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전문에 따르면, ‘장애’의 개념은 ‘손상’ 그 자체가 아니라 손상을 지닌 사람들의 사회 참여를 저해하는 태도 및 환경적인 장벽 간의 ‘상호작용’이라고 한다. 탈시설운동은 이처럼 ‘손상’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손상을 지닌 사람들을 둘러싼 환경 간의 ‘상호작용’을 문제 삼았고, 장애인의 사회 참여를 촉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회 변화를 만들어왔다. ‘혼자서 아무것도 못 한다’거나 자립생활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졌던 중증장애인이 함께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들자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로 탈시설하여 살 수
한국에 찾아온 난민이 겪는 삶의 공간들은 ‘집’일까 ‘시설’일까. IL포럼에 참여하면서 난민을 둘러싼 공간들을 ‘시설화’의 관점에서 다시금 질문해 보게 되었다. 어떻게 난민은 시설에 갇히는가? 누가 난민을 시설에 가두는가? 어떻게 시설 밖으로 ‘탈(脫)’할 수 있을까? 난민인권센터에서 목격한 이야기들을 꺼내며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마리아(가명)는 본국을 탈출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 후 영종도에 있는 출입국외국인지원센터에 6개월 동안 머물렀다. 그곳은 국가가 운영하는 숙소였는데, 외출하려면 허가를 받아야만 했고, 정해진 일
미국 시카고 자립생활센터에서 10대 장애여성들과 오랫동안 일해 온 장애운동가이며 작가인 수전 너스바움은 2012년 소설 『좋은 왕 나쁜 왕』1)을 발표했다. 이 소설은 장애인 시설2)에서 일어나는 삶과 폭력, 생존과 투쟁을 그리고 있다. 이 소설의 제목은 작가가 수집했던 신문기사에서 비롯되었다. 뉴욕주 한 시설의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에 뒷좌석에서 계속 일어서는 13세 소년을 ‘보조인’이 깔고 앉아 제압했고, 결국 이 아동이 숨지는, 아니 살해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기사에 따르면, 몸부림치며 저항하는 아이에게 ‘보조인’은 “난
2009년 시설비리를 폭로하며 마로니에 공원 노숙농성으로 서울시에 탈시설 자립생활 정책을 요구한 ‘마로니에 8인’부터 현재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에 이르기까지, 탈시설 운동은 진보 장애계의 중요한 의제였다. 진보 장애계는 셀 수 없는 농성과 행진, 치열하고 처절한 투쟁으로 ‘서울시 장애인 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을 이루어냈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와 장애인거주시설 연계 장애인자립지원사업(아래 거주시설 연계사업)’은 서울시가 진보 장애계의 요구에 응답하기 위해 2013년부터 추진해 온 사업 중 하나로 장애인 거주
시설의 세 가지 경계 시설은 ‘경계’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서 경계는 크게 세 가지로 이야기될 수 있다. 첫 번째 경계는 물질적 경계(physical boundaries)로, 만져질 수 있는 건조물의 형태를 띤다. 예컨대 시설이 하나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을 때는 해당 건물 자체의 외벽이, 시설이 두 개 이상의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을 때는 시설 전체를 아우르는 벽이나 울타리가 이러한 물질적 경계에 해당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경계(social boundaries)로, 지속적이거나 분절적인 시간들 속에서 ‘시설’이라는 기관의 성
화재 사건으로 본 두 개의 ‘수용소’ 이 기획은 장애인, 노숙자, 난민, 미혼모 등 다양한 비규범적 주체들을 시설에 ‘보호’하려는 시도가 사실은 이들에 대한 사회적 격리와 배제를 초래한다는 것을 드러내는 시도이다. 나는 성매매피해여성과 관련한 꼭지를 맡게 되었는데, 사실 이 주제는 이러한 시리즈 기획에 꼭 들어맞지는 않는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운동으로서의 반성매매 활동이 전개되어 온 역사적 진행 과정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다음 두 가지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진보’ 여성 운동계의 오랜 요구와 활동으로
- 시설은 어디인가? 시설은 단순히 물리적인 장소로서의 분리나 유예된 시간, 폐쇄된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인간의 상이 무엇인지를 호명하는 메커니즘이다. 장애인 시설, 미혼모 시설, 요보호시설 등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함께 공존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 누구인가를 적극적으로 호명하는 기제로 작동해 왔고, 어떤 이가 시설에서 고립되는 원인을 존재에 내재한 문제로 만들어왔다. 국가와 사회가 시설에서의 삶을 정당화하고, 시설로 보내질 인구집단을 분류하는 근거는 ‘가족을 만들 수 없는, 만들어서도 안 되는 혹은 가족에게조차
가브리엘의 시간 2003년 가을에 윤가브리엘을 만났고, HIV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낙인에 지속해서 대항하기 위해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아래 나누리+)를 만들자는데 의기투합했다. 그는 2004년부터 나누리+ 대표를 맡고 있다. 같이 보낸 15년은 제약회사와 정부에 항의하고 요구했던 시간이면서 윤가브리엘이 아프고 기력을 회복하고 아프고를 반복했던 시간이기도 하다. 나는 전자에 비해 후자는 개인이 감내해야 할 개인적인 시간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벌어진 일, 모든 요양병원이 에이즈환자를 거부하는 상
몇 년 전 청소년 한명이 거리 아웃리치 활동가인 나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이런저런 노력을 해도 다 안 되는데, 내 편이 없다고 느껴지는데, 어떤 공간에도 들어가면 쫓겨나는 인생을 살고 있는데, 나랑 같이 살면 안 되겠냐”고... 이것은, 10살이 되기 전 아버지로부터 보육원에 맡겨졌고, 보육원에서는 형들로부터의 폭력을 견디기 어려워 고통을 호소하는 그를 방관하던 실무자들을 믿을 수가 없어 보육원을 떠나, 5년이 넘도록 쉼터들을 떠돌며 살아가는, 치유되지 않은 고통과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그의 절규 같은 것이었다. 내
/기획의도/ 장애여성공감은 [IL과 젠더 포럼]을 통해서 장애인 탈시설 운동의 문제의식을 확장하고자 시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삶을 통해 증명하듯이,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은 지난한 ‘과정’을 의미합니다. 단지 삶의 장소를 옮기는 것뿐만 아니라 시설에 수용된 역사를 재해석하고, 지역사회 안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과 관계 맺기를 해나가며,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인 조건과 권력의 변화가 필수적입니다. 이러한 ‘과정’은 시설을 폐쇄해서 더이상 시설에 갈 필요가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도 긴밀하게 연결됩니다. 또
미국 IL운동의 시작은 다양한 시민사회 운동과 맥락을 함께 하고 있으며 다양한 소수자 운동의 영향을 받으며 발전했다. 탈의료화·탈원화를 비롯한 1950년대 정신보건운동 역시 당시 미국의 IL운동에 많은 영감을 주었고, 향정신성 약물 개발을 통해 병원에 있던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로 나오게 된 배경은 탈시설이라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을 더욱 거세게 만들었다. 미국의 정신장애인 운동의 역사가 짧지 않고, IL운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음에도 한국의 정신장애인 운동은 다른 유형의 IL운동에 비해 역사도 짧고, 당사자 단체의 수도 많지
*이 글은 필자의 논문, The Biopolitics of Transnational Adoption in South Korea, Body and Society, [한국의 해외입양, 그리고 생명정치] Vol 21, no 1, 2015 (58-79)를 바탕으로 미혼모 시설의 논의를 확대시킨 것임. 한국전쟁 당시 구호사업으로 시작되었던 ‘해외입양’은 지난 65년 동안 20여 만명의 한국 태생의 아동들을 세계 15여 개국에 송출하였다. 그중 12 여 만명의 아동이 미혼모 아동이었다1). 한국전쟁을 전후로 해서 태어난 혼혈아동부터, 현재에
장소가 만들어 내는 차이 공간상의 좌표나 영토로서의 객관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 공간적 실천과 밀접한 관계 하에 경계 지어지고 규정되는 ‘장소’의 개념을 제안한 린다 맥도웰은 장소가 정체성과 긴밀한 연관을 지닌다고 하였다(『젠더, 정체성, 장소』). 갑작스런 임신으로 가족 없이 아이를 낳아야 하는 여성들, 남편의 죽음으로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여성들, 남편의 폭력 혹은 남편과의 갈등으로 위자료나 양육비 없이 생계와 양육을 함께 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필요한 ‘장소’는 무엇일까? 현재 전국 125개 생활시설과 4개의 복지상담소를
“노숙자가 늘어날수록 서울역 광장의 경관은 더 나빠질 것이고 노숙자에 대한 시민들의 혐오감도 더 커질 것입니다. IMF 위기로 인해 모든 것을 빼앗기고 빈곤층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분노한 IMF 노숙자들이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정부를 상대로 폭동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습니다. 따라서 일반인들이 노숙자와 마주치는 일은 위험합니다. 서울시는 노숙자들에게 정부가 (임시로) 제공하는 쉼터에 입소하라고 설득하고 있지만, 노숙자들이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중략) 서울시에서는 거리를 배회하거나 거리에서 잠을 자는 일을 불법으로 규정해
(이 글은 2018년 [IL과 젠더 포럼]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수정한 글입니다.) 시설폐쇄법, 탈시설운동 의미 확장의 기회 최근 시회복지법인 성심동원 산하 장애인 거주시설인 성심재활원[1] 직원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거주인 간 폭력을 지시하고, 이를 조롱하며 동영상 촬영한 사건이 세상에 알려져 많은 이들을 놀라게 하였다. 진보적 장애계는 시설에서의 인권침해는 오래전부터 지속된 문제이며, 이러한 사건들을 발생시키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활 교사 개인의 처벌을 넘어 시설 자체를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사회복지제도는 불평등을 해소할까 사람을 집단으로 구분하는 행위에는 딜레마가 따른다. 장애, 나이, 출신 국가, 가족 형태, 경제적 수준 등 개인의 특성을 이유로 사람을 구분 지으면, 그 행위 자체로 인해 낙인이 생길 수 있다. 반면, 소수자가 집단으로서 정체성을 표현하고 사회에서 가시적으로 그 존재를 인정받는 것은 시민권을 획득하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게다가 특정 집단이 지속적으로 불평등한 상태에 있다면, 이를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로서 사회가 집단을 구분해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때가 있다. 우리 사회의 사회복지서비스는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