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담회] 언론의 장애·빈곤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②

[좌담회] 언론의 장애·빈곤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①부 기자의 질문은 누구를 대변하는가
▶②부 언론의 장애·빈곤 보도에는 ‘왜’가 빠져 있다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 ‘왜’라는 질문의 부재

강혜민 :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것 같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장애·빈곤 이슈에서 고통에 초점을 맞춘 현상만을 많이 보도하는 것도 그와 닿아있는 것 같다. 언론이 장애인 이동권 문제만 계속 다루는 것도 이 사안이 시각적으로 바로 보이기 때문은 아닌가. ‘버스에 계단이 있으니 장애인은 못 타네’ 정작 장애계 내에서 가장 중요하고 첨예한 탈시설, 장애인 노동권 문제는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다. 이 사안에선 ‘왜’라는 질문이 중요하다. ‘왜’라고 물어야 그 이면의 구조를 볼 수 있는데 이 질문이 왜 기자들의 질문에서 사라졌을까.

정성철 : 어렵고 복잡해서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코로나 시기에 서울역, 용산역에서 무료급식소가 없어졌다는 내용은 자세히 잘 다뤘는데 결론은 일시보호시설 입소로 끝나는 보도들을 봤다. 기자들의 시각(편견)이 정확히 반영되는 것 같다.

권순택 : 기자는 ‘왜’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인데 그 직업 정신이 많이 희석됐다. 일단 기자라는 직업이 공적 업무를 한다는 인식이 많이 떨어졌다. 신문방송학과 교수, 언론사 간부들 만나서 들어보면 제자들이 언론사에 입사하더라도 그냥 거쳐 가는 직업으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공통으로 많이 한다. 예를 들면 KBS 기자로 가더라도 3년 뒤 기업이나 다른 데로 가기 위한 발판 정도로만 생각한다는 거다. 트렌드라고 한다.

권지담 : 저도 최근에 기자들이 기업 홍보팀으로 많이 옮겨갔다고 들었다.

권순택 : 기자라는 직업이 기업 홍보팀으로 가기 위한 좋은 커리어가 되어 버린 거다. 이건 기자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충분히 언론사 내에서 교육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겨레에 들어간 신입 기자와 조선일보에 들어간 신입 기자가 다를 거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어떤 사람과 만나고 어떤 조직 문화를 경험하느냐에 따라 다른 기자가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언론사에선 기자로서 성장하는 과정이 부족하다.

권지담 : 오늘날엔 기자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 사람도 많아졌고 매체도 많아졌다. 과거에는 기자라고 했을 때 사회적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 위치가 있고 사명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기자는 기레기를 넘어 기더기(기자+구더기)라고 불리며 악플도 많이 받는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취재할 때 보람을 느끼기가 쉽지 않은 순간도 있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입은 조끼 뒷면에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이라고 쓰여 있다. 그 너머에는 권지담 한겨레 기자가 앉아 있다. 사진 이슬하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입은 조끼 뒷면에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광화문공동행동”이라고 쓰여 있다. 그 너머에는 권지담 한겨레 기자가 앉아 있다. 사진 이슬하 

- ‘전문가=교수’? 왜 활동가의 전문성은 인정받지 못할까

강혜민 : 장애·빈곤 관련해서 많이 접하는 기사 구조가 있다. 기사 마지막에 ‘전문가’로 교수들이 등장해 현상에 대한 진단을 하는 거다. 그런데 그 멘트가 피상적이거나 현장과 매우 동떨어져 있다. 지하철 투쟁 기사 마지막에 모 대학의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공감하는 방식으로 시위 형태가 변해야 한다”고 훈수를 두기도 한다. 기자는 보도기사에서 자기 스스로 말할 수 없으니 누군가를 ‘캐스팅’해야 하는데 이러한 교수들의 발언은 어떻게 캐스팅되는 건가.

권지담 : 기자는 본인의 생각을 기사에 담을 수 없으니 ‘교수 등 전문가의 의견을 넣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다. 내가 평소 공부를 하며 계속 팔로우한 이슈라면 상황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마감에 쫓기는 상황에서 잘 모르는 이슈라면, 그 이슈와 관련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검증된 전문가를 찾아 그 사안에 대한 대안 등 필요한 멘트를 따게 되는 경향이 있다.

권순택 : 정확하게 취재를 하려면 어떤 사람이 더 전문성이 있는지 기자들이 찾아보거나, 활동가한테 물어보면 되는데 그런 걸 하지 않는다.

강혜민 : 과거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와 박경석 전장연 대표가 토론할 당시, 이 사회가 박경석 대표가 가진 전문성에 대해선 인정하지 않고 장애인 당사자, 데모꾼으로만 바라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활동가들이 정부나 지자체 공무원들과 정책과 예산에 대해 협상하는 것을 보면, 사실 입법부가 하는 역할과 크게 다르지 않다. 디테일하게 정책을 살피고 예산을 제안하지 않으면 그 요구는 절대 수용되지 못한다. 그런데 왜 활동가가 가진 전문성은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할까.

권순택 : 사회가 정한 기준에 맞지 않는 거다. 정부에서 프로젝트를 하나 맡기더라도 총괄하는 사람은 석사 이상이고 15년 이상 어느 기관에서 일해본 경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활동가가 관련한 석사 학위가 없다면 즉, 사회가 인정하는 일정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전문성이 없다고 인식하는 것 같다. 나 또한 미디어 쪽에서 10년 이상 일했지만 ‘시민사회단체는 전문성이 없잖아’라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다. 이런 일이 다반사다.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정성철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정성철 : 전문성과 전문가는 다른 것 같다. 나는 활동가인데 ‘전문가’라고 소개되면 기분이 좋진 않다.

강혜민 : 만약 해당 발언의 적합성을 기자가 판단할 수 있다면 좀 나을까.

권순택 : 언론사 내부에서 기자가 전문성을 키울 기회를 충분히 줘야 한다. KBS 대구방송총국의 ‘GPS와 리어카’라는 기사가 호평을 받았다.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어르신들의 리어카에 GPS를 부착해서 폐지 줍는 것을 사회적 노동의 가치로 분석한 기사였다.

시작은 취재처에서 받은 보도자료였다. 거기서 폐지 줍는 어르신들에게 왜 리어카를 주는지 의문을 가진 거다. 취재를 시작하게 됐는데, 기자가 한 이슈에만 매달려 취재하는 동안 다른 기자들이 이 기자의 몫까지 기사를 써야 한다. 큰 결단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인 거다. 즉, 콘텐츠의 질이 언론사 자체 환경과도 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독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 기자 수는 적은데 취재할 건 너무 많고 기사 질은 높여야 하는, 이러한 환경을 지원할 방안이 필요하다.

- 오늘날 ‘뉴스 가치’는 현장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강혜민 : 단순해 보이는 한 사건도 자세히 살펴보면 여러 문제가 엉켜있다. 왜 장애와 빈곤 관련한 기사는 기본적인 팩트체크도 없이 정부 보도자료 그대로 보도되는지 궁금했는데, 이 또한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현재 언론은 ‘왜’라는 물음을 치열하게 던질 수 없는 환경 같다. 통찰력 있는 기사가 나갔을 때 사회운동과 맞물려 더욱 힘있게 제도 변화를 요구할 수 있는데 현재는 그런 연결고리가 툭 끊어진 느낌이다.

왼쪽에서부터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권지담 한겨레 기자. 사진 이슬하   
왼쪽에서부터 강혜민 비마이너 편집장, 정다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실장, 권지담 한겨레 기자. 사진 이슬하   

정다운 : 왜 기자들이 취재를 안 오는지 궁금해서 언론보도 관련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주변 활동가가 ‘요즘은 사람이 죽어도 안 온다’고 했다. 그 수업에서 ‘뉴스 밸류(뉴스 가치)’라는 말을 배웠다. 보도되기 위해선 뉴스 밸류가 있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죽고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기구하게 죽지 않는 이상 뉴스 밸류가 없는 거다. 그러다 보니 뉴스 밸류를 만들기 위해 현장에선 충돌을 크게 만들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해서라도 더 많이 알려지는 게 정의로운 방향이긴 한가. 취재 동향에 시위의 방향이 맞춰지니 우리도 힘들어진다. 평화로운 말로 하면 아무도 안 들어주고.

권순택 : 포털로 인해 이런 환경이 더욱 강화됐다. 기자는 선택(기사 클릭)을 받아야 하니 더 선정적이고 자극적으로 기사를 쓰게 된다. 그런 기사만 시민들한테 노출되니 투쟁도 더 강화될 수밖에 없다. 예전엔 3보 1배만 해도 기사가 됐는데 지금은 오체투지해도, 몇십일 단식해도 기사가 안 된다. 고공에 올라야 하고 철창에 갇혀야만 기사가 된다. 언론이 이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 안 된다. 현장이 극한투쟁으로 치닫는 데에는 언론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 보다 나은 언론 보도를 위하여

강혜민 : 이야기할수록 장애·빈곤에 대한 보도 문제가 결국 이 사회 전체 구조와 아주 긴밀하게 닿아있다는 걸 깨닫는다. 막막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들이 어떻게 개선될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으로 현장 활동가들은 기자들이 어떤 태도와 입장을 가지고 질문하기를 원하는지, 언론계에 계신 두 분은 각자의 현장에서 어떤 것들이 지금 당장 개선되면 좋을지 이야기해달라.

정성철 : 기자분들이 해당 사안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라도 알아보고 오면 좋겠다. 가장 최근 발표된 성명서만 읽고 와도 대략적인 큰 틀을 알 수 있을 텐데 A부터 Z까지 다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면 ‘왜 왔지?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알고 오신 건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또한 기자들이 질문할 때 편견을 가지고 질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자분들이 빈곤과 장애 관련한 사회보장제도 이야기할 때만 예산에 많이 천착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거리에 계시는 홈리스, 쪽방·고시원, 노점, 철거지역에서 싸우는 분들께 언론이 가진 파급력은 정말 크다. 그러한 영향력을 고려해주셨으면 좋겠다.

정다운 : 얼마 전 고병권 선생님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듣는 것과 알아듣는 것, 보는 것과 알아보는 것의 차이에 인문학이 있다. 듣는 것, 보는 것의 영역은 자연학의 영역이지만 알아듣는 것, 알아보는 것은 다를 수 있다. 이러한 소양이 전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는 것 같다.” (▷다시 인문학 우리가 사랑한 저자 5편 : 고병권, YES24 인문교양)

시위 때문에 지하철이 막히지만, 시위하는 사람이 가지는 힘, 겨우 지하철을 연착시키는 그 힘과 몇천억 원의 예산을 주무르면서 어떤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그 힘의 차이는 너무 현격하다. 그런데 지하철 시위 현장에서 후자는 비가시화된다. 이걸 보기 위해선 우리 사회 권력 구조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더 많은 힘을 가진 사람에게 더 많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언론의 감시 역할은 거기에 있지 않나.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정확히 물었으면 좋겠다.

권지담 : 기사를 쓸 땐 이것이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독자를 공감시키는 데까지 끌고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때 당사자 목소리가 들어가면 확실히 정책에 대한 공감도가 높아지고 독자 피드백이 잘 되는 것 같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처장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권순택 : 언론변화는 세 가지로 접근할 수 있다. 언론사가 바뀌어야 되고, 플랫폼이 바뀌어야 하고, 기자 개인이 바뀌어야 한다. 언론사는 다양성을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기자들이 전문성을 키울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사회적 양극화가 모두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만 이와 관련한 전문기자는 없다.

현재 사건·사고는 낮은 연차의 사회부 기자들이 맡고 있다. 언론사 내에 사회부는 전문성 있는 곳이 아니라는 인식이 있는 거다. 반면 법조팀, 정치부, 청와대 들어가는 것은 승진처럼 여겨진다. 굉장히 문제다.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기자들은 계속 의심하며 팩트체크해야 하지만 팩트라고 해서 다 좋은 기사는 아니다. 예를 들어 장애인 지하철 시위 중 ‘임종 기사’의 경우, 팩트지만 이게 좋은 기사인가. 본인이 쓴 기사가 어떤 영향력을 가질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포털이 언론생태계를 지배하면서 자극적인 기사들은 많이 노출되지만, 기자들이 정성들여 쓴 기사들은 노출 빈도가 높지 않다. 최근 다음 모바일 편집화면이 바뀌었는데 ‘한 땀 한 땀 심층탐사보도’라는 섹션을 만들었다. 기자상 수상작 등을 보여주는 섹션인데 이처럼 좋은 기사들이 포털에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한다. 모든 시민이 다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기사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강혜민 :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주류언론이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행간, 보도자료에 나오는 문장의 행간을 조금만 더 잘 읽어주면 현장에서도 힘을 받아 우리 사회가 좀 더 괜찮게 나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갈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전체 언론 구조 속에서 비마이너는 무엇을 해야 할지도 고민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바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하다.

* 이 기사는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취재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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