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행동에 주의 기울였으면 연행에 이르지 않았을 것”
경찰 뒷수갑 사용 과도, 신체의 자유 침해

지난 7월 22일, 피해자의 아버지(가운데)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의 발달장애인 강제 연행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 이가연
지난 7월 22일, 피해자의 아버지(가운데)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과 함께 국가인권위원회에 경찰의 발달장애인 강제 연행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다. 사진 이가연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중증 발달장애인이 경찰에 의해 부당하게 뒷수갑이 채워져 강제연행된 사건에 대해 피해자에 대한 심리치료와 실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지원방안 강구, 발달장애인 대상 현장 대응 매뉴얼 마련을 경찰청장에게 권고했다.

피해자 고 씨는 사회적 의사소통과 상호작용에 어려움이 있는 중증 지적·자폐성장애인이다. 지난해 5월 11일 저녁 8시 25분경, 안산에 사는 고 씨는 그날도 집 앞에서 어머니와 누나를 기다리며 평소 보던 야생동물 영상·책에 나오는 “암컷” 관련한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다가 이를 들은 한 여성이 ‘외국인이 자신을 위협한다’고 오인하여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 네 명은 고 씨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으나, 낯선 사람과 음성언어로 소통하는 게 어려운 고 씨는 신분증을 제시할 수 없었다. 경찰은 ‘도주 우려가 높다’고 판단하여 뒷수갑을 채워 그를 파출소로 연행했다. 고 씨는 이후 늦게서야 파출소에 도착한 어머니와 누나의 인계로 귀가할 수 있었다.

사흘 후인 14일, 고 씨의 부모는 발달장애인을 뒷수갑 채워 강제 연행한 것에 대한 사과와 재발방지를 요구하기 위해 파출소에 항의 방문하였다. 그러나 파출소 소장으로부터 “아버님 딸이 그런 상황이었으면 수갑 안 채워요?”라는 취지의 말을 듣게 되었다.

이에 대해 지난 7월 22일, 고 씨의 부모는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과 함께 인권위에 장애인 차별 진정을 했다. 이어 11월에는 재차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경찰청장 면담과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번 사건 조사 결과, 인권위는 지난 12월 27일 발표한 결정문에서 “CCTV 영상에 따르면 경찰들이 체포하려고 할 때까지 고 씨는 몸을 조금씩 움직이는 정도였을 뿐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경찰관들을 벗어나는 수준으로 이탈을 시도한 사실이 없다”며 경찰의 뒷수갑 사용은 과도하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발달장애인법)’에 근거해 경찰청이 개발한 ‘발달장애인 전담경찰관 조사가이드’(2017)에는 자폐성 장애인의 특성에 대한 경찰관의 응대행동이 명시되어 있는 점을 밝히면서, “평소 발달장애인 관련 직무교육이 진행되었고, 경찰관들이 고 씨의 행동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 전형적인 발달장애인의 의사소통 및 행동 특성을 발견하여 꾸준히 대화를 시도했다면 뒷수갑을 채워 연행하는 데에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고 씨가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고 이상행동을 한다는 이유로 “뒷수갑을 사용한 것은 경찰장구의 과도한 사용으로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헌법의 신체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발달장애인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이 보장하는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를 표현할 수 있도록 도움받을 권리, 특히 형사사법 절차에서 조력 받을 권리 등을 침해한 장애인 차별행위에 해당한다”고도 밝혔다.

현재 고 씨는 이 사건으로 극심한 외상후스트레스에 시달려 여전히 외출을 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인권위는 경찰청장에게 “고 씨가 심리치료와 실질적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방안을 강구하고, 발달장애인 대상 현장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여 배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한편, 이번 사건과 관련하여 안산단원경찰서장은 “형사소송법상 절차에 따른 정당한 현행범 체포였으나, 뒷수갑 사용에는 충분한 검토가 부족했던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파출소장의 발언은 “인격권 침해에 해당하진 않으나 상황에 맞지 않는 다소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밝혔다. 이에 “피진정인들에게 ‘주의’ 조치하고, 안산단원경찰서 와동파출소 소속 모든 직원에게 장애인에 대한 인식개선교육과 함께 이번 사례를 알리는 교육을 실시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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