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 3-6구역의 입정동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광신공업사 이영건 씨는 요즘 매우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 1980년부터 일을 해왔는데 작업장 건너편은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느라 공사판이 벌어지고, 자신은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산업생태계란 ‘자연의 생태계처럼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자원을 활용해 제품을 생산하는 산업 활동’을 말한다. 이러한 산업생태계가 오랜 시간을 거쳐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곳이 청계천 을지로 주변이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비록 미로 같은 골목이지만 열심히 발품 팔아 부품을 수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현 대외협력실장을 처음 만난 건 약 20여 년 전 장애인 이동권 투쟁 때입니다. 당시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매일 외출할 수 있는 장애인은 전체의 59.6%에 불과하다는 조사가 있었습니다. 집 밖 활동 시 불편함이 있다고 응답한 장애인도 전체의 6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해 집 밖 활동을 할 수 없고, 그로 인해 외출 횟수를 줄여야 해서 결과적으로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지 못하고 단절되는 삶을 사는 것이 장애인의 현실이었습니다. 그 후 박현 씨를 장애인 집회나 행사 때마다
2월 21일 노량진 전철역 앞, 흙 묻은 조끼가 뒹굴고, 케첩이 아스팔트 위에 피처럼 흩어졌다. 누군가의 벗겨진 장화 한 켤레는 새벽 참상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전국이 코로나바이러스-19 공포에 빠져 있을 무렵, 설마설마했던 노량진 수산시장 행정대집행이 끝났다. 용역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 아침 햇살이 처연히 반짝인다. 할매(68세 한상희)는 경찰의 소매를 붙잡고 눈물을 흘린다. “고양이 두 마리가 포크레인에 찍혀 쓰레기차에 실려 갔어요……” 이 난리에 고양이라니, 경찰은 황당한 표정으로 그 팔을 뿌리치고 자리를 떴다. 한쪽 눈이
여기 성곽 아래 작은 동네가 있습니다. 잘 다듬어진 골목길을 걷다 보면 작은 평상이 보입니다. 따뜻한 햇볕이 드는 날이면 동네 주민들이 평상 위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마을의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기 위해 분주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골목에서는 막혔으면 돌아가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일 테지요. 조금 더 시간이 걸릴 뿐이랍니다. 사람 사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요? 서서히 저물어 가는 저녁 해를 바라봅니다. 아주 짧은 시간 푸르른 빛으로 바뀌면서 하나둘씩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창가
2009년 1월 20일 동틀 무렵 서울 용산의 ‘남일당 빌딩’이 화염에 휩싸였다. 경찰 특공대 진압 작전이 시작된 지 약 30분이 지난 오전 7시 5분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컨테이너에 타고 있던 경찰 특공대가 망루 해체 작업을 시작했고, 이들이 탄 컨테이너가 망루에 충돌했다. 망루 안 계단이 무너졌고, 신나 등 유류물이 흘러내렸다. 경찰은 망루를 향해 물을 뿌렸지만, 오전 7시 25분 망루 전체로 불이 번지면서 망루는 붕괴했다. 경찰 특공대의 진압 작전은 안전 보호 조치를 모두 갖추고 마지막 보충적으로 현장에 투입돼야 했다. 하지
어떤 이가 나무 옆에 앉아 밥을 먹는다. 비둘기들이 옆에서 나란히 식사한다. 나뭇잎 덕분에 햇빛과 그늘이 교차하는 얼룩덜룩한 배경이 펼쳐졌다. 길에서, 그것도 혼자서 먹는 밥 한 끼의 의미가 가벼워 보이진 않다. ‘무거워 보인다’라는 것이 더 어울리는 거 같다. 하지만 비둘기가 있고 비둘기를 쫓아낼 생각도 없는 점심 한 끼는 최소한 심각해 보이지는 않는다. 부자나 빈자나 모두 한 끼의 점심을 먹는다. 식단의 차이가 있겠으나 밥의 의미엔 차이가 없다. 또 어떤 이는 서울역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다. 아스팔트 냉기가 뼛속까지 치
겨울을 알리는 진눈깨비가 거리를 적시고 있었다. 삐삐가 요란하게 울렸다. 1995년 11월 28일 오전 10시경, 인천 아암도 농성자 중 한 명이 망루에서 어통소 쪽 50m 정도 떨어진 바닷가에서 시신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망루에서 농성하던 장애인 노점상 이덕인의 실종을 알리는 소식이었다. 장애인이었던 그에게 세상은 삶의 기회를 열어주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길은 노점상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가혹한 단속과 멸시에 시달리자, 그는 인천 아암도 바닷가에 망루를 설치하고 농성에 돌입한다. 하지만 실종된 지 사흘 후, 온몸
매년 10월 17일 즈음이면 가난한 이들이 모여 자신의 사회적 요구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투쟁하는 일정이 전개된다. 올해 ‘빈곤철폐의 날 퍼레이드’는 12일 청계천 광교에서 개최되어 광화문을 거쳐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했다. 1999년, 시혜가 아니라 권리로써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만들어졌지만, 장애인 노점상 최옥란 씨의 죽음(2002년)에서 알 수 있듯이 가난한 이들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후 10월 17일 UN이 정한 ‘세계 빈곤퇴치의 날’을 기점으로 빈곤퇴치가 아니라 ‘철폐’가 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로 가난한 사람들이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8년 뒤 온실가스로 지구 온도는 1.5도 높아진다고 한다. 텔레비전에서는 북극 얼음이 녹고 황폐한 땅 위에 북극곰이 더위에 몸부림치는 장면이 나온다. 식물이나 동물이 멸종될 위험에 놓인다. 바닷물이 차오르는 섬나라 주민들은 기후난민이 되어 고향을 떠난다.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구 위 모든 것이 재앙에 빠진다. 기후가 변하면 식량도 부족해진다. 매년 여름 폭염 때문에 가난한 이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나. 하지만 성장과 이윤에 눈먼 자들, 그리고 정부는 닥쳐오는 생존과 안전을
오랜만에 장애인 투쟁에 참석한 후배가 뙤약볕을 걷다가 뭐라고 중얼거린다. “그런데 장애등급제는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나 보네…” 조금 엿들은 기억을 살려서 후배에게 훈수를 둔다. “말로는 장애등급제를 폐지한다고 하지만, 실제 예산을 올려서 충분한 서비스 지원이 되어야 ‘진짜’ 폐지지 안 그래? 방금 집회 사회자가 그러잖아. ‘장애인연금, 활동지원, 주간활동’ 등 예산의 획기적 확대가 필요하다고.” 마침 육교 위에서 현수막을 내린 채 한바탕 목소리를 높인다. 나도 잘 모르는 내용을 또 질문할까 봐 카메라를 들고 육교 위로 올라간다.
9일 오전 6시경부터 시작된 노량진수산시장 10차 명도집행은 구 시장의 모든 점포에 대한 명도완료가 아니었다. 법원 집행관은 명도완료를 선언하고 수협은 보도자료를 통해 모든 점포가 폐쇄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명도집행은 개인의 사유재산에 대한 집행이기에 그 절차가 매우 까다롭고 신중해야 한다. 관련 법률에도 집행과정은 합법적 절차를 준수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날의 명도집행은 최소한 3곳의 점포에 대해 명도를 시작조차 하지 않았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부대시설 역시 명도가 완료되지 못했다. 더욱이 집행을 할 수 없
휴가 떠날 곳을 찾는 이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그리 멀지 않다. 1호선 전철을 타고 노량진역에 내리면 된다. 출입구를 나오면 멀리 우뚝 솟은 굴뚝, 길게 뻗은 육교가 보일 것이다. 들어오려면 좀 복잡하다. 커다란 콘크리트로 막아놨기 때문이다. 등산한다는 심정으로 오면 어려운 것도 없겠다. 곳곳에 해골과 철거를 알리는 으스스한 낙서가 ‘레트로’ 한 분위기다. 법률에 근거하면 시장개설자와 책임자는 명백히 서울특별시이지만,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서울시장마저 외면하는 곳. 6천여 명의 서울시민이 요구한 공청회조차 거부하며, 국
장애인들이 한강 다리를 건너고 있습니다.10년의 투쟁과 1,842일 광화문 지하도 농성의 성과로 장애등급제가 31년 만에 폐지가 시작된 날이었습니다.하지만 ‘진짜’ 폐지되기 위해서는 또 기나긴 싸움이 필요하겠지요.가짜가 진짜가 되도록 힘과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길바닥에 뒹굴며 구르는 돌멩이처럼 단 하루를 살더라도새처럼, 구름처럼 맑은 자유 누리며 하늘 훨훨 날아 사람답게 살겠다고... 2019년 6월 22일 대장암 투병 중 고인이 된 박정혁 님이 쓴 시 “우린 단지 지옥을 탈출했을 뿐입니다”를 인용했습니다.영혼조차 황폐하게 만든다는 시설을 나와 2005년 겨울 서울대공원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구원 씨는 충주에서 상경해 스무번째 서울 퀴어 퍼레이드에 참석했습니다.그런데 한쪽에서는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가 열렸습니다.집회 참석자들은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등이 적힌 팻말과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칩니다. 세상에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있듯이 다양한 성소수자도 언제 어디에나 있습니다.그저 다양한 사람만 있을 뿐 정상과 비정상은 존재하지 않는 거죠.구원 씨는 모처럼 푸른 하늘과 많은 사람을 벗 삼아 한판 신나게 축제를 즐겼습니다.
올해 72세이신 박순선 어머니는 노량진 구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파신다.40년 청춘을 바쳐 장사한 대가로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불편하시다. 지난 4월 27일 수협중앙회에서 거대한 콘크리트 벽을 시장 주변에 쌓아놔 출입을 봉쇄했다.늙은 상인은 생선 피 냄새 진동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운다수협중앙회 회장은 불법 선거로 구속되기 직전이다. 썩은 냄새가 스멀스멀 풍긴다. 박순선 어머니는 평생 이런 수모는 처음 겪는다고 한다.용역깡패의 진저리치는 욕설을 뒤로하고 불편한 몸을 이끌고 또 생선 팔러 가신다.
4월이 되면 수성 거리며 봄꽃이 피어난다장애인을 둘러싼 이야기도 함께 피어난다"누구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네아직도 살만한 곳이지희망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네"사랑을 베푸는 이웃들이 벌처럼 날아들었다불굴의 투지로 장애를 극복하고 열매를 맺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아픈 가지에 새순이 나듯장애인들은 동정 따윈 필요 없다며 거리로 나섰다"장애등급제 폐지하라"는 소리도 들린다벚꽃은 하얗게 떨어진 지 오래다화들짝 봄이 지나간다* 김승환, 54세. 인천 작은자 야간학교
홀로 아이를 키우던 그녀는 장애인이었다.청계천 노점상이었다.가난한 이들에게 제공한다던 ‘기초 생활 보장제도’는출발부터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에 턱없이 부족한 제도였다.게다가 그녀는 가혹한 노점단속과 멸시에 시달렸다. 2002년 3월 26일 새벽, 봄소식으로 충만할 무렵그녀의 운명은 더 이상 피어나지 못하고 나뭇잎처럼 떨어졌다.세상은 삶의 기회를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다. 청계천 복원공사로 노점상이 탄압받을 때도,홀로 아이를 키우는 여성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기초법의 한계와 개정의 목소리를 높일 때도,그녀의 이름은 어김없이 거론되었다.
2014년 4월 20일입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며 고속버스에 탑승하려고 했던 장애인을 향한 경찰의 최루액 분사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하여 법원은 “경찰의 분사기 사용은 목적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했고, 부득이하게 필요한 최소 범위 내에서 절차대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도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고속버스를 이용하겠다는 것을 두고 최루액을 쏘며 저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장애인이 사회적 약자라는 점은 신체적 육체적 불편뿐만 아닙니다. 아직도 사회적 편견의 벽은 높기만 합니다.
골형성부전증을 가진 라나 씨의 딸, 연수의 첫돌입니다.(관련기사: 같은 장애 가진 아이와 저, '여기서 함께' 행복하고 싶어요) 맞아요. 우리는 모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우리에게 와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