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 그 환상 사람 대부분은 가족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에 대한 환상을, 그리고 가장 어려울 때 힘이 되는 마지막 보루인 가족에 대한 환상을 말이다.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 가족은 이런 환상에 들어맞는다. 하지만 오늘날 경제적 안정이라는 것은 얼마나 쉽게 깨어지는가. 경제공동체가 깨어지고 혈연의 가족이 남과 다름없어지는 순간 각자도생의 삶이 시작된다. 경제적 이유 말고도 가족 내에는 다양한 가족사가 존재한다. 가족이 불의의 사고로 홀로 남은 사람, 가정 안에서 소외되거나 단절된 사람, 미혼모·미혼부·독거
그는 발목이 보이는 스키니한 세로줄무늬 검은색 바지와 하얀 남방, 검은색 재킷을 입고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 바지는 평소 캐쥬얼하게 입는 바지인 듯했다. 그는 눈이 컸는데, 그 눈엔 긴장과 어찌할 바 모르는 당혹스러움이 서려 있었다. 그는 그날 장례식의 상주였다. 여름의 첫날인 2018년 6월 1일, 서울시립승화원 2층에 준비된 서울시 무연고자 장례추도식에서 김한석 씨(63세, 가명)의 장례식이 엄수됐다. 김한석 씨는 지난 5월 5일 간경변으로 성북구의 한 병원에서 사망했다. 그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아들이 그의 시신 인수를 포
과거 권위주의 정부하에서 국가폭력에 의해 의문의 죽음을 당한 많은 희생자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알 수 없기에 애도가 불가능했던 유가족들은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국가와 사회에 요구하는 싸움을 30년이 넘도록 전개해오고 있는데, 저는 이러한 싸움을 ‘애도의 정치’라는 차원에서 해석한 박사학위논문을 썼습니다. 제가 정의하는 개념에서 ‘애도의 정치’란, “의문사의 진실에 접근할 수 없게 하는 정치·사회적인 조건에서 의문사의 진실을 밝히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도록 국가와 사회에 호소하고, 촉구하고, 압박을 가함
- ‘정상장례’를 지탱하는 기반, ‘정상가족’ 6년 전 할머니가 87세의 생을 마치고 돌아가셨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던 청소년 시절 할머니는 나와 형을 돌봐주셨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도 항상 내 편이셨다. 결혼 전까지 내가 쓰던 방에서 6개월을 와병 생활하다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나는 할머니의 손을 잡고 마지막 눈인사를 했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서울시립동부병원 장례식장에서 검소하게 치러졌다. 나는 부조금을 받고 출납금액을 정산하는 역할을 맡았다. 3일장 동안 빈소 입구의 테이블에 앉아 조문객을 안내하고, 부조금을 받아 기록하
- 독촉받는 유가족들… “구청에 가자마자 듣는 말, ‘빨리 처리하자’” 10월 3일,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안 아무개 씨(가명)의 장례가 치러졌다. 서울시 공영장례로 치러진 안 씨의 장례에는 그의 형수와 조카며느리가 참석했다. 안 씨는 약 20여 년간 혈연 가족과 왕래 없이 지냈다. 으레 연고자가 시신을 지자체에 위임해 무연고 사망자가 된 경우는 장례비나 병원비, 시신 안치비, 혹은 고인의 부채 등을 모두 감당해야 하는 경제적 부담이 주요 원인이다. 그러나 안 씨의 경우에는 조금 달랐다. 안 씨의 형제들은 교수나 기업 사장으로 사회적
“서울시립승화원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어느 차가 고인의 운구차인지 차만 봐도 알 수 있어요. 보통 사람들은 리무진을 타고 오잖아요. 무연고자는 아니에요. 운구차에서 관 내려서 화장로까지 운구할 때 보면, 어떤 때는 시신 무릎이 안 펴져서 관 뚜껑이 안 닫힌 경우도 있고, 또 어떤 때는 관이 딱 안 짜져서 관에서 (시신) 물이 흐를 때도 있어요. 그런 걸 보면 기분이 섬뜩합니다. 가진 자들과 없는 자들 사이에 차이점이 많다고 느껴요. 똑같은 죽음인데도 마지막 가는 길에 돈 때문에 차이가 나는구나, 죽어서도 너무 힘들구나. 서울시에 공영
2016년 2월의 마지막 날, 무연고사망자 장례를 치르기 위해 도착한 서울시립승화원은 눈으로 덮여 있었고, 사람들의 검은 옷 색깔과 대비되어 하얗다기보다는 차가운 느낌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흑백의 풍경보다 이날 장례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장례를 치른 분이 바로 러시아 국적의 여성이었기 때문입니다. 1961년생 고(故) 슐라예바 루○○○(Shulayeva Lu*****)라는 이름을 한글로 적은 위패를 들고 운구차 앞에 서있는 경험은 무척이나 낯설었습니다. 고인은 경기도의 한 도시에 거주하다 2015년 12월 말 심
- 우리는 살아도 쪽방, 죽어도 쪽방이오 “내가 지금까지 이 동네 주민 한 팔십다섯 사람 장례 치러 줬을 거야. 싹 다 무연고자지 뭐, 나도 죽으면 그렇고.” 김정길 씨가 호탕하게 웃으며 말한다. 그가 앉아있는 곳은 동자동 새꿈희망 방범초소. 그는 쪽방촌이 있는 동자동의 방범대원이다. 명칭은 '방범'이지만 그가 실제로 하는 일은 범죄와 거리가 멀다. "동네 사람 누가 한동안 안 보인다, 그러면 방 앞에 가서 문을 두드려보다가 대답이 없으면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어요. 혹시 죽었나. 얼마 전에도 한 사람이 방에서 죽어서 방치우느라 얼마
김홍구 씨(가명)는 인터뷰를 몇 차례나 거절했다. 처음 전화를 했을 때 그는 “나중에 전화하겠다”며 서둘러 끊었다. 그 뒤로 연락은 없었다. 몇 번 더 전화했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어쩌다 통화가 되면 “일 때문에 피곤하다”는 말만 남길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저녁에 전화를 걸어왔다. 이야기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 답답하다며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며 인터뷰를 취소했다. 승낙과 거절을 몇 번씩 반복하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인터뷰에 응했다. 김홍구 씨의 부인 고 강미순 씨(6
- “시설에서 죽으면 개죽음이야, 그냥 증발하는 거야” 김동림 씨(만 55세)는 1987년 9월 17일, 경기도 김포의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9년, 시설에서 나올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장례식에 가본 적이 없었다. 22년간, 단 한 번도 ‘아무개가 죽어 장례식을 치르니 원하는 사람은 참석하라’는 말은 들어본 적 없었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시설을 보강하느라 모든 사람이 강당에서 자게 된 날이었다. 거주하는 건물은 다르지만 바람 쐬러 나간 운동장에서 자주 만나 함께 과자를 나눠 먹곤 하던 지적장애
- 쫓겨난 삶 : 청계천에서 동대문운동장으로, 다시 신설동 풍물시장으로 그의 연고(緣故)를 묻기 위해 신설동에 있는 ‘서울 풍물시장’을 찾았다. 이곳은 청계천에서 밀리고 동대문운동장에서 또다시 밀린 이들이 떠내려온 곳이다. 2003년 2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사업을 발표하면서 그해 여름부터 서울시와 청계천 노점상인들 간의 싸움이 시작됐다. 청계고가도로 철거를 시작으로 그 주변의 1500여 노점상인에 대한 단속과 철거가 강행됐다. 2004년 1월, 청계천 노점상인 일부는 결국 동대문운동장 풍물시장으로 강제이주 당한다.
연고(緣故)1. 사유(事由)(일의 까닭) 2. 혈통, 정분, 법률 따위로 맺어진 관계 3. 인연(因緣)(사람들 사이에 맺어지는 관계)[출처 : 표준국어대사전] 까닭 없이 태어나 연고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세계에 내던져진 이들은 각자의 몫을 살면서 자기만의 생의 이유를 만든다. 그러나 만약 그가 죽은 후, 법적 혈연 가족이 없거나/알 수 없거나/시신 인수를 거부한다면 그는 무연고(無緣故) 사망자로 판정된다. 무연고 사망자는 점차 늘어나고 있다. 최근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