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정신적 장애를 형제·자매로 둔 2~30대 청년 자조모임 ‘나는’

나의 이야기는 말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 곁엔 장애가 있는 형제·자매가 있고,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엄마가 있다. 엄마가 충분히 힘들어 보였으므로, 나는 ‘손이 덜 가는 아이’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쳤다. 실수하지 않는 아이, 공부 잘 하는 아이, 바른 아이, 그러니깐 ‘완벽한 사람으로서’ 존재해야 했다. 부모님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완벽한 아이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동안 내 안은 썩어갔다. 그러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났다. 2015년 12월, 겨울(가명, 30세)과 가넷(가명, 27세)은 장애 형제·자매가 있다는 공통점만으로 친밀해졌다. 겨울에겐 중증자폐성장애 여동생이 있다. 동생은 겨울보다 한 살 어리다. 가넷에겐 세 살 어린 경증자폐성장애 남동생이 있다.

이들은 2016년 1월 정신적 장애(자폐성·지적·정신장애)를 가진 형제·자매를 둔 2~30대 청년들과 함께 자조모임 ‘나는’을 만들었다. ‘나는’에 모인 이들은 지난 2년간 매월 1~2회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고이고 썩었던 상처가 흐르면서, 나를 표현할 언어를 찾아 헤맸다. 그 언어가 대담과 에세이로 3월 중순에 발간되는 책 <나는;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에 담겼다. 장애인의 형제·자매가 직접 자신의 목소리를 담은 국내 서적으로는 첫 출간이다.
 

‘나는’은 출간에 앞서 3월 초까지 스토리펀딩을 진행했다. 책에 실릴 원고들을 조금씩 내보였는데 비장애형제·자매로서 공감한다는 응원과 지지를 받았다. 펀딩도 목표액 1000만 원을 훌쩍 넘긴 125%의 목표달성률로 성공적이었다. 이 삶이 말할 가치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다만 아무도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임을 깨달았다.

지난 2월 24일, 서울 고속터미널역 근처에서 겨울과 가넷을 만났다. 이들은 ‘장애 형제로서의 나’라는 소유격의 삶에서 ‘온전한 나’로서의 삶을 찾아가는 중이다. 그 시간의 경로에 자조모임 ‘나는’이 있다. 이들은 인터뷰 중 자주 ‘이것은 나의 경험이다,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마치 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타자에 의해 규정당했을 때의 당혹스러움을 잘 아는 사람의 예민함, 혹은 신중함의 표현처럼 읽혔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폐성 장애 형제·자매를 둔 겨울과 가넷, 혹은 ‘나는’에 참여했던 30여 명의 비장애 형제·자매의 이야기이다. 분명 존재하나 선명히 드러나지 않았던, 정신적 장애 형제·자매들의 목소리를 조심스레 띄운다.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 다음 스토리펀딩 이미지
'어떤 비장애형제들의 이야기' 다음 스토리펀딩 이미지

# 장애형제에 대해 누구와도 이렇게 말해본 적 없었어요

- ‘나는’은 처음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겨울 : 제가 먼저 제안했어요. 사실 전 비장애형제로서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해보지 못했고 ‘동생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회복지를 전공했어요. 그런데 20대 중후반이 되면서 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되더라구요. 장애형제와는 앞으로 어떻게 지내야 할까, 부모님이 내게 거는 기대가 점점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게 장애인의 형제로서 오는 고민이라 생각해서 ‘다른 비장애형제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궁금했어요. 아는 교수님 통해 가넷을 만났는데 얘기가 정말 너무 잘 통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도 만나보자, 해서 이후 (가넷을 포함해) 4명이 만났는데 너무 잘 통해요. 정답은 없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고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모임을 시작하게 됐어요.

가넷 : 저 같은 경우엔 ‘비장애형제’라는 이름으로 나를 정의해본 적이 없었어요. 내가 겪는 문제나 어려움이 동생 때문이 아니라고 외면하려 했어요. 내 인생에 동생이 끼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처음에 아무 기대 없이 만났는데 너무 좋아서 이런 모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조금 하게 됐죠. 동생에 대해 다른 사람이랑 길게 얘기해본 적이 없었으니깐.

- 정신적 장애를 둔 2~30대 형제·자매로 장애 유형과 연령대를 한정한 이유가 있나요?

겨울 : 연령대별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다르니까요. 20~30대엔 진로나 결혼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장래를 준비해야 하는 시기잖아요. 신체장애랑 구분한 것도 공통적으로 묶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신체장애는 신체는 불편하지만 자기 의사가 분명하잖아요. 반면 동생은 항상 제가 보호자로서 ‘돌봐야 하는’ 존재예요. 사실 정신적 장애 형제의 의사를 얼마나 존중해야 할까, 늘 고민돼요.

- 어떤 경우에요?

겨울 : 제 동생은 중증 자폐성장애인데 종이 자르는 걸 되게 좋아해요. 하루종일 자르게 놔둘 것인가, 그만하게 하면 싸움이 일어나요. 다른 친구는 오빠가 물 많이 마시는 걸 좋아하는데 이게 건강을 해칠 정도예요. 말려야 하는데 그러면 싸우고. 정신적 장애인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고민 같아요. 어디까지가 그 사람(의 성격·욕구)이고, 어디까지가 이 사람의 장애 특성인지. 어디까지를 존중해야 하고 어디서부터 개입이 들어가야 하는지 어려워요. 내 역할에 대한 고민도 들고. 어릴 때부터 계속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해요.

- 스토리펀딩에도 그런 삶의 고민이 사회복지나 특수교사를 선택하도록 진로에 영향을 미친다는 글들이 있던데, 그래서 겨울도 사회복지를 전공한 거예요?

겨울 : 네,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있지만 지금은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진 않아요. 모임에 사회복지, 특수교육 쪽 공부한 사람들이 많아요. 장애 형제에 대한 부양 때문에 부모님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많이 기대해서 선생님, 공무원도 많이 생각하고. 그래서 모임에 나오는 분들에게 한 번씩 물어봐요. ‘그거 진짜 좋아서 선택한 거야?’ 이미 직장 있는 분들은 진로 변경이 어렵지만 대학생분들은 가능하죠.

- 겨울은 그 물음 끝에 ‘아니다’라는 답을 얻은 건가요?

겨울 : 사회복지사로서는 아닌 거 같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어요. 복지 쪽 관심이 많아서 복지 관련 일은 하고 있어요.

‘나는’은 느슨한 모임이다. 이제까지 ‘나는’에 참여한 사람은 총 30여 명 정도로 한 번 모임에 6~8명 정도가 참여한다. 책엔 7명의 이야기가 실렸으며 이중 정신장애(조현병)를 형제·자매로 둔 사람은 1명이다. 이들은 정신장애인을 형제·자매로 둔 사람을 더 만나고 싶으나 정신장애인을 ‘예비범죄자’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때문인지 쉽지 않다고 했다.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억압처럼 들리는 말들을 그린 삽화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억압처럼 들리는 말들을 그린 삽화

# 내가 살기 위해 만든 모임 ‘나는’

- ‘나의 형제가 나와 다르구나’를 언제 처음 인식했어요?

가넷 : 초등학교 들어가면서요. 그 전까진 잘 모르다가 친구들 만나면서 ‘내 동생이 조금 다르네’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다른 외부세계와 접촉하게 되면서부터인 거 같아요.
 

겨울 : 친구가 ‘너네 동생 왜 그래?’라고 물어볼 때. 엄마한테 가서 물어보는 거예요. ‘엄마, 얘 왜 이래?’ 그런데 장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 듣지 못하고 ‘아픈 거야’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래서 전 동생이 머리를 다친 줄 알았어요. 부모님들은 쉽게 설명해준다고 한 거 같은데 비장애형제들 입장에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더 어려워지는 거죠.

가넷 : ‘마음이 여려서 그래’라고도 많이 답하세요. 부모님이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거 보고 저는 ‘부끄러워서 말 못 하는구나’라고 받아들인 거 같아요. 눈치껏 ‘아, 이건 말하면 안 되는 거구나’ 생각했던 거 같고.

겨울 : 여기에 더해서 사회에 정신적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있기 때문에 초등학교나 중학교 시절엔 아마 친구들한테 장애 형제가 있다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고 숨기고 싶어 하는 마음이 클 거 같아요. 20대가 되어서도 사람을 만나면 장애 형제의 존재를 밝힐 것인가, 이런 고민도 많이 하게 되는 거 같고. 내 연인에게 설명해야 하나, 친구에게 설명해야 하나? 설명한다면 ‘어떻게’ 말할 것인지. 그런 고민을 항상 하는 거 같아요.

- ‘같았다’라는 건?

겨울 : 사실 저 같은 경우엔 (좀 다른데) 20대 초반까진 ‘장애인의 언니’라는 게 저의 강한 정체성이어서 당연히 이야기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내가 씩씩하고 바른 사람임을 설명하기 위해서 동생의 장애를 이용한 것도 있죠. ‘나는 이런 동생이 있지만 나는 이렇게 멋진 사람이야!’ 이런 생각을 하신 분들이 있더라구요. 그런데서 죄책감을 많이 느낀 분들도 있고. 20대 후반에 나에 대한 고민과 함께 ‘내가 장애인의 언니가 아니라면 누굴까’라는 생각에 일부러 다른 사람에게 말을 안 하기 시작했어요. 장애형제 말고 얘기할만한 뭔가가 내게 있을까? 처음엔 없더라구요. 날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면서 취미 생활도 해보고, 이런저런 책도 읽으면서 또 다른 저를 쌓으려고 노력한 거 같아요.

- 모임 이름이 ‘나는’인 것도 그런 것과 관련 있을까요?

가넷 : 네. 모임 시작하고 읽을거리를 찾는데 국내엔 정말 없어요. 번역서 단행본으로 <장애아의 형제자매>(케이트 스트롬, 한울림스페셜) 딱 한 권 있어요. 그러다 미국 쪽에서 아동기 형제자매를 위한 도서 라는 책을 발견했어요. 엄마·아빠에게 ‘나는?’ ‘나는 어떡해?’라고 물어보는 거거든요. 비장애형제들이 어릴 때부터 마음 한쪽에 품고 살아가는 질문이에요. 누군가 알아주길 바라면서. 하지만 더 이상 누군가에게 묻는 게 아니라 ‘나는 이렇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힘을 기르기 위해 ‘나는’이라고 지었어요.

겨울 : 비장애 형제들의 모임이면 ‘장애인을 도와주는 봉사단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세요. 우리는 ‘아니다, 이것은 나를 위한 모임이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서 ‘나는’이라고 지은 것도 있어요.

가넷 : 내가 살려고 만든 모임이죠. (웃음)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상처로 남은 말들을 그린 삽화
비장애 형제·자매에게 상처로 남은 말들을 그린 삽화

- 모임 시작하고 나서 두 분은 어떤 변화들이 있어요?

가넷 : 전 동생이 내 삶에 가지는 영향을 축소해서 생각하려 했어요. ‘별거 아닌데 뭐’ 하면서. 그런데 사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들, 예를 들면 죄책감, 미안함, 속상함 등이 있었던 거에요. 이런 감정 느껴도 괜찮았던 거구나, 이런 생각 해도 괜찮은 거구나, 내가 잘못된 게 아니구나, 그게 제겐 위로가 많이 됐어요.

겨울 : 저 건강해졌어요. (웃음) 2년 전 모임 시작할 땐 너무 힘들고 우울해서 상담도 받고 있었어요. 가넷이 작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전 크게 생각했던 거 같아요. 장애인의 가족이라는 게 제겐 무거운 짐이었는데 좀 가벼워진 거 같아요. 부모님께 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많았어요. 부모님이 내게 거는 기대와 그에 대한 부담감. 그런데 모임에서 ‘부모님이랑 한 번 싸워야 한다, 부모님께 그런 이야기 해도 돼’라고 해주는 거예요. 그래서 용기 내서 부모님에게 속마음을 이야기했어요. 사실 전 현재 진행형이에요. 가족 안에서의 관계를 재구성하고 있어요. 가족 내 제 위치를 다시 생각해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고, 진짜 위로가 많이 됐어요.

- 어떤 이야기가 부모님께 가장 하기 힘들었어요?

겨울 : 저는 (침묵) 엄마가 너무 힘들어 보였어요. 여기서 내가 조금만 더 짐을 얹어주면 엄마가 세상을 떠날 거 같았어요. 그래서 나도 힘들다는 이야길 못했어요. 그런데 나도 힘들었거든요.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한번 말한 적 있는데 그때 ‘너까지 왜 그러니’, ‘너까지 이러면 나 죽는다.’ 그런 이야길 들어서. 그런데 모임에서 용기를 얻어서 다시 말해봤어요. 엄마한테 ‘내 노력을 인정해달라’고. 내가 노력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고. 내가 잘 하는 거, 실수 안 하는 거, 공부해서 성적 잘 받는 거, 내가 바른길로 가는 거, 내가 다 노력해서 한 거다. 내가 원래부터 이런 사람이었던 게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한 건데 부모님은 이런 내 모습을 너무 당연한 거로 아는 거예요. 여기서 더 잘하길 바라는 거죠. 이제는 더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직장도 더 좋은 데를 가고.
부모님들은 비장애 아이를 비교적 손이 덜 가는 아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부모님께 손이 덜 가려고 진짜 노력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부모님들은 그것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 가넷도 부모님께 가장 하기 힘들었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가넷 : “엄마가 쟤만큼 나한테 신경 써준 적 있어?” 딱 한 번 해봤어요. (침묵) 못하죠, 다신. 스물한 살 땐가, 엄마랑 싸우다가 갑자기 그 말이 튀어나왔어요. 저는 제가 그런 생각을 가진지도 몰랐어요.

- 다시 말하지 못한 이유가 있어요?

가넷 : 엄마를 상처입히고 싶지 않으니깐. 그 말을 들었을 때 엄마의 표정을 봤으니깐. 

겨울 : 사실 그 상황에서 엄마가 더 할 수 있었던 것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가넷 : 맞아요. 엄마는 최선을 다했어요. 다만 내가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엄마가 알고 ‘알았다’고 말만 해주면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다음에 그 상처를 끌어안고 가든, 극복하든 그건 제가 할 일이니깐.

>> 정신적 장애를 형제·자매로 둔 2~30대 청년들의 모임 ‘나는’ 홈페이지  http://www.nanu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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