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시설장애인당(當) 공동대변인 기고①

탈시설장애인당(當) 로고 
탈시설장애인당(當) 로고 

저희 아버지는 올해로 82세가 되셨습니다. 아직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갈 만큼 건강하시긴 하지만, 계단 한 칸 오르는 걸 많이 힘들어하시고, 설 차례상 앞에서 절 한 번 하는 것도 허리가 아파 어려워하십니다. 요사이 제 주변 지인들 부모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옵니다. 그럴 때마다 이게 곧 저에게도 닥칠 일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아버지는 얼마 전 한 분 남은 누님(저에겐 고모님)을 뵙고 오셨습니다. 길에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고모님은 파킨슨병에 코로나까지 걸린 상태로, 고향인 부산의 요양병원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먼 길을 달려 부산에 다녀오셨지요.

그로부터 얼마 후, 아버지는 가족들이 있는 자리에서 고모님을 뵙고 온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차로 7시간을 달려 도착한 요양병원에서 면회 시간은 고작 10분 정도였다고 합니다. 고모님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나 여기 있기 싫다. 답답해 못 살겠다. 나 집에 좀 보내줘”라는 말을 되풀이하셨다고 했습니다. 요양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 눈에는 요양병원이 제법 깨끗하고 시설도 괜찮아 보이긴 했답니다. 그런데 고모님 얘기를 듣고 다시 병원을 보니 ‘이건 그저 병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드셨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가져다주는 밥 먹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곳. 물론 아픈 곳은 돌봐주겠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어떤 일도 기대할 수 없는 ‘시설’. 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더 늙어도 요양병원 가고 싶지 않다. 너희들 걱정은 안 끼칠 테니 난 집에 있으련다.”

집에 계시겠다는 아버지 말씀을 들었을 때, 그건 아버지가 결정하실 문제라는 생각과 함께 솔직히 걱정되는 마음도 생겼습니다. ‘갈수록 몸이 더 불편해지실 텐데, 그럼 내가 돌봐드려야 하나? 나도 일이 바쁜데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이 불편한 마음과 함께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막상 앞으로 닥칠 일을 생각하니, 쉬운 문제가 아니더군요.

‘어딘가에는 괜찮은 요양병원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이곳저곳 알아보기도 했습니다. 최신 의료 장비를 갖춘 곳, 맨발로 걷는 산책로가 있는 곳, 가족처럼 돌본다는 곳 등등. 요양병원은 곳곳에 정말 많았습니다. 시설이 좋은 곳도 있고, 친절한 직원들이 있는 곳도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고모님과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집에 있고 싶다고. 하루 종일 누워만 있어야 하는 병원 말고 집에 있고 싶다고. 비록 몸이 불편하더라도 병원에 갇혀있기는 싫다고.

아버지와 고모님을 보며 저의 미래도 조금 걱정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늙고 병들 텐데, 심지어 나는 걱정이라도 해줄 자녀마저 없는데. 그럼 나도 영락없이 요양병원에 들어가야 하나? 온종일 병원 천장만 바라보며 살다 가야 하나? 왜 그래야 하지? 난 정말 그러고 싶지 않은데!

구교현. 사진 필자 제공
구교현. 사진 필자 제공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제도도 장애인과 비슷하게 대부분 시설에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구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도, 돈 많은 부자도, 장애인거주시설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다던 이준석 씨도, 전장연의 지하철 행동에 손해배상 소송을 건 오세훈 시장도, 노인이 되어 갈 곳 없고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요양병원에서 만나는 신세가 될지 모릅니다. 내 집과 우리 동네에서 살 수 있는 복지와 서비스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시설에 대한 반대는 무슨 대단한 이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하루하루 소중한 내 삶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지 없는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의 문제입니다. 우리 아버지와 고모님의 문제이자 나의 문제인 것입니다.

저는 ‘탈시설’을 강력히 지지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탈시설이 많이 이야기되길 바랍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있다는 이유로 시설에 가두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정치인들에게 끈질기고 거세게 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탈시설장애인당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고 여타 당의 후보들에게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내 집에서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환경, 만들고자 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겁니다. 그걸 어떻게 더 잘할지 정하는 것이 정치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이번 총선에서 탈시설이 논란이 되고, 화두가 되고, 이슈가 되고, 갑론을박 될 수 있도록, 탈시설장애인당의 활동에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필자 소개

구교현.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탈시설장애인당(當) 공동대변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작권자 © 비마이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