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진보적 장애인운동을 위해서는 중증장애인의 역량을 강화하고 다음 세대의 운동을 이끌어 나갈 리더를 발굴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부설기관 나야장애인권교육센터가 ‘1기 중증장애인 리더십학교’를 열었다.지난 3일부터 5일까지, 2박 3일 일정으로 서울에서 진행된 이 자리에는 여러 지역에서 온 중증장애인 활동가 다섯 명이 참여했다. 리더십학교 프로그램은 진보적 장애인운동의 사안을 익히며 역량을 강화하고, 선배 활동가와의 관계 형성을 통해 중증장애인 당사자가 차별의 경험을 스스로의 힘으로 바꿔낼 수
18일 오전, 발달장애인 활동가 9명을 포함해 장애인운동 활동가 25명이 전원 연행됐다. 이들은 오전 7시경,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서 ‘동료지원가 사업(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사업)’ 23억 원이 전액 삭감된 것에 항의하며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서울지사(중구 퇴계로 173 남산스퀘어빌딩 11층)를 점거했다. 이들은 한국피플퍼스트 소속 활동가들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면담을 촉구하며 내년도 사업 폐지 철회를 요구했다. 내년도에 이 사업이 사라지면, 동료지원가로 고용되어 있던 장애인 187명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게 된다. 이 사
2023년 4월 27일, 두 시설 수용 피해생존자가 만났다. 언론에 잘 알려진 선감학원 아동피해대책협의회 회장 김영배 씨(68)를 만나러 부산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 손석주 씨(60)가 경기도 수원을 찾았다. 이제 막 첫 삽을 뜬 영화숙·재생원 피해생존자협의회 대표로서 여러 조언과 도움을 구하기 위해서였다.손 씨는 궁금한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많았다. 햇수로 6년 넘게 대표직을 맡고 있는 김 씨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의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가고 싶었다. 지난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에서 선감학원 진실
지난해 3월 30일부터 12월 1일까지, 141차례 진행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삭발식에서 강희석(55)은 30여 명의 머리를 밀었다. 해 뜨기 전 집을 나서 삭발자 한 명 한 명의 결의문을 살펴보고, 한쪽 구석에서 닳고 닳은 바리캉과 손가위를 챙겨 들었다. 출근길 이른 아침, 지하철 승강장에는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하라’는 외침과 함께 지잉거리는 바리캉 소리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장애인 곁에 꼭 붙어서 삭발식을 지키는 그를 ‘바리캉 활동가’라고 불렀다.한편 ‘장애인이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대표에게 최후통첩을 날렸다. 남대문경찰서는 지난 16일, 혜화역 선전전에 참석한 박 대표에게 다가와 ‘17일까지 출석하라. 조사에 응하지 않을 경우엔 20일까지 출석 여부를 밝히라’고 통보했다. 20일 이후에도 조사에 응하지 않으면 경찰은 체포영장을 발부 후 연행하여 강제수사를 진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은 조사과정에서 구속할 사안으로 판단하면 48시간 이내 검찰을 통해 구속영장을 발부받고, 법원은 구속적부심사를 한다. 만약 법원이 구속수사 받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정하
삶 자체가 시설 수용의 역사인 사람들이 있다. 언론에 잘 알려진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외에도 시설에 끌려간 이들의 삶에는 지금도 국가폭력의 그림자가 깊숙이 배어 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45년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까지 불법적으로 이뤄진 집단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비마이너는 시설이라는 굴레에 지독하게 내몰렸던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연재한다. 세 번째 순서는 20년 동안 시설에서 당한 폭력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김세근(65) 씨 이야기다.“숱하게 깨지고 맞았습니다. 턱이 내리 찢어지
삶 자체가 시설 수용의 역사인 사람들이 있다. 언론에 잘 알려진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외에도 시설에 끌려간 이들의 삶에는 지금도 국가폭력의 그림자가 깊숙이 배어 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45년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까지 불법적으로 이뤄진 집단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비마이너는 시설이라는 굴레에 지독하게 내몰렸던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연재한다. 두 번째 순서는 덕성원에서 12년을 살다 나와 부산에 피해생존자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꿈인 안종환(47) 씨 이야기다.“우리가 국가를 못 믿는 건 당연
삶 자체가 시설 수용의 역사인 사람들이 있다. 언론에 잘 알려진 형제복지원과 선감학원 외에도 시설에 끌려간 이들의 삶에는 지금도 국가폭력의 그림자가 깊숙이 배어 있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1945년부터 권위주의 통치 시기까지 불법적으로 이뤄진 집단 수용시설 인권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 비마이너는 시설이라는 굴레에 지독하게 내몰렸던 피해생존자들의 증언을 연재한다. 첫 번째 순서는 한국전쟁 당시 부모를 잃고 시설 수용을 피해 전국을 쏘다녔던 황송환(70) 씨 이야기다.“6‧25 전쟁 통에 아버지, 어머니를 잃었습니
[좌담회] 언론의 장애·빈곤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①부 기자의 질문은 누구를 대변하는가▶②부 언론의 장애·빈곤 보도에는 ‘왜’가 빠져 있다 - ‘왜’라는 질문의 부재강혜민 :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것 같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장애·빈곤 이슈에서 고통에 초점을 맞춘 현상만을 많이 보도하는 것도 그와 닿아있는 것 같다. 언론이 장애인 이동권 문제만 계속 다루는 것도 이 사안이 시각적으로 바로 보이기 때문은 아닌가. ‘버스에 계단이 있으니 장애인은 못 타네’ 정작 장애계 내에서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탈시설, 장애인 노동권 문제는 언론
비마이너는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대한 국가보고서를 바탕으로 장애인 정책에 대한 정부 주장을 팩트체크하는 기사를 앞서 7차례에 걸쳐 보도했다. 정부가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에 제출한 국가보고서는 이제까지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국내 보도자료에 근거한다. 즉, 정부가 국가보고서에서 반복해서 말하는 장애인 정책에 대한 성과 상당수는 각종 언론을 통해 보도된 내용들이다.팩트체크를 통해 정부는 보도자료에서 노골적으로 수치를 조작하는 거짓말은 하지 않지만, 불리한 것은 숨기고 유리한 것만 말하며, 정책 방향에 대한 ‘선언’을 실제 성과인 것처럼
젊은 시절, 강태훈은 용산 삼각지에서 식료품 영업을 했다. 그러나 수익은 좋지 않았다. 대전으로 내려와 시작한 안경점 영업일로 안정되는가 싶더니, IMF 이후 들어온 외국 프랜차이즈 자본에 회사가 휘청거리면서 결국 퇴사하게 됐다. 소아마비 장애에 중년의 나이에 접어든 강태훈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컴퓨터 수리점을 열었으나 이미 사양산업이었다. 스마트폰이 컴퓨터 기능을 대신하던 시절이었다. 먹고 살 방법을 궁리하다가 2018년 9월, 세종시 장애인콜택시 ‘누리콜’ 운전원이 됐다. 누리콜은 세종시지체장애인협회(아래 지장협)에
이름: 김경민(가명, 남, 1982년생)발병일시: 3월 8일 오후 2시 20분사망일시: 3월 19일 오전 2시 51분사망장소: ○○대학교 병원직접 사인: 뇌부종사고종류: 기타(충돌)의도성여부: 비의도적 사고사고발생장소: 경기도 평택시 사랑의집(사회복지시설)몇 개의 짧은 단어로 요약된 37살 김경민의 사망진단서. 여기 쓰인 말을 그러모으면 그리 간단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다. ‘김경민은 사회복지시설 사랑의집에서 누군가에게 맞았고, 11일 후 병원에서 죽었다.’“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은데, 사랑의집 원장을 만난 후 너무 속상해서 술
화성시가 8월부터 형평성을 이유로 중증장애인의 시 추가 활동지원을 월 30시간으로 삭감하겠다는 개악안을 발표하자, 중증장애인들이 지난 16일부터 화성시청 2층 시장실을 앞에서 농성 투쟁을 벌이고 있다. 농성장을 지키고 있는 이들은 누구보다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중증장애인들이다. 이들은 한뎃잠을 자면서도 지키고 싶은 게 있어서 이곳에 모였다고 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존엄한 생명이다. 그동안 이들은 시 추가가 삭감되기 전임에도 충분한 활동지원 시간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국비, 도비, 시비를 합해 월 720시간가량
고 김재순의 아버지 김무영(가명)은 매일 아침 7시, 전남 광주 고용노동청 앞에 마련된 분향소에 출근하듯 도착해 초에 불을 켜고 하루를 시작한다. 김무영은 지난 5월 29일부터 이곳에서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사업주의 책임을 묻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천안 아산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던 그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사망 소식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광주로 와서 둘째 아들의 원룸에서 함께 지내고 있다. 김무영은 지난 5월, 아들을 잃었다. 그는 그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일요일 저녁, 둘째 아들로부터 갑자기 전화가 왔다. 첫째
장혜영은 발달장애인 동생 장혜정의 ‘둘째 언니’로 대중에게 알려졌다. 현재 정치인으로서 그의 사회문화적 자원 중 상당 부분 역시 동생의 탈시설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정치인 장혜영에 대해서는, 자신이 주장하는 탈시설 등 장애인정책에 관해 구체적으로 어떤 전략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장혜영을 만난 후에, 나는 오히려 그의 등장이 2020년 네트워크 시대에 정당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새삼스럽지만 다시 묻는 중요한 계기를 던져 준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보화 시대에 정당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늘 이 자리에서 인터뷰하게 되는 과정도 힘들지 않았나요?” 지난 19일, 박종균 정의당 장애인위원회 위원장이 광화문의 한 카페에 들어서면서 말했다. 박 후보도 이미 여러 번 만남의 장소가 바뀐 이유를 알고 있었다. 광화문에서 휠체어 접근이 되고 장애인 화장실을 갖춘 곳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정부나 언론이 장애인 정책이 잘 되어 있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직접 휠체어를 타고 활동하다 보면 접근성 때문에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토로했다. 연구를 위해 방문했던 여러 나라에서 자신의 장애를 느끼기 어려울 정도
그는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늦게 걸었다고 했다. 무릎과 배로 기어 다니다 5~6살 무렵에야 벽을 짚고 일어나 걸었다. 그러나 걷는 모습은 다른 이들과 달랐다. 그의 100미터 기록은 57초 89였다. 그러나 그것이 차별과 배제의 경험을 주는 사건은 아니었다. 그는 “비장애학생과 어울리기 위해, 더 경험하기 위해 더욱 많이 움직였다”고 말했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20대 때 장애인운동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30대 초반까지도 제과제빵을 배워 제주도에 빵집을 차리는 게 그의 꿈이었다. 그러다 2003년 운명처럼 ‘열린네트워크’라는 장
배복주는 자신이 걷는 모습을 남들이 보는 게 싫었다. 세 살에 소아마비 후유증으로 장애를 갖게 된 그는 다리를 절며 걷는다. 요즘은 걷는 게 점점 더 힘들어져 휠체어 타는 시간이 조금 더 늘었다. 그는 자신의 몸이 무척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예쁘게 걷고 싶었던 그는 “돌아가는 다리가 원망스럽고 걷고 싶지도 않던”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되었다. 장애인이고 여성인 그는 남성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자신이 “차별받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과제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에 균열이 가기 시작한 것은 대학 진학
과거 장애계가 각 부처 면담을 할 때마다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기획재정부(아래 기재부)가 승인을 안 해준다.” 실제 정부 부처와 협의되더라도 기재부의 승인이 없으면 예산 확대는 어렵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는 중구에 있는 나라키움저동빌딩을 점거하고서는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대대적인 예산 확대를 요구하며 “건물주 기획재정부는 나와라”고 외쳤다. 지난해 7월 1일 시행된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를 앞둔 인터뷰에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를 어떻게 규정하고 적
26일, 광화문광장에서 한국 최초의 ‘매드프라이드 서울’이 열린다. 매드프라이드는 1993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정신장애인들과 지지자들이 강제입원과 강제치료 등 정신장애인 인권침해 현실을 알리는 것을 시작으로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후 매드프라이드는 ’미친(mad)‘, ’미치광이(nutter)‘, ’광인(crazy)‘ 등 정신장애인을 낙인찍는 단어의 의미를 전복하고, 정신장애인 차별에 맞서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매드프라이드가 서울에서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요언론사들의 취재가 이어졌다. 정신장애인 당사자예술은 기존에도 있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