중)이 선고됐다. 2022년 4월 베를린의 크론프린젠브뤼케(Kronprinzenbrücke) 다리를 막고 교통을 방해한 사건 때문이다. 그때 니콜라스와 동료들은 쇠사슬로 서로의 몸을 연결해 도로를 점거했고 일부는 접착제로 손을 도로에 붙였다. 이들은 현수막을 들었다. “1.5℃는 죽었다. 지금 당장 기후 혁명을!”

2022년 4월 6일, 독일 과학자반란 활동가들이 기후재앙을 경고하는 IPCC 보고서의 내용을 알리기 위해 쇠사슬로 서로의 목을 연결한 채 베를린 크라운프린스 다리를 점거한 모습. 가운데 붉은 화약을 든 남성이 니콜라스, 그 바로 왼쪽에 현수막을 든 여성이 나나마리아다. 사진 Stefan Müller
위 크라운프린스 다리 점거 현장에서 발언하고 있는 니콜라스 교수. 사진 Stefan Müller

니콜라스는 올해 7월 정년퇴직을 앞둔 본대학교(Universität Bonn) 지질학과 교수다. 그중에서도 구조론과 암석학을 전공했다. 2018년부터 기후정의 운동에 참여한 그는 대학에서 기후위기 관련 수업도 개설해 가르친다. 동시에 독일에서 큰 규모의 시민불복종 운동이 벌어지면 거의 빠짐없이 참여하는 열성적인 활동가다.

가장 최근엔 쾰른대학교의 한 강연장을 ‘급습’했다. 지난 1월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경제·기후보호·에너지 장관이 주의 에너지 전환을 주제로 강연할 때였다. 그는 오래된 탄광 마을인 루체라스(Lützerath)의 갈탄 채굴 확장을 승인한 책임자였다. 기업에 승인해 준 채굴량도 연방정부의 제한선을 뛰어넘었다. 이에 과학자반란 활동가들은 강연 도중 연단에 뛰어들어 현수막을 펼치고 “석탄 채굴 확대! 화석연료 기업 이익 보호! 1.5℃ 위반! 평화 시위 무력 진압! 마을 파괴!” 등의 구호를 외쳤다.

지난 1월 24일, 독일 과학자반란 활동가들이 쾰른대학교 강연장에서 직접행동을 벌이고 있는 모습. 사진 왼쪽 현수막을 들고 있는 남성이 니콜라스 교수다. 사진 Scientist Rebellion Germany

왜 시민불복종 운동이냐, 스스로에게 가혹하진 않느냐는 물음에 니콜라스는 단호하게 답했다.

“기후 보호를 위해 과학자들이 한 다른 모든 일은 쓸데없는 것으로 입증됐기 때문입니다. 정부를 위한 논문 및 보고서 작성, 회의 참석, 강연, ‘과학자들의 경고’와 같은 편지, 서명 등과 같은 것입니다. 기후 정치에 영향을 미치려는 기후 과학자들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입니다. […] 지금 북반구의 부유한 국가들이 하고 있는 일은 남반구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이런 범죄가 일어나는데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니콜라스는 벌금형을 선고받았지만 나나마리아는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기소된 세 개 사건 중 하나가 지난해 10월 ‘기각’으로 종결됐다. 유·무죄 판단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법원이 유죄로 판단하지는 않은 셈이다. 2022년 4월 베를린 도로 점거 사건을 다룬 재판이었다.

나나마리아는 “판사와 주 검사는 (기후운동을 한) 내 이유를 이해했지만, 무죄를 선고하는 건 두려워했다”며 “그랬다면 기후위기 상황에서 시민불복종 행위를 합법화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그가 법정에서 진술한 ‘나는 왜 시민불복종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이유다.

“정부는 시민들이 허용하기 때문에 생태에 치명적인 사업들을 강행할 수 있다. 그렇다면 나는 (정부의 기후범죄에) 공모하기를 거부한다. 침묵으로서 동의하기를 거부한다. 나는 그 자체만으론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 거듭 입증된 전통적인 방법(청원, 행진, 투표)을 사용해 [결과적으로 그에] 동의하는 것도 거부한다. […] 내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이유는, 내가 언제나 존경해 마지않는 교수, 의사들도 포함해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마치 우리 눈앞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이 벌어지고 있지 않는 것처럼 전적으로 평범하게, 고요하게, 조용히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과학자로서, 기후재난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긴급성을 이해할 기회를 주고 싶어서 행동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바빠 이 주제에 대해 읽을 시간과 여력이 없다.”

- ‘객관성 훼손’ 논란에 “마음 편하려는 학계의 변명”

나나마리아는 자신의 활동과 과학의 중립성 혹은 객관성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강조했다. “물이 0℃에서 어는 사실이 내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바뀌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과학적 사실은 그저 사실 그 자체이며, 과학적 방법론은 독립적인 동료 검토 프로세스를 통해 뒷받침된다”며 “내가 과학적으로 작업할 수 있다는 것은 동료 검토를 거친 과학 논문을 통해 증명된다”고 말했다.

오히려 그는 행동과 객관성을 대립시키는 학계의 통념이 “과학자로서의 책임감에서 비롯된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하는 변명일 뿐”이라며 “지식은 힘이 아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지경이 되진 않았을 것이다. 지식은 책임감이자 특권이다”라고 말했다.

2022년 4월 8일, 독일 과학자반란 활동가들이 독일연방 교통부를 찾아가 건물 입구에 과학 논문을 붙이고 있는 모습. 사진 오른쪽 흰색 종이를 든 여성이 나나마리아다. 사진 Stefan Müller

니콜라스도 “젊은 과학자들은 자신의 경력을 두려워하고 나이 든 과학자들은 평판과 연구 자금을 두려워하므로 침착함과 ‘중립’을 유지한다”며 “하지만 침착함을 유지한다는 건 불공정이 일어나는 걸 허용하는 것이므로, 화석연료 산업과 소비사회가 사람들의 삶과 아이들의 미래를 파괴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순 없다”고 말했다.

4명의 활동가로 시작한 독일 과학자반란은 현재 200여 명의 과학자들이 활동하는 것으로 추산되나, 과학자반란이 구성원을 등록하거나 기록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수를 파악하긴 어렵다. 현재 최소 15명의 과학자들이 비폭력 시민불복종 행동에 가담해 형을 선고받았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나나마리아는 한국에 있는 동료 과학자들과 시민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신자유주의 경제하에서 광고 산업과 화석연료 기업의 로비활동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방식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믿게 만들기 위해 온갖 짓을 다해왔습니다. 지금의 성장기반 시장경제체제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미래 세대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우리는 서로를 사랑할 수 있고 연민할 수 있으며, 우리가 번영하려면 공동체, 좋은 관계, 건강한 자연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일단 이해했다면 파괴를 멈춰야 합니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저항하고 싸우는 것도 매우 인간적인 일입니다.”  

 

1) ‘COP’는 당사국총회를 뜻하는 ‘Conference of the Parties’의 약자이며, 숫자 ‘26’은 회의의 회차를 가리킨다.

필자 소개

손가영 8년간 언론사에서 사회부 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대학에서 기상과 기후 공부를 하며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학교를 마치고 좀 더 나은 기록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rockyrkdu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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