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제6차 종합계획’ 내용 대충 잘라서 그림 넣어 제작
한국피플퍼스트 “발달장애인 무시하는 나쁜 자료” 인권위에 진정
발달장애인법 시행규칙에 아직도 ‘쉬운 자료 제공’에 대한 내용 없어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19일 오전 11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없는 제6차 종합계획을 발표한 복지부의 무책임함을 규탄하고 인권위에 진정했다.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19일 오전 11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없는 제6차 종합계획을 발표한 복지부의 무책임함을 규탄하고 인권위에 진정했다. 사람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강혜민

지난 3월 9일,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년)(아래 제6차 종합계획)이 발표됐다. 이 계획에는 앞으로 5년간, 윤석열 정부가 추진할 장애인 정책의 방향이 담겼다. 중요한 국가 정책 자료지만 발달장애인은 구체적 내용을 알 수 없었다. 보건복지부가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알기 쉬운 자료’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일, 한국피플퍼스트가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복지부 장애인정책국장을 장애인 차별로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한 이유다. 한국피플퍼스트,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은 이날 오전 11시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달장애인이 이해할 수 없는 제6차 종합계획을 발표한 복지부의 무책임함을 규탄하고 인권위에 진정했다.

- “알기 쉬운 자료인데 왜 어렵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당시 복지부는 그림이 담긴 ‘알기 쉬운 제6차 종합계획’ 자료를 함께 배포했다. 그러나 여기에 담긴 한자어와 영어, 줄임말을 쉽게 풀어쓰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알기 쉬운 자료임에도 “개인 환경에 따라 필요한 서비스를 지원하기 위한 장애인 맞춤형 통합지원·자립 주거결정권 강화”라는 단어가 그대로 사용됐다. 이 자료는 140여 쪽에 달하는 제6차 종합계획을 25쪽에 담았다. 많은 내용을 짧게 줄이면서 자세히 설명하지 않다 보니 내용을 알 수 없을뿐더러 내용과 상관없는 그림이 들어가서 오히려 혼란을 준다.

복지부가 배포한 ‘알기 쉬운 제6차 종합계획’ 자료. 카드뉴스 21쪽 중 16쪽에 있는 그림.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대상 확대율’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편의점이 한 개에서 세 개로 늘어난다. 한국피플퍼스트는 ‘편의점 수를 늘리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배포한 ‘알기 쉬운 제6차 종합계획’ 자료. 카드뉴스 21쪽 중 16쪽에 있는 그림.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대상 확대율’을 표현하는 부분에서 편의점이 한 개에서 세 개로 늘어난다. 한국피플퍼스트는 ‘편의점 수를 늘리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배포한 ‘알기 쉬운 제6차 종합계획’ 자료. 발달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쉬운 자료인데 줄임말이 그대로 쓰이는 등 어렵게 쓰여 있다. 
복지부가 배포한 ‘알기 쉬운 제6차 종합계획’ 자료. 발달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쉬운 자료인데 줄임말이 그대로 쓰이는 등 어렵게 쓰여 있다. 

한국피플퍼스트가 지적하는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모의 적용 연구, 발달재활, 획일적인 서비스, 디지털 헬스 기기, 장애인 빈곤율, 소득강화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사용이다. 두 번째는 정책 관련 단어를 설명 없이 사용한 경우다. 개인예산제, 건강주치의, 본사업시행(사업 내용이 무엇인지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지 않음), 평생학습도시, 의학적 장애 모델, 사회적 장애 모델 등의 단어를 ‘문제적 단어’로 꼽았다. 세 번째는 내용과 맞지 않은 그림을 사용한 경우다. 빈곤율을 설명하면서 할머니와 아이가 서로 기대어 있는 그림을 넣거나, 장애 개념 확대를 설명하면서 넣은 돋보기 그림이 여기에 해당한다. 돋보기와 장애 개념의 연관성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복지부는 ‘편의시설 설치 대상을 확대하겠다’고 설명한 부분에 편의점 그림이 한 개에서 세 개로 늘어나는 그림을 넣었는데, 한국피플퍼스트는 ‘편의점 수를 늘리겠다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서 한 활동가가 “이해하기 쉬운 그림 자료 만들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서 한 활동가가 “이해하기 쉬운 그림 자료 만들어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문윤경 한국피플퍼스트 대표는 “글을 잘 알지 못하거나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에겐 이런 자료 제공은 정보가 있어도 없는 것과 같다”면서 “정부는 누구도 정보에서 소외당하지 않도록 쉬운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도 일상에서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정인으로 참여한 소형민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동료지원가 활동가는 “알기 쉬운 자료인데 왜 어렵게 만드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알기 쉬운 자료를 만들 때 건성건성 만들지 말아 달라. 이 자료를 보고 발달장애인을 무시하고 장난치는 것 같아 매우 화가 났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이번 진정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들은 진정서에 “혼자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레고 장난감 설명서처럼 쉽게 쓰여 있어야 한다” “그림이 발달장애인들이 선택한 것 같지 않다”고 진술했다.

소형민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동료지원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서 한 활동가가 “이해하기 쉬운 자료에는 제발 이해하기 쉬운 단어만 써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소형민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동료지원가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그 옆에서 한 활동가가 “이해하기 쉬운 자료에는 제발 이해하기 쉬운 단어만 써주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강혜민

- 발달장애인법 시행규칙에 아직도 ‘쉬운 자료 제공’에 대한 내용 없어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은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아래 발달장애인법)에 명시된 정부의 의무다. 발달장애인법 10조 따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발달장애인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령과 각종 복지지원 등 중요한 정책정보를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작성하여 배포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관련한 시행령엔 정책정보의 작성과 배포 시, 정부가 포함해야 하는 내용이 적혀 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어떠한 기준에 따라 작성해야 하는지를 시행규칙에 근거해 작성해야 한다’고 해놓고는 시행규칙에 아직 관련 내용은 마련되지 않았다.

이수연 법조공익모임나우 변호사는 “시행규칙은 복지부 장관이 정한다. 그런데 시행규칙 조항 어디에도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정보 작성 기준에 관한 내용은 없으며, 복지부 고시로도 발달장애인을 위한 이해하기 쉬운 정책정보 작성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면서 “이해하기 쉬운 정책정보를 작성하고 배포하는 것은 복지부 의지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발달장애인을 위해 알기 쉬운 정보를 제작하여 제공하는 곳은 모두 민간기관이다. 그러다 보니 표준화된 기준이 없다. 이에 대해 김수정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장은 “현재 민간에서 주도하다 보니 통일된 기준이 없다. 정부에서 알기 쉬운 정보에 대한 표준화된 기준을 개발해야 한다”면서 “전국에 알기 쉬운 정보를 제공하는 기관이 17개 시도에 하나씩은 다 생겨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현재는 늘어나긴커녕 관련 예산이 줄어들고 있어서 새로운 것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 것을 유지하는 정도밖에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활동가가 피켓을 들고 있다. 피켓에는 “TO. 보건복지부(보건복지부에게). 너만 아는 단어도 중요하지만 장애인들을 위해서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해하기 쉬운 자료 제작”이라고 쓰여 있다. 사진 강혜민 

이번 진정과 관련해 한국피플퍼스트는 “복지부는 알기 쉬운 자료를 따로 만들었다고 하나, 발달장애인들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자료를 만들었다”면서 “알기 쉬운 자료를 만들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 할 복지부가 오히려 발달장애인을 무시하는 나쁜 자료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규탄했다.

따라서 한국피플퍼스트는 인권위에 강력한 시정 권고를 요구했다. 우선은 제6차 종합계획에 알기 쉬운 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발달장애인을 무시하는 형식적인 자료 배표에 대해 복지부가 사과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발달장애인법 시행규칙에 알기 쉬운 자료 만들기에 관한 세부 내용을 만드는 과정에 발달장애인 당사자를 반드시 참여시킬 것을 복지부에 권고해달라고 요구했다. 마지막으로는 복지부가 제6차 종합계획의 알기 쉬운 자료를 다시 제작하여 배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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